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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정신세계수행자, IT전문가, 영화감독, 연극배우, 라디오방송기자 등 다양한 인생 여정을 거쳐 현재 뉴욕에서 옐로캡을 운전하고 있다. 뉴욕시내 곳곳을 누비며 뉴요커들의 삶을 지척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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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섯 번째 트럭

글쓴이 : 황길재 날짜 : 2022-03-30 (수) 08:27:11

 

 

거의 새 트럭을 받고 리즈 오퍼레이터와 트레이너 경력을 동시에 시작했다.

 

지난 주 월요일 오전, 트럭이 준비 됐다는 브라이언의 연락에 핏스톤 터미널에 갔으나 트럭은 아직 샵에서 준비 중이었다. 예상했던 프레이트라이너가 아닌 피터빌트였다. 상관 없다. 어쩌면 더 좋을 수도.

 

화요일 오전, 트럭을 받고 점검(點檢)에 들어갔다. 브랜드뉴 트럭이 아닌 거의 새 트럭이었다. 주행거리는 9천 마일. 이전 사용자가 한두 달 쓰다 반납한 모양이다. 3시간 가까이 점검 목록표를 보며 꼼꼼히 살폈다. 대부분 이상 무. DEF 주입구 뚜껑이 안 맞았다. 체크. 운전석쪽 캡 익스텐더 부분이 살짝 휘었다. 잭나이프에 의한 손상 흔적이다. 종종 생기는 일이다. 수리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나중에 내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일단 체크.

 

터미널 내 바디샵에 물어보니 일주일 내로는 작업이 불가능하단다. 일단 점검표에 표시만 해두고 나중에 스프링필드 본사에서 작업하기로 했다.

 

저녁에 Y집사님이 도착했다. 나는 Y집사님을 위해 벙커룸을 잡아 뒀다. 밤 늦도록 트럭에 갖고 다니던 개인 짐을 새 트럭으로 옮겼다. 정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수납공간과 침대 위에 대충 쌓았다. Y집사님은 벙커룸에서 자고, 나는 새 트럭에서 잤다. 피터빌트의 슬리퍼 공간은 다른 트럭보다 넓었다. 그 때문인지 차량 길이도 조금 더 길었다.

 

수요일 아침, 트럭을 확인하니 어느새 DEF 캡이 새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자는 동안 매커닉이 교체한 모양이다. 아웃바운드로 기존 트럭을 몰고 가 3년 넘게 갖고 다니며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스노우체인을 반납했다. 300달러 넘게 주고 샀는데 전액 크레딧으로 환불해 준다. 무겁고 공간만 차지하는 스노우체인 대신에 스노우삭스를 사기로 했다. 재질이 천이라 가볍고 접어 보관할 수 있다.

 

샵에 기존 트럭 열쇠를 반납하고 리즈 사무실의 담당자 조를 만나러 갔다. 계약서는 50페이지가 넘고 서명할 곳도 많았지만 전자서명으로 간단히 처리했다. 스마트폰에서 다큐사인을 이용한 문서를 열어 서명이 필요한 곳에 터치하면 미리 저장한 이니셜이나 싸인이 입력됐다. 마지막 전송 버튼을 누르니 계약서 작업이 끝났다. 조를 다시 볼 일도 없었다.

 

수요일 오후, 첫 로드가 들어왔다. 펜실베이니아 농장에서 버섯을 싣고 플로리다 잭슨빌로 간다. 플로리다는 싣고 나올 화물이 없어 기피(忌避) 대상이다. 잭슨빌은 플로리다 최북단이라 조지아로 다시 나오면 된다.



 

3년만에 몰아 보는 피터빌트라 적응도 할 겸 첫날은 내가 운전했다. Y집사님은 조수석에서 견학하며 갔다.

 

95번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자정 무렵 워싱턴 DC를 앞둔 휴게소 램프에 트럭을 세우고 첫 밤을 보냈다. 금요일 새벽 배달이라 한숨 자고 가도 된다.

 

나의 다섯 번째 트럭인 피터 빌트는 보라색이다. 서류상으로는 Violet이라고 색상을 표기했다. 우리말로는 둘 다 보라색이지만 Purple과 Violet은 약간 다른 색이다. 처음엔 보라색이니까 퍼플 레인, 퍼플 레인을 부른 가수인 프린스, 보라돌이 등의 이름을 생각했다. 미국에서 차량은 여성형이다. 트럭도 예외가 아니어서 she라고 부른다. 그래서 가장 여성스러운 이름인 바이올렛으로 정했다.

