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이러는 것인가? 이쯤되면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일요일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침 7시에 일어나 준비 후 7시 30분 경 출발했다. 9시가 조금 넘어 배달지에 도착했다. 구글맵 위성사진으로 미리 확인하고 갔는데도 트럭 출입구가 아닌 줄 알았다. 일반 차량이나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트레일러를 끌고 지나기에는 양쪽으로 불과 몇 센티미터의 여유가 있었다. 이런 곳은 처음이다.
경비가 서류를 보더니 오늘 접수 작업이 없다고 했다. 그는 서류를 내밀며 필요 사항을 적으라 했다. 인근 트럭스탑에 가 있으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종일 전화는 오지 않았다. 디스패처에게 연락했지만 세일즈에 알아보겠다는 답변만 왔다. 그 말은 오늘은 종쳤다는 뜻이다. 일요일이라 어느 쪽도 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빨라야 내일 새벽에나 연락이 올 것이다. 지난 주에도 간단한 확인을 못 해 하루를 날려먹게 하더니.
일요일에 쉬는 것에 불만은 없다. 다만 서 있는 동안은 벌이가 안 되니 문제다. 시간으로 급여(給與)를 받으면 모르겠으나 거리로 돈을 받는다. 하루 400~500 마일은 꾸준히 달려야 기본 벌이가 된다. 이번 화물은 실을 때도 4시간이 넘게 걸리더니 내릴 때는 하루가 더 걸릴 참이다. 내가 초짜라서 이런 거지 같은 화물을 주는 게 아닌 지 의심된다.
처음에는 1마일 거리의 파일럿 트럭스탑으로 갔다. 자리는 있었지만 무척 좁았다. GPS에서는 90대 규모로 나와 있어 공간이 넓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리하면 주차도 가능했지만 그냥 나왔다. 5마일 떨어진 러브스 트럭스탑으로 향했다. 그렇다. 무료 샤워. 거기다 무료 리필. 이런 혜택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나. 거기다 74대 규모로 나와 있는데 실제 공간은 파일럿 보다 두 배는 넓었다. 널널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알리닥 후진은 아직 정확한 포인트 잡기가 어려웠다. 다른 공간에 직선 후진으로 댔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아예 근처 월마트를 들렀다 올 것을 그랬다. 아침에는 대체로 한가해 주차장에 트럭을 세울 곳이 있다. 이 동네 마트는 24시간 영업은 없고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밤 11시에 닫았다.
샤워 후 커피 리필, 핫독과 함께 스크류 드라이버 세트를 샀다. 적립 포인트로 구입할 수 있었다. 스크류 드라이버는 왼쪽 후드 미러가 덜렁 거리고 방향이 종종 틀어져 육각별 모양 나사를 조이려고 샀다. 결론은 소용 없었다. 나중에 터미널 가면 트랙터 샵에다 얘기해야겠다.
마지막 남은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햇반과 컵라면이 있어 걱정할 일은 아니다.
시간이 남으니 책도 읽고 드라마도 한 편 봤다.
배송추적 : 이동하는 모든 것의 인문학
⅔ 가량 읽었다. 운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도움이 됐다. 큰 숲을 보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저널리스트라 어려운 주제를 심층 취재 기사처럼 쉽게 풀었다.
Door to Door: The Magnificent, Maddening, Mysterious World of Transportation https://www.amazon.com/…/0…/ref=cm_sw_r_cp_apa_Sj4zBb52C16E4
Orange is the new black
넷플릭스 드라마다. 시즌6 방송 중인데 첫 시즌 두 번째 에피소드까지 봤다. 영어 자막이 나오는데 안 보고 그냥 듣는 편이 더 이해가 잘 됐다. 영어 자막을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방해됐다. 소리로 들으면 실시간 이해가 되는데 영어 자막은 번역하려는 습관 때문에 더 느리다. 정 안 들리는 부분만 무슨 얘긴지 확인할 때와 정확한 표현을 익힐 필요가 있을 때만 자막을 활용하는 편이 낫겠다.
