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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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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오권 분립국가’

천지개벽도 한 걸음부터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19-01-22 (화) 11:13:06

 

2019년 1월 1일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인 공룡(恐龍)은 약 6천만 년 전 운석의 충돌로 인한 환경변화로 멸종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얼핏 생각하면 하루아침에 또는 길게 봐도 몇 개월 안에 공룡을 비롯한 대부분 생물이 절멸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기간은 1만 년이 걸렸다. 45억년 지구의 역사에 비춰보면 1만 년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의 한순간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는 우리나라도 고조선 건국이 5천 년이 안 됐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바꿨는데 왜 나라가 달라진 것이 없냐고 원성이다. 기대만큼 변화가 빠르지 않다고 역시 너희들도 별수 없는 놈들이라며 다시 수구세력에 정권을 넘겨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삼권 분립 국가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로 권력이 나뉘어있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교체했지만, 입법부와 사법부는 예전 세력 그대로다. 국회만 봐도 자유한국당이 112석이다. 사법부는 지난 정권에서 심은 사람들이 여전히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대통령을 왕으로 잘 못 생각한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사실상 대통령이 왕이나 마찬가지긴 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삼권 중 행정부와 입법부는 국민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 사법부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가 제도는 삼권이지만 사실은 두 개의 권력이 더 있다. 언론과 재벌이다. 대한민국은 실질적으로 오권 분립 국가다. 다섯 개의 권력 중 겨우 한 개만 바꾸고 세상이 좋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로또 당첨을 바라는 요행 심리다.

 

1만 년에 걸쳐 멸종된 공룡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 같은가? 행정부를 바꿨으니 입법부를 바꿀 차례다. 2년 후다. 그 후에야 사법부를 바꿀 수 있다. 언론과 재벌은 절멸(絶滅)하지 않는다. 바뀐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을 뿐이다.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적폐청산은 짧게는 5년에서 10년, 길게는 30년까지 걸리는 과정이다.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길게 보면 역사는 진보한다. 막 차려지고 있는 밥상에 마음에 드는 음식이 안 올라왔다고 상을 엎어버리는 어리석음은 금물이다.

    

      


010119 천지개벽도 한걸음.jpg

 

 

한국인의 마지막 밤

       

      

새해를 맞은 이틀째, 순조롭다. (안 그럴 이유가 있나?)

 

어제는 올해의 첫 영화를 봤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영화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형님의 The Mule을 이웃 사는 아는 동생과 봤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우리 아버지보다도 연세가 많지만, 큰 존경의 뜻을 담아 형님으로 모신다. 극중 인물이 90세인데 실제 이스트우드 형님은 곧 89세가 된다. (이 영화는 마약 운반책으로 활동했던 90세 노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그 연세에 감독과 주연, 제작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신다.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스트우드 감독에 대한 기대치에 비하면 평작이다.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액션 히어로 본색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그의 액션은 없다. 단지 설정이 그렇다. 얘기하면 스포일러이니 직접 확인하시라) 건강하게 오래 사셔서 더 작품을 남겨주시길 바란다.

 

오늘은 Her를 봤다. 오랫동안 각종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리뷰를 봐왔지만 실제로는 오늘에야 봤다. 몹시 철학적인 영화다. 생각할 거리가 책으로 한 권 엮어도 될 정도로 많다.

 

새해 이틀 동안 매일 영화 한 편씩이라니 괜찮다. 일을 나가면 책은 읽어도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영화를 보면 분석하는 습관 때문에 그 자체로 일이 돼버린다. 영화를 전공했음에도 가려서 보느라 실제로 관람한 영화는 많지 않다.