 

첫 번째 트럭은 히마찰, 두 번째 트럭은 가이암, 세 번째 트럭은 유타, 네 번째 트럭은 옐로, 다섯 번째는 바이올렛이다. 너무 성의 없나 싶기도 하다. 이건 마치 누런 개니까 누렁이라고 지은 격 아닌가.

 

 

둘 다 초보

 

 

우린 둘 다 초보다. 트럭 드라이버로서 그리고 트레이너로서.

8일만에 핏스톤 터미널로 돌아왔다.

 

Y집사님과 플로리다, 조지아, 유타까지 세 번째 배달을 무사히 마쳤다. 네 번째 화물인 아이다호 감자는 모레 아침 뉴저지 배달이라 핏스톤 터미널에 내려놓았다.

Y집사님은 둘째날부터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 이틀간 나는 옆에서 운전을 봐주느라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 덕분에 첫날은 세번 정도 우회전 사고를 예방했다. 양집사님은 초보치고 운전을 잘 하는 편이었다. 사흘째부터는 나도 안심하고 잠을 잤다.

 

Y집사님은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몇 번 길을 잃은 듯 했다. 처음 가는 길을 네비게이션만 보고 정확히 찾기는 어렵다. 실제 도로와 GPS 정보가 일치하면 괜찮다. 문제는 서로 다른 경우다. 이때는 도로 표지판을 눈으로 확인하고 따라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초보들은 어어 당황하다 실제 도로보다는 GPS 방향 지시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방향을 잃고 다른 길로 들어선다. 거기서라도 방향을 돌려 제 자리로 돌아오면 다행이다. 애초에 방향 감각이 없고, GPS에 의존했기 때문에 GPS가 알려주는 경로(經路)로 계속 따라간다. 수십 마일을 돌아가야 하는 길임에도. 때로는 트럭이 다닐 수 없는 길로 이끌기도 한다. GPS는 유용한 안내도구지만, 현실과 다를 때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모르는 길을 무작정 가기보다는 갓길에라도 세우고 경로를 재확인해야 한다.

 

나는 잔소리꾼이 되었다. 내가 얘기하는 대부분이 지금 단계에서는 머리에 남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얘기로 부족하면 수백 번이라도 인내심을 갖고 반복해야 한다. 트럭 운전은 올바른 습관을 갖춰야 한다. 초기에 습관을 잘못 들이면 평생 간다. 자기 고집이 세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습관을 고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Y집사님은 콜택시 운전을 오래 해서인지 주행은 금세 익숙해졌다. 아직 승용차 운전하는 습관이 조금 남아 있지만, 일주일만에 이 정도 발전은 좋은 성과다. 엔진브레이크 사용법도 잘 익혔다.

 

트럭킹은 운전이 다가 아니다. 서류 작업을 대신하는 기기의 조작 등 할 일이 많다. 매번 차량 운행 시 ELD 조작도 필수인데 Y집사님은 종종 까먹었다. 주차 시 트랙터 에어 브레이크를 당길 때도 매번 트레일러 브레이크까지 동시에 튀어 나왔다. 엄지 손가락으로 빨간 버튼을 누르고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노란 버튼을 당기라고 시범도 몇 번 보여줬지만 소용 없었다.

 

트럭 캐빈은 우리가 먹고 자는 공간이다. 트럭커에게는 집이나 마찬가지다. 침대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옷장이 있는 슬리퍼 공간은 안방인 셈이다. 네이슨이 내게 했듯, 나는 운전석에서만 신발을 신고 캐빈에서는 벗자고 Y집사님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Y집사님은 아직까지도 신발을 그대로 신고 캐빈에 들어선다. 악의가 있거나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거기까지 미처 신경을 쓸 틈이 없어서다. 트럭 운전만으로도 스트레스 만땅이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일 테니 이해는 한다.



 


네이슨은 나를 엄격히 훈련시켰다. 그 덕분에 나는 좋은 운전 습관을 갖추었다. 당시에는, 내가 애도 아닌데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시키나 귀찮기도 했다. 나중에 혼자 운전하고 나서야 네이슨의 가르침의 가치를 깨달았다.

 

이제 겨우 일주일 지났으니 조급할 것은 없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전수하고, 나머지는 Y집사님 몫이다.

 

 

트럭킹은 비즈니스다

TNT 트레이닝 열하루 째

 

 

Y집사님의 운전은 날로 향상 중이다. 좁은 곳에서 회전할 때 트레일러는 트랙터 궤적 보다 안쪽으로 돈다. Y집사님은 이에 대한 경험과 감각이 충분치 않다. 시간이 해결할 문제다.