월마트에서 마음껏 장을 보다
오전 10시 경 전화가 왔다. 물건 내릴 준비가 됐으니 오라는 얘기다. 지난 번 들어갔던 입구를 지나쳐 두 번째 게이트로 들어가라고 했다. 3번 닥에 대면 된다고. 리퍼 연료가 ⅓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라 트럭스탑에서 가득 채우고 발송처로 갔다. 전체적으로 좁지만 이쪽은 더 좁았다. 예전 같았으면 ‘미션 임파서블이야’ 하며 포기했을 법한 장소다. 그런데 이제는 겁이 나지 않는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혼자서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다른 트럭이 없어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가졌다. 옆 닥도 비어 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끝내는 해냈다. 나중에 야드 자키가 와서 내 왼쪽 닥에 트레일러를 댔다. 야드 자키도 한 번에 못 대고 몇 번 왔다갔다한 공간이다.
가장 가까운 트럭세차장으로 갔다. 고기 벌건 핏물이 줄줄 흘러 세척을 꼭 해야 했다. 다음 화물이 들어왔는데 남쪽이다. 세차장과는 반대 방향이다. 진입로 입구의 안내판이 너무 작아 그냥 지나쳤다. 유턴할 공간도 없다. 당황하지 않고 계속 가서 다른 도로를 우회(迂廻)해 다시 돌아왔다. 무슨 화학공장이었다. 식품이나 화장품, 의약품이 아닌 것은 처음 싣는다. 이곳은 아예 닥이 하나 뿐이다. 쉽지 않은 공간인데 좀 전보다 수월하게 댔다. 일리노이 주 오로라의 전자 공장으로 가는 화물이다. 전자 제품 공정에 필요한 화학약품인 모양이다. 10도 가변에 설정온도는 60도다. 이런 경우 리퍼가 잠깐씩만 작동한다. 마지막 배달한 화물은 리퍼가 26도 설정에 24시간 돌아갔다. 하루종일 소음(騷音)에 시달렸다.
모레 오전 7시 30분 배달이고 총 거리는 900마일 가량이다. 오늘 300마일 정도는 가야 한다. 내일 500마일 정도를 소화하고 당일 아침에 100마일 이내를 달리면 적당하다. 오늘은 밤 9시 정도까지는 달려야 한다는 얘기다. 그 시간이면 휴게소든 트럭스탑이든 자리가 없을 확률이 크다. 월마트를 이용할 타임이다. 마침 장도 봐야하고 주차장에서 밤을 샌 후 아침에 떠나면 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다시 올라갔다. 40번 도로로 테네시 주 스모키 마운틴 지역을 통과했다. 전에 네이슨과 와본 길인데 그때는 밤인데다 악천후로 고생했던 기억만 난다. 오늘은 해질 무렵이라 경치를 구경하며 왔다. 고개를 넘자마자 나오는 도시가 뉴포트다. 뉴포트 월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24시간 영업이다. 트럭을 세우고 월마트에서 장을 봤다. 주로 식품을 샀다. 얼마나 많이 샀는지 역대 최고액인 92 달러가 나왔다. 운반할 걱정 없어 마음껏 카트에 담은 결과다. 그나마 냉장고가 작아 자제한 것이다.
주차장에는 트럭 철야주차 금지라는 푯말이 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다른 트럭도 한 대 있었다. 매장에서 멀리 떨어져 일반 승용차가 없는 쪽에다 주차했으니 그리 큰 민폐는 아니다. 거기다 날이 밝으면 떠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이런 작전은 괜찮아 보인다.
어제 하루 일을 못했지만 대신 책을 읽을 시간이 나서 좋았다. 그 책은 내게 중요한 메시지 몇 가지를 던졌다. 사람이 트럭 운전을 할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는 점. 자동차를 이용하기 위해 차를 꼭 소유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다음 달이면 새로운 차를 마련해야 하는데 구입비와 유지비를 버스, 택시, 자전거, 걷기 등 다른 대안과 따져봐야 겠다. 90% 이상의 시간을 길에 세워두는 자동차가 과연 경제적인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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