 

낮에는 로창현 국장님이 다녀가셨다. 칼럼형 신문, 뉴스로(newsroh.com)의 발행인이시다. 나와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기자와 보도국장으로 만난 사이라 지금까지도 국장님으로 부른다. 얼마 전 북한 취재를 다녀온 후 강연을 다니고 계시다. 북한에 다녀오면 다들 생각이 바뀐다. 우리는 서방 언론을 통해 걸러진 정보만으로 북한을 판단한다. 실제로 북한에 가 순박한 시민들을 만나면 우리가 남이 아니며 함께 살아야 할 민족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엄혹한 대북 제재 속에서도 북한은 경제를 발전시켜왔다. 고난의 행군 시절을 이겨낸 저력과 노하우는 남한은 물론 전세계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소득 양극화로 남한에서만 천만 명가량의 신빈곤층이 탄생할 것이며,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는 전지구적 식량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신빈곤층은 수백에서 수천 단위 규모의 집단 농장을 구성해 제한된 자원을 공유하고 자생력을 키워 생존할 수 있다. 공동체 회복에 따른 삶의 질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시민권자가 되면 역설적으로 북한에 갈 수 없다. 미국무부가 북한 여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 제약이 풀릴 것이다. 그때는 중국이 아닌 남쪽에서 육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하기를 희망한다.

 

 

 

20180717 (1).jpg

로창현 국장과 함께 2018년 7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미국인 1일차

 

 

미국인이 된 소감,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도 그렇다. 어제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나에게 새로운 자격이 부여됐다. 그것은 대부분 상징이다. 물리적으로 내가 받은 것은 종이 몇 장이 전부다. 이 상징은 추후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지만, 정작 우리 가족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하다.

 

실생활에서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이름이라도 바꿨으면 모를까. 투표권이 생겼지만, 선거는 멀었다. 당장 외국 나갈 일도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못다 한 면도를 했다. 아내를 가게에 태워주고 혼자서 행사장으로 향했다. 선서식은 연방법원에서 열렸다. 약 120명가량 참석했다. 대부분 시간은 신원 확인하고 서류를 주고받는 데 쓰였다. 선서는 연방판사가 배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연방판사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이민 와서 노동자로 힘들게 일해 자신의 부모들을 키워 대학을 보냈고, 그의 손자는 연방판사라는 영예로운 자리까지 올랐다며 자기 가족사를 소개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 참전용사로 국가의 지원으로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오늘이 2019년의 첫 선서식이라고 했다. 그는 TV쇼 사회자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며 얘기했다. 쇼맨십이 대단했다. 나중에는 앞에 나와 마술도 선보였다. 방청 온 어린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그로 인해 축제 분위기가 됐다.

 

시민권 선서를 하기도 전에 현장에서는 유권자 등록 신청서류를 배부하고 수거했다. 건강보험 갱신 서류에도 유권자 등록 신청서가 함께 있고, DMV 운전면허 신청서류에도 유권자 등록 신청서가 있다. 미국 정부가 얼마나 유권자 등록을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이만 되면 자동으로 투표권이 주어지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유권자 등록을 마친 사람만 투표가 가능하다. 미국시민이 아닌 사람이 투표를 하면 중죄로 처벌되고 추방 사유가 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민권을 취득하며 이름을 바꾸는 모습을 보니 나도 이름을 바꿀 것을 그랬나 싶었다. 개명 후 후속 조치가 생각만큼 복잡하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름이 도저히 싫어 못 쓰겠다는 것도 아니고, 내 영어 이름이 너무 좋아 꼭 써야겠다는 것도 아니었으니 괜찮다. 복잡한 세상 간편히 살자.

 

앞으로 남은 일은, 2주 지나서 소셜 시큐리티 사무실에 가서 내 신상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미국 여권도 신청해야 한다. 영주권은 시민권 증서를 받으며 반납했기 때문에 미국 여권이 실질적인 내 국제 신분증이다. 미성년자인 아이들은 여권만 신청하면 자동으로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다. 부모나 형제를 미국으로 초청할 수도 있다. 우리 가족 중에서 미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만.

 

시민권자가 영주권자와 다른 점이라면, 선거 참여, 가족 초청, 그리고 무슨 짓을 하든 미국 밖으로 추방될 일은 없다는 정도다.