주행 감각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다음주부터는 후진 연습에 들어갈 차례다.

지구력도 좋아져서 주행 거리가 늘어났다. 처음엔 두 시간도 운전 못하고 쉬어야 했다. 지금은 서너 시간도 연속 주행 가능하다. 장거리 트럭커에게 지구력(持久力)은 중요하다.

 

내가 페북에 Y집사님의 고질적 습관을 고자질하는 강수를 뒀더니 곧바로 시정됐다. 에어 브레이크도 제대로 걸고, 캐빈에 들어설 때는 신발을 벗는다. 마음이 급하면 순서를 빼먹거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항상 일을 할 때는 차분해지려고 노력한다.

 

이틀 전에 미시건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화물이 들어왔다. 데드헤드도 360마일이 넘는데다, 단가도 마일당 $1.22로 낮았다. 컴퍼니 드라이버일 때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로드지만 리즈 오퍼레이터인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브라이언에게 단가가 낮아 흥미가 떨어진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곧바로 취소하고 잠시 후 다른 로드를 보냈다. 오하이오에서 뉴저지로 가는 로드라 거리는 짧지만 단가는 $2.25로 높았다. 캘리포니아까지 가보고 싶어한 Y집사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비즈니스다. 캘리포니아에 갈 기회는 앞으로도 많다. TNT는 트럭킹 비즈니스를 배우는 단계다. 이왕이면 제대로 배워야 좋다.

 

프라임에는 나보다 늦게 들어왔지만, 리즈는 먼저 시작한 윤성수 씨 부부의 조언을 따른 결과다. 주는대로 받지 말고, 거리가 짧고 단가가 높은 로드를 받아야 유리하다고 했다.

 

Y집사님은 내 예상보다 적극적이다. 그저께 오전 페덱스에 배달을 마치고 빈 트레일러를 찾으니 없었다. 흔히 있는 일이라 나는 기다리며 회사에 문자를 보냈다. 여기 엠티 트레일러가 없으니 다른 곳이라도 알아봐 달라고. Y집사님은 자기가 사무실에 얘기해보겠다며 나갔다. 나는 말리려다 참았다. 소용 없겠지만 물어봐서 손해볼 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Y집사님은 오후 7시부터 언로딩이 시작된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



 


서너 시간 대기 후 산책 겸 경내를 둘러봤다. 멀리 리퍼 트레일러가 몇 대 보이길래 가까이 가봤다. 우리가 끌고 온 트레일러였다. 짐은 다 내린 상태였다. 얼른 연결하고 나왔다. 사무실 얘기를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되는 이유다.

 

다음 화물은 토요일 오전 11시 픽업 약속이다. 가는 길에 국도변 휴게소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근처 파일럿 트럭스탑에서 샤워하고 픽업 장소로 향했다.

 

구글에는 길모(Gilmor) 농장이 영구 폐쇄된 것으로 나왔다. 실제 현장에 도착하니 영업을 했다. 구글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실을 물건은 여기서는 그린 페퍼라고 부르는 피망이었다. 놀랍게도 박스에 담긴 상태가 아니라 트레일러 바닥에 그대로 실었다. 내릴 때는 어떻게 할 지 궁금했다.

 

일요일 오전 5시 배달 약속이고, 우리는 4시에 도착했다. 정문 경비가 문을 열어주며 닥에 주차하고 7시에 체크인하라고 했다. 7시에 일어나 사무실에 가니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Y집사님은 돌아다니다 직원을 발견하고 얘기했다. 나는 디스패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무실에 직원이 없다고.

 

얼마 후 지게차를 탄 직원이 왔다. Y집사님은 다가가 얘기했다. 남미 선교 경력도 있는 Y집사님은 스페인어 강좌를 들어서 스페인어를 조금 한다. 공장의 생산직은 히스패닉이 많아 스페인어로 말을 걸면 반가워한다.

 

지게차 직원이 Y집사님 때문에 왔는지, 회사 세일즈 부서에서 연락을 취해 왔는지, 우연히 지나는 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는 우리를 공장 반대편으로 안내했다. 거기엔 트레일러를 통째로 들어올려 화물을 내리는 장치가 보였다. 어제 공장을 둘러볼 때 뒷편까지 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트럭 운전을 3년 반을 했는데 나는 벌써 타성(惰性)에 젖은 것 같다. 으례 이 일은 이런 것이고 이렇게 돌아간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Y집사님의 행동은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때로 효과가 있다. 관습과 타성에 젖은 조직일수록 새로운 피가 필요한 이유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황길재의 길에서 본 세상’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h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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