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빌트 안녕

오리엔테이션 마지막날, 다른 터미널과 연결해서 원격 화상강의를 들었다. 슬링샷 클래스인데 트럭 리스에 따른 비용과 수입 내역을 다룬다. 이전까지 페이롤 내역 중에서 몰랐던 부분을 이해하게 되었다.
수업 후 재입사 3인방은 곧바로 사진을 찍고 신분증을 발급받았다. 트럭만 준비되면 된다. 10대 정도가 대기 중이라니 오늘 중으로 트럭 선택이 가능하겠다. 컴퍼니 드라이버면 회사에서 주는대로 받아야 한다. 리즈 오퍼레이터는 트럭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트럭을 받고 싶냐길래 피터빌트(Peterbilt)나 프레이트라이너(Freightliner)를 원한다고 했다.
프라임에서는 세 회사의 트럭을 사용한다. 프레이트라이너, 피터빌트, 인터내셔널이다. 인터내셔널을 타면서 품질문제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 일단은 사양(辭讓)이다. 직전에 타던 트럭이 피터빌트여서 익숙하니 피터빌트부터 보기로 했다.
리즈 담당자 마리오는 피터빌트 3대가 준비돼 있다고 했다. 2022년과 23년형으로 각 8만, 4만, 3만 마일 정도 뛰었다. 내가 타던 트럭의 후속 모델이라 계기판 작동법이 약간 다르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바로 탈락시켰다. 벙커 사이드 도어가 완전히 닫히지 않고 약간 공간이 떴다. 내가 타던 트럭이 받을 때부터 그랬다. 문제는 주행 중 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고 세차할 때 가끔 물도 들어온다. 세번째 트럭은 사이드 도어가 반듯했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샵에서 정비 내역서도 받았다.
검사지의 항목을 하나씩 점검하며 체크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수리해야 하고, 수리할 정도가 아니라도 내가 고장내거나 파손한 것은 아니라는 증빙(證憑)을 남겨야 나중에 책임이 없다. 항목이 많아 꼼꼼히 하려면 한두 시간 걸린다.
점검을 시작하니 상태가 별로다. 시동 잠금 번호키도 작동하지 않았다. 비밀번호 없이도 시동이 걸렸다. 타이어 공기압 센서 모니터도 접착이 떨어져 덜렁거렸다. 결정적으로 날씨가 추운데 벙커 히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후드를 열어보니 엔진 곳곳에 녹슨 흔적과 오일이 흐른 흔적이 남아 있다. 고쳐서 탈 수준이 아니다.
마리오에게 다시 갔다. 프레이트라이너를 보여 달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보고 있으니 순서가 되면 알려주겠단다. 휴게실에서 월드컵 모로코 vs 프랑스 전을 보고 있는데 마리오가 왔다. 6만짜리와 4만짜리가 있단다. 둘 다 상태는 괜찮았다. 트럭에서 2만 마일은 별 차이가 아니어서 처음 본 6만 마일짜리를 선택했다. 색깔이 좀 더 마음에 들었다. 샵에서 정비 내역서를 받아 보니 손 본 곳이 많다. 제대로 손 봤다면 더 낫다. 엔진룸도 깨끗하고 누수 흔적도 없다. 외관도 멀쩡했다.
점검 항목표를 보며 꼼꼼하게 살피니 두어 개 정도 사소한 문제점이 보였다. 윈드 실드에 작은 돌빵 흔적이 있다. 나중에 커질 수도 있으니 교체하는 게 좋다. 와이퍼 스프레이액이 분사(噴射)되지 않는데 날씨가 추워 노즐이 막힌 것인지, 워셔액이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점검 필요로 표시했다. 트럭 전면에 부착하는 뉴욕주 스티커가 없는데 정비내역서에 주문했다는 내용이 있으니 조만간 도착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트럭이 마음에 든다.
트랙터샵 오피스에 점검표를 가져다 주었다. 내일 오전에 수리가 끝날 것이다. 셔틀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첫날만 빼고 오며 가며 맨날 나만 타고 다녀서 좀 미안할 정도다. 셔틀 버스 기사 입장에서는 나라도 타서 다행이겠지. (본사인 스프링필드는 셔틀이 3개 노선으로 다니고 항상 사람이 많은데다 밤 늦도록 운행한다.)
호텔방이 비었다. 룸메이트는 오늘 시험을 본다고 했는데, 합격한 모양이다. 트레이너를 만나 트립을 떠났거나, 트레이너가 생길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거나다. 전자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학생이 별로 없어 트레이너가 남아 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짐을 챙겨 체크아웃했다. 차를 운전해 집에 오니 밤 10시다. 트럭에 가져갈 짐을 챙겨야 한다. 내일과 모레 눈이 온다는데 괜찮으려나. 일단 사인을 하면 그날부터 돈이 나간다. 안 타도 나가는 고정비용이 일주일에 약 1,200~1,300 달러니 하루에 170~180 달러다. 그러니 사인을 최대한 일 시작하기 직전에 하는 편이 좋다. 사인을 해야 트럭에 개인 용품을 설치할 수 있으니 반나절이나 하루는 준비 시간으로 감수해야 한다. 트럭 한번 바꾸면 일이 많다. 이번에는 오래도록 잘 타야지.

프레이트라이너는 컴퍼니 드라이버 때 라이트웨이트만 타봤다. 풀콘도는 처음이라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계기 조작법도 다르고 여러 모로 익숙치 않을테니까.
