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몬트 최북단 세인트 알반(Saint Albans)에 왔다.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면 캐나다다.
오늘 아침 메인 사코(Saco)에 첫 배달을 마치고, 두 번째 배달할 물건을 받으러 왔다. 고객이 같아서 그런가, 첫번째와 두번째 모두 벤앤제리(Ben & Jerry) 아이스크림이다. 한 겨울에 아이스크림 배달이라니.
어제, 월요일 아침 브라이언에게 문자를 보냈다. '브라이언, 나 돌아왔고 일할 준비 됐어.' 답이 없다. 또 씹는 거냐? 계약서도 펜딩 상태고 프라임 앱에서도 내 트럭이 뜨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 마리오에게 연락했다.
"내 계약서가 아직 펜딩 상태야."
"아 그거 원래 그래. 그거랑 상관 없이 일할 수 있어."
"내 트럭 정보가 앱에 안 뜨는데."
"그건 네 플릿 매니저가 너를 등록시켜줘야 해."
브라이언에게 전화했다.
"프라임 앱에 내 트럭이 안 뜨는데, 너가 등록해줘야 한다더라."
"난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는데."
"난 지난 주 수요일에 트럭 받았다고. 사인은 토요일에 했고."
"어 그래? 내가 알아보고 연락 다시 줄게."
브라이언은 당황한 목소리였다. 잠시 후 브라이언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정신 좀 차린 목소리다. 브라이언은 조치가 끝났다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쿨하게 노 프라블럼이라 했다. 지금 와서 누구 잘잘못 따지고 화내봐야 뭐하나. 앱을 열어보니 내 트럭 정보가 뜬다.
일감이 없는 지 오후 3시에야 해즐턴에서 오하이오 워싱턴코트로 가는 화물이 들어왔다. 월마트 화물이라 일찍 배달할 수도 없다. 일정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터미널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니 받기로 했다. 가져가라는 빈 트레일러가 야드에 없길래 트레일러 샵에서 찾아 연결해서 나가려는데 화물이 바뀌었다. 메인으로 가는 화물이다. 내일 아침 배달이고 가격도 훨씬 좋다. 브라이언이 나한테 미안해서 좋은 화물을 준 것 같다.
터미널을 나서려는데, 아웃바운드에서 트레일러에 문제가 있다고 샵으로 다시 돌아가란다. 샵에서 수리 마치고 나온 트레일러인데 제대로 안 됐나 보다. 허브실을 교체해야 한단다. 타이어도 안쪽이 마모가 심해 2개를 갈아야 한단다. 샵으로 가니 빈 베이가 없다며 난색(難色)을 표했다. 야드에 트레일러를 떼어 놓고 기다렸다. 얼마 후 트레일러를 샵으로 가져 가길래 따라가 그 앞에서 기다렸다. 수리가 끝나는대로 바로 끌고 나가려고.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남은 시간을 계산해봤다. 수리가 여기서 더 늦어지면 내일 배달에 늦을 것 같다. 디스패처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다른 트레일러 번호를 알려주며 연결해 나가란다. 야드에서 트레일러를 연결하자니 다른 트럭이 와서 자기 트레일러란다. 나는 문자를 보여 줬다. 그도 자기 디스패처에게 받은 문자를 보여주는데 트레일러 번호가 같다. 먼저 연결한 놈이 임자지.
해즐턴에 가서 드랍앤훅으로 트레일러를 받았다. 밤새 달려야 배달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첫날부터 철야운전(徹夜運轉)이냐.
블루버드는 지금끼지 운전해 본 트럭 중 승차감이 가장 낫다. 부드럽고도 단단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최신형이라 그런지 프레이트라이너여서 그런지 암튼 마음에 든다. 두달 보름만의 운전인데다 처음 타보는 모델이라 걱정했는데 금새 익숙해졌다.