 

시민권자가 됐어도 나는 여전히 트럭을 열심히 몰아야 한다. 내일 일터로 복귀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 몇 가지 일을 처리했다. 인터넷 서비스를 버라이즌에서 RCN으로 바꿨다. 이상한 것 중 하나가 충성 고객에게 더 잘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비싼 가격을 받는다. 약정기간이 끝나면 할인혜택이 없어져 가격이 두 배로 뛴다. 정기적으로 회사를 바꿔야 봉 취급을 면한다. 버라이즌은 내가 해지(解止)를 하겠다니 그제야 할인가격을 제시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떠났다. 그리고 RCN이 더 싸다. 설치도 빨리해주고 품질도 내가 쓰기엔 차이 없다.

 

아이들 건강보험 갱신 서류도 작성했다. 아이들과 우리 부부는 보험 회사가 다르다. 하나로 합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해봐도 무슨 이유인지 잘 안 됐다. 이게 은근히 귀찮은 작업이라 늘 마감 시일에 닥쳐서 했는데 올해는 미리 했다. 내가 집을 떠나 있으니 뉴욕에 있을 때 웬만한 건 다 해놓고 가야 한다.

 

 

 

010319 시민권 선서식.jpg

시민권 선서식 장에서

 

 

2019년 첫 운행

      

 

      

회사로 복귀했다. Port Authority Bus Terminal에서 1시 버스를 탔다. 이 시간의 Martz 버스는 만원이었다. 스크랜튼에 도착해 프라임 셔틀버스를 요청하니 얼마 있어 나를 태우러 왔다. Pittston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이었다. 식당에서 늦은 점심부터 먹었다.

 

글렌은 30마일 떨어진 곳에서 빈 트레일러를 연결해 일리노이주 모니(Monee)로 데드헤드(deadhead) 하라고 했다. 데드헤드는 빈 차로 화물이나 손님을 태우기 위해 이동하는 것을 뜻한다. 거리는 700마일이 넘었다. 대부분 트럭이 북동부쪽에 몰려 중서부쪽에 차량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아직 지정받은 화물은 없지만 도착할 무렵에는 화물이 들어올 것이다.

 

터미널에서 출발하니 날이 저물었다. 밥테일 상태이니 부담 없이 회사 근처 월마트로 향했다. 시피위가 얘기한 야채를 사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월마트는 12피트 높이로 주차장 입구마다 철봉이 설치돼있다. 트럭은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다. 이런 낭패가. 바로 옆 호텔 주차장에 세우고 월마트로 걸어갔다. 전에 철봉 설치된 월마트를 욕한 적이 있는데, 회사 바로 근처 월마트가 그럴 줄이야. 이해는 간다. 바로 건너편에 트럭스탑이 있는데 항상 자리가 부족하다. 트럭 출입을 허용하면 월마트 주차장은 트럭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야채의 부피가 커서 작은 냉장고에 간신히 수납했다. 시피위가 알려준 제품은 총 네 종류였다. 그나마 하나는 품절이라 세 종류를 샀는데 다음에는 하나씩 사야겠다.

 

알려준 곳에 도착하니 글렌이 얘기한 트레일러는 야드에 없었다. 다른 트레일러를 연결해도 되냐고 물었다. 야간 담당인 알렉스가 알아보더니 그렇게 하란다.

 

I-80번 도로로 서쪽으로 향했다. 빈 트레일러를 끄는 가이암은 가볍게 움직였다. 오르막 구간에서 대부분 트럭을 쉽게 제쳤다. 펜실베이니아 구간에서는 트럭스탑과 고속도로 휴게소 모두 만차 상태였다.

 

새벽 3시경 오하이오주 Portage Service Plaza에서 멈췄다. 80번 도로 오하이오주 구간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대형 트럭 주차장을 갖추고 있어 애용하는 편이다. 들어서자 바로 빈 자리가 하나 보였다. 누가 금방 출발이라도 한 모양이다. 운이 좋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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