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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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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트면 사고날뻔

성탄전야의 악몽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22-12-31 (토) 17:34:19

성탄전야의 악몽

 

 

어제는 연습이었다. 오늘이 진짜 악몽이었다. 트럭 운전 시작한 이후 주행 중 사고에 가장 근접했다. 사고를 피한게 더 신기하다.

 

이른 새벽 트럭스탑을 출발했다. 제설 상태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차량 통행이 드문 도로에서 내 뒤를 한참 따라오던 픽업 트럭이 블루버드를 추월해 나갔다. 눈길에 좀 빠르다 싶었다. 얼마 후 중앙분리대를 박고 멈춘 픽업 트럭을 발견했다. 운전자가 걸어나오는 것으로 봐 큰 사고는 아니다. 조심 좀 하지. 이것이 시작이었다. 이후로 곳곳에서 사고 차량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 중앙분리 지역이나 갓길 밖으로 떨어진 승용차나 트럭이었다.

 

켄터키는 은근히 산지가 많다. 언덕길을 달리는데 앞에 어떤 트럭이 꾸물거리길래 속도를 줄이며 옆으로 비켜나갔다. 그 앞으로는 여러 차선에 걸쳐 승용차와 트럭이 기다시피 미끄러지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블루버드 역시 그냥 미끄러진다. 도로 전체가 빙판(氷板)이었다. 암담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진행 방향으로 서서히 미끄러지는 기분이란. 앞에서 꾸물거리는 승용차는 내 사정을 알까? 이건 백프로 추돌 사고를 직감했다. 그래도 뭔가 해야했다. 브레이크와 핸들을 조작해 기적적으로 충돌을 면했다. 




트럭이 휘청거리며 중앙분리 지역으로 향했다. 거기 빠지면 자력으로 못 나온다. 토잉 트럭 부르면 기본이 천 단위로 논다. 차량 손상이라도 생겨 수리라도 들어가면 돈과 시간은 물론 싣고 가는 화물 운임료도 날아간다. 차라리 가벼운 추돌이 나았으려나? 본능적으로 핸들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겨울철 안전 운행 교육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빠지기 직전에 통제력을 회복했다. 이때부터는 모든 차량이 기어갔다. 갓길에는 잭나이프된 트럭이 서 있는데 그 바퀴 밑에 승용차가 깔려 있다. 운전자는 최소한 중상이리라.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71번 하이웨이가 스파르타에서부터 경찰에 의해 차단됐다. 그저께 1인치 정도 내린 눈으로 고속도로가 폐쇄되다니. 조금만 더 가면 오하이오인데. 블루버드를 고속도로 램프에 세우고 우회도로를 알아봤다. 길은 있지만 하이웨이가 차단될 정도면 국도의 상태는 말할 것도 없다. 아니나다를까 국도 진입로도 경찰차로 막혔다. 길은 어제부터 차단된 모양이다. 언제 뚫릴지 모른다. 내일까지 갈 지도. 주말 디스패처에게 연락하고 여기서 셧다운 하기로 했다. 어제 지어 먹고 남은 밥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경찰이 문을 두드렸다. 램프에 주차한 트럭들을 쫒아냈다. 몰려 오는 차량으로 고속도로 정체가 심해서다. 길은 막아 놓고 주차도 못하게 하면 어쩌라고? 루이빌로 다시 돌아가 인디애나폴리스로 우회하기로 했다. 200마일 정도 더 돌아간다. 시간도 더 걸리고 연료비도 더 든다. 빙판 고속도로를 되돌아 갈 생각을 하니 짜증 나지만 방법이 없다.

 

루이빌에서 65번 하이웨이를 타고 인디애나폴리스로 향하다 국도로 빠졌다. 인디애나에 들어서니 도로 상태가 달랐다. 들판에 쌓인 눈을 보니 켄터키보다 조금 더 많다. 그런데도 고속도로는 보송거릴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 마음껏 속도를 내도 불안하지 않았다. 켄터키에서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저 커브길에서 잘못하면 미끄러져 밖으로 떨어지거나 다른 차량과 부딪힐 수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인디애나는 심지어 국도도 켄터키 하이웨이보다 사정이 나았다.

 

다시 71번 하이웨이로 들어서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오니 도로 사정이 켄터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하이오 잘 사는데 왜 이러지? 미국 주별 GDP 순위에서 켄터키는 28위, 인디애나는 17위, 오하이오는 7위다. 켄터키가 가난해서 제설 능력이 부족한 줄 알았더니,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평소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은 제설 능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오하이오라도 북부 쪽은 다르다. 하긴 GDP 2위인 텍사스도 작년 폭설에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무너졌다.

 

인디애나보다는 훨씬 못하고 켄터키보다는 아주 약간 나은 제설 상태를 보인 오하이오의 71번 하이웨이를 달리다 제퍼슨빌의 트럭스탑에 들어왔다. 시간도 다 됐고, 날도 어두워 여기서 자고 가야 한다. 추운 날씨에 워셔액 스프레이가 작동하지 않아 오늘도 종일 불편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 내일은 다르겠지.