산길에서 액티브 브레이크와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자주 꺼졌다. 이게 무슨 현상이지? 원래 그런건지 무슨 오류인지? 원래 그렇다기에는 너무 자주 꺼진다. 산길을 벗어나니 꺼지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한번 알아봐야겠다.
밤새 달려 펜실베이니아 - 뉴욕 - 매사추세츠 - 뉴햄프셔를 거쳐 새벽 5시에 메인에 도착했다. 배달처는 닥이 하나 뿐인 작은 곳이었지만 후진에는 문제 없었다. 닥에 대고 기다리니 직원이 출근해 짐을 내렸다.
럼퍼피(하역비)가 350달러란다. 디스패처에게 연락해 내 카드로 돈을 보내, 수표를 적어 주면 된다. 그런데 수표에 돈이 등록되지 않았다. 전화로 하다가, 상담원에게 연락해 봐도 안 된다. 앱으로 해봐도 자꾸 오류가 난다. 내 카드가 문제가 있나 보다. 아까 터미널에서 나올 때도 내 카드로 주유가 안 돼서 직원이 다른 카드로 넣었다고 했다. 처음 발행한 카드에서 종종 생기는 현상이란다. 럼퍼피는 내야 하니 디스패처에게 익스프레스 코드를 보내 달라고 했다. 익스프레스 코드로는 수표에 등록이 됐다.
짐을 다 내리니 14시간 서비스 아워가 지났다. PC(personal conveyance) 모드로 3마일 거리의 동네 트럭스탑에 갔다. 5대 주차 가능한 작은 곳인데 아침이라 그런가 주차한 트럭이 없었다. 샌드위치 하나 사서 아침으로 먹고 잠을 잤다. 오후 3시 이후에나 다시 움직일 수 있다.
다음 화물이 들어 왔는데 버몬트에서 테네시로 가는 화물이다. 누가 한번 거절한 모양이다. 배달 시간은 괜찮은데 가격은 별로다. 배달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평균이 중요하다. 올 때 좋은 가격으로 왔으니 나갈 때는 낮은 가격이라도 감수하자. 메인에서는 받아 나갈 화물이 별로 없다.
북동부의 문제는 트럭스탑도 별로 없지만, 트레일러 와쉬아웃할 곳은 더 적다는 것이다. 멀리 돌아가서 트레일러 세척하기도 애매하다. 주차한 트럭스탑에서 낙엽 청소용 송풍기로 대충 불어냈다. 이 정도만 해도 쓸만하다.
드랍앤훅이니까 트레일러 연료통은 꽉 채워서 내려놓아야 한다. 가는 길에 주유 가능한 트럭스탑은 있다. 트럭스탑에 가서 리퍼 연료통을 채우려는데 결제 승인 에러가 났다. 역시 내 카드에 문제가 있었나보다. 회사 연료 데스크에 전화하니 문제가 해결됐다. 앞으로는 괜찮겠지.
버몬트 벤앤제리는 컴퍼니 때 자주 왔던 곳이다. 컴퍼니 드라이버는 선택권이 없으니 주는대로 받아야 한다. 야간 주차도 가능하고, 직원도 친절하다. 문제는 가는 길이 무지 구불구불한 산지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 메인이나 버몬트는 벽지다 보니 고속도로망이 발달하지 않아 국도 구간을 이용할 일이 많다.
가져 갈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여기서 밤을 새고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한번 밤에 일하면 계속 밤에 일하게 된다. 시간이 허락하면 리듬을 끊어 낮운전으로 바꾸는 편이 좋다. 밤 운전도 여러 장점이 있지만 생체리듬에 맞지 않아 피로도가 높다. 더구나 산길을 밤에 달리는 것은 가급적 사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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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에서 맞은 최강혹한
겨울은 트럭커에게 힘든 계절이다. 켄터키에서 이번 겨울 최대 혹한(酷寒)을 맞았다. 중부 지방의 추위는 때로 가혹하다. 새벽에는 화씨 -3도까지 떨어진다니 섭씨로는 영하 20도다. 복장이 다소 부실해 5분 이상 야외에 있으면 생명의 위협을 살짝 느낄 정도다. 트럭 내부는 히팅이 되고 전기요도 깔아서 자는데 문제는 없다.
