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에 일하면 재미있다. 지난해 할로윈 데이(10월31일)는 금요일로 쉬는 날이었다.
토요일 오전은 한가한 편이라, 보통 오후부터 일을 시작한다. 그래서 새벽에 차를 받아도 파트너를 지하철역까지 태워주고는 집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날은 일을 나갔다. 맨해튼에 사는 파트너를 집까지 태워주고는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타임스퀘어를 지날 때 손님이 탔다. 흑인 여성 3명과 흑인 남성 1명이다. 모두 할로윈 커스튬을 하고 있었다. 흑인 남자는 얼굴에 회칠을 하고 눈은 판다처럼 시커멓게 분장했다. 나는 배트맨의 조커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밤새 신나게 논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했다.
밴더빌트 그리고 어디라고 얘기하는데 잘 모르겠다. 밴더빌트가 들어가는 지명은 맨해튼 아니면 브루클린인데 숫자가 아닌 것으로 봐서 맨해튼은 아니다. 맨해튼 브릿지를 넘어가자고 하는 것을 보니 브루클린이다.
이들을 태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일을 나온 것을 후회했다. 그들은 가는 내내 서로 소리를 지르며 다투는 것이었다. 브루클린 브릿지를 넘어가야 한다는 둥, FDR 드라이브를 타야 한다는 둥 코스를 놓고 서로 주장을 하는 것이다. 남녀가 의견이 다르면 나는 보통 여자 편을 든다.
하지만 정확한 목적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핸드폰에 주소를 찍어달랄까 생각했지만, 이들이 얼마나 쉴 틈 없이 서로 소리를 지르는 통에 그럴 겨를도 없었다. 다행히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가는 길을 다 알려준다.
나중에는 영화를 놓고 서로 다툰다. 남자가 한 분장이 조커가 아니라 퍼지(The Purge)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빨간 립스틱은 칠하지 않았다. 퍼지는 속편(續篇)이 더 재미있다고 했다. 관객 평도 좋은 편이라 챙겨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4명이 동시에 큰 소리로 떠드니 얼마나 시끄러운지. 대화라기보다는 4명 모두 자기 말만 하는 식이다. 그냥 참고 갔다. 나중에 도착할 무렵이 돼서는 자기들도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보고 나이스하다며 자기 같았으면 중간에 쫒아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긴 했지만 이들이 욕설을 한다거나 악감정을 실어 말다툼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냥 내버려뒀다. 할로윈이니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다. 이들을 제지하려고 했으면 분위기가 험악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냥 내버려두니 알아서 사과한다.
맨해튼으로 돌아와 몇 건의 운행을 더 하고 아스토리아로 가는 손님을 태웠다. 멕시칸이었다. 밤새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원래는 쉬는 날인데 할로윈이라 일했다고 한다. 미국에 온 지는 14년 됐다고. 남미 사람들과 아시아 사람들은 공통점이 많다며 우리 자식 세대들이 미국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요금은 20달러 나왔는데 30달러를 주고 내린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은 밤새 운전하는 사람들의 고충(苦衷)을 이해하고 잘 대해주는 경우가 많다. 택시 운전 초기 태웠던 한 젊은 여성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할 생각이다.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가려는데 다리 입구 앞에서 아스토리아로 가는 남녀 손님이 탔다. 그들을 내려주고 나니 길을 잃고 헤매는 흑인 손님 한 명이 또 탔다. 외진 주택가라 새벽에 손님이 있을 곳이 아닌데. 그를 목적지에 내려주고는 하이웨이를 타고 집으로 들어왔다. 쉬었다가 오후에 다시 나가야지.
올해 할로윈은 토요일이니 그때를 기약한다. 그날은 나도 할로윈 분장을 하고 운전을 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