 

 

***********************************

 

분주한 성탄절

 

트럭커에게 크리스마스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도 눈길과 빙판을 헤치며 열심히 달릴 뿐. 오늘은 더 분주한 하루였다.

 

어제보다는 제설(除雪) 상태가 좋았다. 그러나 콜럼버스를 지날 때는 온통 빙판길이다. 켄터키보다 더 하잖아. 고속도로는 괜찮은데 도시 구간만 지나면 엉망일까? 시예산이 없나? 덕분에 오늘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운전에 집중이다. 어제 오하이오 턴파이크에서 50중 추돌 사고가 있었단다. 오늘도 주인 없이 버려진 차량은 곳곳에 보였다.

 

펜실베이니아에 들어서니 제설 상태가 훌륭하다. 역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다르다. 그런데, 제설이 잘 된 곳은 또다른 딜레마가 있다. 바로 소금물이다. 워셔액이 얼어서 안 나오기 때문에 20분만 지나도 앞이 안 보일 정도다. 수시로 휴게소에 들어가 닦았다. 급할 때는 갓길에도 세웠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 트럭에서 내리지 않고도 물 한컵으로 운전석 앞만 닦았다.

 



펜실베이니아는 산길을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 보통은 고속도로 진출로로 나가면 다시 진입할 수 있다. 재진입이 안 되는 곳은 No re-entry to north bound 이런 식의 사인을 붙여 놓는다. 재진입불가 표시가 없길래 진출로로 나갔다. 그런데 도로에 중앙분리대가 있어 직진해서 반대편으로 나갈 수 없다. 좌회전해서는 진입로를 지나친다. 우회전하여 갓길에 세우고 급한대로 윈드실드는 닦았지만 차량을 돌릴 일이 문제다. 좁은 2차선 국도에서 유턴은 꿈도 못 꾼다. 유턴할 공간을 찾을 때까지 산골 시골길을 달렸다. 급하다고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낭패 보기 십상이다. 한참을 가도 없다. 이러다 어느 산골에서 막다른 길에 이르는 거 아냐? 중간중간 공터가 넓은 사업장이 한두 곳 보였으나 섣불리 들어갈 수 없었다. 눈이 쌓여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공터인지 풀밭인지 알 수 없다. 예전에도 시골 트럭스탑 출입구를 놓쳐 한참 고생해 돌려나온 적이 있다.

 

더 가도 돌릴만한 곳은 없겠다. 휴일이라 물어볼 사람도 없다.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사거리에서 T자로 유턴하기로 했다. 정직각의 십자로는 아니지만 후진은 가능하겠다. 일단 우회전해서 들어갔다. 따라오는 차량을 먼저 보냈다. 뒤가 안 보이기 때문에 차량을 통제해야 한다. 눈길에 내리막을 달리던 승용차가 후진하는 트럭을 봐도 미처 세우지 못하고 사고가 날 수 있다. 이럴 때는 팀 드라이버라도 있으면 좋은데. 언덕길을 내려오는 승용차를 손짓해 세웠다. 거기서 내가 후진할 동안 다른 차량을 막아 달라는 뜻이었는데, 내가 트럭에 타자 그냥 쌩 가버렸다. 다행히 반대 방향에서 오던 픽업 트럭이 멈추더니 상향등으로 내게 신호를 주었다.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대로 후진해 반대편 길로 들어섰다. 다시 우회전 해 돌려 나왔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팝업창에 뜰 것 같다. 어제부터 많은 경험을 했다. 덕분에 겨울철 안전 운전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언제 한번 따로 정리해서 다른 트럭커와 공유해야겠다. 그래야 고생한 보람이 생기지.

 

펜실베이니아 동부로 오니 소금물이 별로 안 튄다. 여기는 눈이 덜 왔나보다. 목적지 도착 두어 시간을 앞두고 프리플랜(Preplan)이 들어왔다. 이거 배달하면 70시간 주간 근무시간이 얼마 안 남아 터미널 가서 쉬려고 했는데. 그 남은 몇 시간 조차도 알뜰하게 굴려주시는군. 나야 좋다. 제섭(Jessup)으로 가는 화물인데, 메릴랜드 제섭인 줄 알고 처음에는 못 간다고 했다. 알고보니 핏스톤 터미널 근처 제섭이다. 166마일인데 850달러 준다니 마일당 5불 30센트다. 오전에 잠깐 일하고 이 정도면 수지 맞다.

 

오늘은 513마일을 달렸다. 눈길에 천천히 달린 구간도 있고, 국도에서 트럭 돌려나오느라 시간도 소요했고, 중간중간 계속 서서 차유리 닦았고, 트럭스탑 주유 펌프가 고장나 이리저리 다녔더니 배달 마치고 14시간이 거의 다 지났다. 보통은 11시간 운전시간이 모자라지, 14시간 근무 시간은 남는데 말이다. 다행히 여기서 하룻밤 묵게 해준다. 휴일이니 업무에 방해될 일도 없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주면 된다. 분주한 하루였다.

 

워셔액은 고농도 알코올을 섞으면 얼지 않는다고 하니 조만간 구해서 써봐야겠다. 지금으로서는 날이 풀리길 기다릴 뿐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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