강추위가 왜 문제가 되나면 디젤 연료의 특성 때문이다. 디젤유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젤리처럼 굳는다. 연료필터에 담긴 디젤이 젤리화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연료 첨가제를 사용한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응급 서비스 부르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흰색은 연료에 첨가하는 응고방지제고, 빨간색은 이미 응고가 됐을 때 연료필터에 사용하는 응급처치제다. 가급적 빨간색은 쓸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밤새 엔진을 돌리는 트럭은 상관 없지만, APU로 난방을 해결하는 트럭은 밤새 엔진을 꺼놓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끔씩 돌아가는 리퍼 엔진도 마찬가지다. 극지를 다니는 트럭은 겨우내 24시간 시동을 끄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네 번의 겨울을 지났지만 시동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연료첨가제로 적절히 대응한 덕분인지, 운이 좋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데다 눈까지 약간 내려 내일 새벽 운전이 걱정이다. 중남부 지방의 제설 능력은 북동부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조심해 운전해야지.
그제 버몬트에서 출발해 뉴욕, 펜실베이니아를 거쳐 오하이오에서 하룻밤 잤다. 오랫만에 트럭스탑 커피를 마셨다. 트럭스탑 커피라고 별 것은 아니지만 이 맛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스타벅스 커피는 거의 안 마신다. 트럭스탑 커피 중에서는 파일럿이 제일이고 그 다음은 러브스다. TA는 커피 맛이 떨어진다.
오랫만에 장시간 운전을 해서인지 어제는 두통이 왔다. 만사 제쳐두고 잤다. 아플 때는 수면이 최고 보약이다. 과연 오늘 아침에는 컨디션이 돌아왔다. 두 달 넘게 공백을 가져서인지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트럭 운전 생활에 적응이 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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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는 넘겼다
내일도 춥지만 오늘보단 덜 춥다. 오늘 새벽 트럭 시동은 무리 없었다. 약간 털털 거리는 느낌이 있었을 뿐이다. 다행이다.
그 다음은 트레일러 브레이크가 잠기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제 비를 맞으며 왔기에 그대로 얼어 붙었을 가능성이 있다. 평소 트레일러는 스프링 브레이크로 잠겨 있다. 트랙터에서 호스로 공기를 주입해야 스프링 브레이크가 풀려 바퀴가 굴러간다. 추운 날에 스프링 브레이크가 얼어 붙기도 한다. 이것을 확인하지 않고 그냥 달리면 바퀴가 땅에 끌리다 닳아서 터진다.
예전에 아주 추운 날 밤, 고속도로에서 트레일러 타이어 하나가 터진 적 있다. 바퀴가 터져도 느낌이 없다. 우연히 사이드 미러를 보다가 타이어 쪽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갓길에 세우고 타이어 서비스를 불렀는데, 그 추운 밤 타이어를 교체했던 젊은 친구의 고생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일 이후로 날이 영하 이하로 내려가면 항상 트레일러 타이어가 돌아가는 지 확인한다. 밤에는 사이드 미러로 확인이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분필로 트레일러 타이어에 표시를 한다. 트럭을 조금 움직인 후 분필 표식이 위치가 바뀌었는지 확인하면 된다. 그 외에도 분필은 용도가 다양해 트럭에 하나 정도 갖고 다니면 좋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제설 작업이 어설플 줄이야. 켄터키가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라 제설 장비나 인력이 부족하다. 수십 대 장비로 눈을 밀어내고 소금을 쏟아 붙는 북동부와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제설 상태가 허술하다. 눈이 많이 안 왔기 망정이지 조금만 더 왔어도 대난리가 났을 것이다. 도로에 남은 눈이나 풀밭에 쌓인 눈이나 비슷하다.