프레이트라이너가 딜러샵도 가장 많고 부품도 구하기 쉽다. 프라임 트랙터샵도 프레이트라이너에 가장 특화(特化) 된 듯하다. 피터빌트는 웬만한 문제는 딜러샵으로 가야 해결되는 경우가 잦다.
처음 트럭 운전을 배울 때 피터빌트를 탔기 때문에 피터빌트에 대한 애정과 미련이 있었다. 오늘 3대의 피터빌트를 보면서 미련을 버렸다. 이제 프레이트라이너에 정 붙이고 타자. 프레이트라이너는 가장 큰 회사이기도 하고 품질도 제일 낫다. 그래서 리즈 비용도 약간 더 높게 받는다.
재입사 동기들도 프레이트라이너를 선택했다. 아프리카계는 2만 마일짜리로, 서남아시아계는 20만 마일짜리로 골랐다. 왜 20만 마일짜리를 골랐냐고 물으니 리즈가 빨리 끝나는데다 전 차주가 커스텀으로 주문한 트럭이라 실내 인테리어가 좋다고 했다. 리즈를 끝내면 보너스가 나오기 때문에 목돈을 만질 기회도 된다. 나처럼 중간에 끝내면 타는 동안 적립한 금액은 날아간다. 그래서 한국 갈 때 살짝 고민하다가 퇴사 후 복직으로 결론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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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준비 완료
수요일 트럭을 받았는데, 일요일인 오늘 트럭 세팅을 마쳤다.
출발이 늦어진 것은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에 걸친 눈폭풍 소식 때문이다. 아내가 나를 핏스톤까지 데려다 주고 혼자 눈길을 운전해 돌아갈 일이 걱정됐다. 앞으로 실컷 일할텐데 하루이틀 늦어진 들 어떠랴. 집에서 쉬며 아내와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보고 쇼핑몰에도 갔다.
어제 트럭에 필요한 짐을 챙겨 터미널에 왔다. 윈드실드 수리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트집을 잡기에는 애매한 수준이다. 더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조심해서 타자. 이제 냉장고만 설치하면 된다. 배터리에 직접 연결하는 냉장고라서 전기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직접할 수 없고 기술자에게 맡겨야 한다. 원래 어제 밤에 했어야 하는 작업인데 착오가 있었는지 오늘 아침 다시 약속을 잡아 오후에 마쳤다. 이 냉장고는 4년 전 네이슨이 내게 줬는데 아직도 잘 쓴다.
나는 정리에는 잼병인데 아내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마쳤다. 아직 정리가 다 끝난 건 아니다. 일하면서 조금씩 하자. 혼자 쓰는데다 2층 침대에 짐을 올려 놓으니 공간이야 넉넉하다. 어제 새 트럭에서 하룻밤을 잔 아내는 오늘 집으로 갔다. 트럭 히터도 잘 들어와서 편히 잤다. 집에서는 윗층의 소음에 민감해 잘 깨는 아내가 훨씬 시끄러운 트럭에서는 잘 잔다.
나는 터미널에서 월드컵 결승전을 후반전부터 시청했다. 아르헨티나가 쉽게 이기나 했더니 프랑스의 끈질긴 추격에 동점, 연장전 돌입. 연장 후반 메시의 결승골로 끝나나 했더니 다시 프랑스의 동점골. 결국 승부차기에서 4:2로 아르헨티나 우승. 이런 드라마가 없다. 아무래도 월드컵 보게 하려고 일이 늦춰 졌나 보다.
두터운 프레이트라이너 설명서를 어제 밤에 다 훓어봤다. 계기판 조작법과 트럭 특성을 파악했으니 실제 운행에서도 별 문제는 없으리라. 오늘은 워셔액을 채워 워셔 스프레이 작동을 확인했고, 부동액이 조금 부족한 듯하여 보충했다. 드라이브 타이어 공기압도 92 이상으로 올렸다. 겨울에 기온이 내려가면 공기압이 낮아진다. 달리면 서서히 올라가지만 처음부터 적정 공기압으로 채워주는 게 좋다. 스티어링 타이어는 둘 다 106이어서 손 댈 필요가 없었다. 사이드 미러도 조정했다. 후드 미러와 컨벡스 미러는 가동 범위가 이전 트럭들과는 좀 달라서 최대한 내게 맞게 한계치까지 조정했다.
프라임앱에 아직 내 트럭이 뜨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는 일감을 받을 수 없다. 마리오가 주말에는 일을 안 하는 모양이다. 토요일인 어제 계약서에 사인을 했더니 아직 담당자의 확인 절차가 끝나지 않아 내일까지 기다려야 할 판이다. 어차피 내일 디테일샵에서 윗층 침대 매트리스도 받아야 하니 잘 됐다. 충분히 휴식하고 월요일부터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
트럭 이름을 뭐라고 지을까? 제니씨는 블루맨을 추천했다. 나쁘지 않지만 블루에는 우울하다는 뜻도 있어 사양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탈 것은 여성형이다. 트럭도 she다. 그러니 여성형을 쓰거나 중성형 이름이 좋겠다. 블루버드, 파랑새는 어떨까? 트럭 운전은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이기도 하니까. 그냥 '파랑이'라 부를까? 생각 좀 더 해보자.
2025년 3월까지가 리즈 계약이다. 2년 3개월 남았는데 그때까지 잘 해보자. 천천히 오래도록 멀리. 트레이닝은 당분간 중단한다. 수입이 약간 줄겠지만, 길게 보고 가자. 인연이 닿으면 누군가를 만나겠지.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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