밤새 달렸다. 운전하던 중에 체크엔진 불이 들어왔다. 시간은 0시 50분 경. 다른 이상은 없어 주행을 계속했다. 원래 계획은 교대 지점까지 두 번 쉬고 갈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안 돼서 두 번째 휴식은 거르고 계속 달렸다. 마지막 30마일을 남겨 두고는 트럭의 최고 속도인 65마일로 달려야 했다. 중간에 거센 비가 내려 한 동안 속도를 55마일로 낮추고 달렸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내 운전 가능 시간은 2분이 남았다. 그러니까 10시간 58분을 운전한 것이다. 도로(道路) 최면(催眠) 현상이 오늘도 나타났지만 정도가 덜 했으며 대처하는 요령도 늘었다.
네이슨이 어제 쓴 일기를 읽은 모양이다. 강습 중에 이해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지 그랬냐고.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었다고. 바보 같은 질문이란 없다면서. 영어로 자동 번역된 것을 읽은 것일텐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래도 뜻은 통하는 모양이다. (Nathan, I know you read this post also.)
장시간 운전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낮시간 대부분을 잤다. 중간에 체크엔진 라이트 점검하느라 피터빌트 서비스센터에 들렀을 때 한 번 깼다. 압력센서에 문제가 있다는 것 같았다. 일단 체크엔진을 클리어하고 다시 불이 들어오는 지 보기로 했다.
차가 서는 것 같길래 화장실도 갈 겸 커튼을 열고 나왔더니 도로다. 전방에 사고가 나서 차량이 늘어선 것이다. 얼마를 가니 건너편 도로에 자동차를 운반하는 트럭에 불이 났다. 화재는 진압됐지만 싣고 있던 차량 대부분이 불에 탔다. 하행선 차선은 수 마일에 걸쳐 정체(停滯)됐다.
운전을 교대할 트럭스탑에 들어섰다. 주차공간을 찾는데 트럭이 후진이 안 된다. 후진이 중립이고 중립이 전진 기어 상태였다. 다행히 주차장에 공간 여유가 있어 전진 주차로 트럭을 댈 수 있었다. 도로 상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일단 이 상태로 주행은 불가능하다. 내일 배달할 곳은 장소가 좁아 전후진을 몇 번을 반복해야 도킹을 할 수 있다. 네이슨이 회사에 보고하고 몇 번의 통화를 했다. 지시하는 대로 몇 가지 방법을 시도했지만 소용 없었다. 내일 정시간 배달은 글렀다. 상황을 보니 회사에서 로드 서비스팀을 파견하고 트레일러는 다른 트럭이 가져갈 것 같다. 지금은 후진이 전혀 안 되니 트레일러를 뗄 수 조차 없다. 킹핀이 꽉 물려 있어 약간 뒤로 물려 여유를 준 다음에 릴리즈 핸들을 당겨 잠금턱을 풀 수 있다.
이 트럭은 2만8천 마일 정도 뛴 새 트럭인데 문제가 생겼다. 네이슨은 처음부터 이 트럭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소소한 문제가 계속 생긴데다 연비도 지난 번 트럭보다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뽑기 운이 나쁜 탓은 아닌 것 같다. 같은 모델을 모는 다른 트럭 드라이버들도 비슷한 문제점을 얘기한다고 했다. 네이슨은 어릴 적부터 피터빌트 팬이었기 때문에 이 회사 트럭을 선택했다.
나는 회사 드라이버로 일할 예정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 없이 프레이트라이너를 몰 가능성이 높다. 프레이트라이너는 운송업계의 현대자동차라고나 할까. 트럭스탑에 주차한 차량의 60~70% 정도는 프레이트라이너 트럭들이다. 무난한 성능에 저렴한 가격과 폭넓은 서비스망, 유리한 금융 조건이 대형트럭 회사에서 프레이트라이너를 선택하는 이유다.
******************
흉물이 된 Idle Air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다른 트럭은 대부분 떠나 주차장이 한산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문제의 원인은 찾아냈다. 특정 트랜스미션을 사용한 제품의 리콜 명령이 지난 4월 2일자로 있었다.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트럭이 전진이나 후진이 안 되는 문제였다. 어제 피터빌트 서비스에 들렀을 때 기술자가 이를 발견했으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제조사에서는 이런 사실이 있으면 차량 소유자들에게 제대로 공지를 했어야 한다. 기술자가 와서 컴퓨터를 연결하면 간단히 끝날 문제다. 네이슨은 6시간 거리에 있는 프라임 터미널로 트럭을 몰고 가겠다고 했지만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른다며 회사에서 만류했다. 한 번이라도 후진할 일이 생기면 엉망이 된다.
주차장을 걷다 보니 한 켠에 흥미로운 시설이 보인다.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이름하여 idle Air라는 제품이다. 환경문제와 연료비 문제로 트럭회사들은 공회전을 엄격히 제한한다. 프라임 회사 차량의 경우 5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진다. 트럭을 공회전하면 시간당 1갤런의 연료가 소모된다. 날씨가 아주 덥거나 추울 때 냉난방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8시간을 주차한다고 했을 때 디젤 연료 8갤런이면 상당한 비용이다. 갤런당 3달러라고 가정하면 24달러가 단지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쓰인다. 그래서 등장한 제품이 외부전원장치 APU(Auxiliary Power Unit)다. APU는 발전을 담당하는 작은 디젤엔진이다. 트럭 엔진을 공회전 했을 때와 비교해 시간당 ¼ 수준의 연료가 소모된다. 덕분에 트럭 운전사는 공회전을 하지 않고도 냉난방과 전기공급을 받을 수 있다. 프라임 트럭에는 APU가 장착돼 있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이 APU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형 트럭회사들은 2~3년 간격으로 트럭을 교체한다. 설치비가 비싼데다 별도로 관리도 필요하니 공회전이 더 경제적이라는 계산일 수도 있다. 트럭의 공회전 연료 효율을 높였을 수도 있다. APU 자체의 소음도 트럭 아이들링에 못지 않다. 트럭이 방음이 잘 되는 편이라 창문을 닫고 있으면 견딜만 하다.
아무튼 idle Air는 공회전 보다 싼 가격에 냉난방과 전기, 인터넷 브라우징, TV 채널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공회전 소음과 진동도 없으니 초기에는 각광(脚光) 받았을 것이다. 요즘 트럭은 그런 편의 기능을 자체 장착하고 나오는 추세다. 급속히 변하는 IT 환경에서 계속 시설을 유지하고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idle Air는 금새 시대에 뒤떨어졌을 것이다. 투자 대비 수익이 나지 않아 회사는 파산하고 시설은 흉물(凶物)로 방치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