새벽이라 고속도로에 다니는 차량은 거의 없다. 운전에 초집중하여 조심스레 운전했다. 날이 밝고 나서도 다니는 차량은 적었다. 학교는 모두 휴교한 모양이다. 차량 운행이 적어서 그런지 사고 차량도 별로 없다.

리퍼 연료나 채우고 가려고 트럭스탑에 들렀다. 어떤 트럭이 헛바퀴를 돌리며 입구를 막고 있다. 그 뒤로 나오는 트럭이 줄을 섰다. 잽싸게 그 앞에서 유턴했다. 트레일러 연료가 ¾ 남았으니 그냥 가자. 주유소를 나와서 우회전하는데 어두운데다 눈으로 도로가 덮혀 있어 하마트면 역주행할 뻔 했다.
무사히 배달처에 도착했다. 문제는 도착해서 생겼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트레일러를 잠궜던 자물쇠가 얼어붙어 꼼짝을 않는다. 손으로 당기다 나중에는 망치로 내려쳤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온컵에 남아 있던 커피를 자물쇠에 부었다. 뜨겁기는 커녕 식어서 미지근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저절로 자물쇠가 슥 빠졌다. 따뜻한 것은 차갑고 단단한 것을 이기는구나.
같은 장소에서 펜실베이니아로 가는 화물을 다시 받았다. 이런 경우 럭키다. 어제 미리 사전 계획이 떴다. 이번에도 아이스크림이다. 세 번의 배달 모두 고객이 같다. 첫 화물을 실었던 헤이즐턴(Hazelton)으로 간다. 900마일 조금 넘는데 3천 불이니 단가가 괜찮다. 품목이 같다 보니 리퍼 온도도 -15도로 같다. 여기 사람들도 친절하다. 드라이버들 먹으라고 냉장고에 종류별로 아이스크림을 넣어 두었다. 여름이라면 인기 있었을 텐데. 아이스콘 하나 먹고 아이스바 두 개는 나중에 먹으려고 챙겼다.
새로운 트레일러를 연결해 나왔다. 제설 상태는 안 좋아도 시야가 좋으니 밤보다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내 옆 차선으로 다른 트럭이 추월해 달려 나왔다. 갑자기 내 차선 전방에 비상등을 켠 트럭이 보인다. 도로 복판에 정지해 있다. 내 옆으로는 다른 트럭이 있어 차선 이동도 불가능하다. 정지 밖에 방법이 없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트럭이 기우뚱했다.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다행히 블루버드는 차선 이탈 없이 감속에 성공했다. 옆 트럭을 보낸 후 아슬아슬하게 옆 차선으로 이동해 비켜 지나갔다. 눈길에 도로 가운데 서 있으면 자칫 큰 사고 난다.
윈드실드 와이퍼 스프레이가 얼었다. 소금물이 튀어 시야가 안 좋다. 갓길에 세우고 물을 뿌리니 그대로 얼어 붙었다. 안 하느니만 못하다. 다음 트럭스탑에 도착할 때까지 참고 가는 수밖에. 트럭스탑 주유펌프에는 윈드실드를 닦을 수 있는 세정액과 길다란 밀대가 마련돼 있다. 윈드실드 세정액이 광고로는 영하 20도까지 얼지 않는다지만 실제로는 좀 춥다 싶으면 스프레이 노즐이 얼어 못 쓰는 경우가 잦다. 다른 트럭도 마찬가지다. 겨울철 운전의 고충 중 하나다.
오늘은 아직 해가 남았을 때 켄터키 매디슨빌에서 멈췄다. 어차피 내일 중으로는 도착 못한다. 크리스마스 당일인 일요일에 도착할 것이니 무리할 필요없다. 헤이즐턴에서 핏스톤까지는 30분 거리니 다음 로드가 없으면 터미널에 가서 쉬고 월요일에 다시 시작해야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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