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하게 멀리 보이던 길도 한발 한발 달리다보면 어느새 지나치고 있었다. 개미에게 코끼리 잔등 같이 높고 거친 언덕길도 그렇게 넘었다. 바람이 부는 아침 갈매기들은 거친 물결 위에 편안히 앉아 휴식을 취한다. 저 하늘 위에는 또 다른 갈매기들이 바람을 타고 앉아 휴식을 취한다. 거친 물결도 세찬 바람도 다스릴 줄 알면 편안한 휴식처가 된다. 달리는 이 거친 호흡(呼吸)의 순간이 내겐 온전한 휴식의 시간이 된다. 이쯤 되면 일상의 잡사는 땀을 타고 홀연히 사라지고 달리는 것이 일상이 되고 만다. 달리기가 나를 자유롭게 하였다.
꼬부랑 쾌적한 산길로 들어선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신령의 콧김이 성스럽기조차 하다. 이런 길에서는 차들도 바쁘지 않아서 좋다. 배둔삼거리에서 출발하여 삼천포로 빠지는 길은 거친 물결과 같은 언덕을 몇 개를 넘어야 한다. 언덕을 넘을 때 마을 어귀에 몇 백 년은 되었을 느티나무가 잎사귀를 반쯤 떨구고 서있다. 나무 저 위에 잔가지로 엮인 까마귀와 지빠귀들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옹이가 여기저기 파인 늙은 느티나무의 삶이 편안하고 안락해 보인다.
숲 속에 새소리가 우렁차다.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참나무 위에 작은 새가 아련히 보인다. 작은 새의 어디에서 저런 깊고 청아한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자연은 스스로 환희에 넘쳤고 나는 내 안의 깊은 곳에 머무르고 있는 기쁨을 끌어내 자연의 환희를 맞았다. 그러나 환희도 잠시 숲 속에 더 이상 네 발 달린 짐승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슬퍼졌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서 얼마 달리지 않아 연꽃 저수지를 크게 조성하여 공원을 만들어놓았다. 연꽃은 더러운 곳이라야 잘 자란다고 하니 자연의 조화는 오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주 썩은 물이 아니라 한쪽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야한다니 지금 우리사회가 그런 것 같다. 연꽃을 피우기 가장 알맞은 사회!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는 탁하지만 어쨌거나 한구석으로 흘러가는 민주주의가 작동을 해서 아름다운 연꽃 같은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울창한 숲 속에 들어섰다. 사람에게 가장 좋은 공기를 제공한다는 편백나무 숲도 지나고 여름에도 어름같이 차가운 물이 흐른다는 얼음공원도 지났다. 삼천포대교의 입구에 들어서자 한려수도의 절경이 석양에 물든 채 눈앞에 펼쳐진다. 거울 같이 맑은 물 위에 연꽃처럼 떠있는 섬들과 포근한 포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섬 그림자가 섬보다 길게 물 위에 어리어 있다. 흔들리는 물비늘이 붉은빛을 머금고 비단처럼 펄럭였다. 대교 저편으로 달빛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삼천포대교 앞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선다. 바다는 스스로 정화할 뿐 뭍에서 일어나는 탁한 일들을 정화시키지 않는다. 다만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바다는 아침 햇살을 받은 이슬 머금은 거미줄처럼 투명하고 촘촘하다. 아침 바다 위를 달리는 나의 발걸음은 천상을 달리는 용마처럼 힘차다. 금빛 바다 위를 달리는 배도 만선을 꿈꾸며 희망의 바다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 나간다.
다리를 건너며 자전거여행을 하는 부부를 만나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다시 조금 더 가다보니 식당 앞에서 기다리다 나를 부른다. 자전거 유니폼을 똑같이 맞춰 입은 중년부부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바지락 칼국수를 한 그릇 같이 하자고 한다. 헬멧을 벗은 부부의 머리가 헝클어져 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렸다. 남해의 시원한 맛과 향을 품은 바지락 칼국수의 인정이 위장에서 만조(滿潮) 때 물만큼 차올랐다. 낯모르는 사람에게 베푸는 바지락 칼국수의 인정이 바다만큼 크고 아늑하게 전해져온다.
그들과 헤어져서 다시 한참 더 달려가니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고 적힌 큰 돌기둥이 보인다. 이순신장군이 마지막 해전을 벌이다 전사한 노량해역의 관음포이다. 그곳에는 이순신장군 영상 상영관이 있고 더 큰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에 충렬사가 있고 이락사(李落祠가 있었다. 충렬사는 충무공의 기개(氣槪)를 기리는 충무공 사당이 있고 이락사는 별이 떨어진 자리에 세워진 절이다. 아! 그때 얼마나 큰 별이 이리로 떨어졌을까?
관음포는 깊고 좁은 포구이다. 이곳은 마치 고기잡이 통발 같은 곳이다. 통발에 들어간 고기는 헤어나오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잡히고 마는 것이다. 광양만에서 적군을 포위하고 노량해협으로 나온 이순신장군은 밀물을 타고 노량목으로 넘어오는 대군을 관음포로 밀어 넣었다. 이순신이 밀어 넣은 것이 아니라 거센 물살이 밀어 넣은 것이다.
이순신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죽기로 마음먹고 싸웠다는 것이다. 적을 관음포에 몰아넣어 몰살을 시키고 자신도 죽기로 작정한 것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도 무능한 임금과 부패한 관리로부터 무고를 당하여 죽느니 차라리 적군의 손에 죽는 것이 명예롭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바다에 있는 적은 이길 수 있어도 부패한 조정의 관리들은 이길 수도 없거니와 이기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죽음으로서 져주고 죽음을 택하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었다. 그래서 광화문 네거리에 온 백성이 마음으로부터 내준 터를 잡고 우뚝 서있는 것이다.
19 세기 조선은 죽기로 나라를 구해낸 최고의 영웅도 살아갈 희망이 없었던 곳이니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이었으리라! 무능한 임금은 용맹한 장수가 필요했고, 용맹한 장수가 두려웠다. 임금은 이순신에게 수군은 힘이 없으니 육군 밑으로 들어가라는 유시를 내렸다. 그는 임금에게 장계(狀啓)를 올린다. “수군의 힘이 없다고 하나 신에게는 12 척의 함선이 있사온 즉…….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적들은 우리를 없이 여기지 못 할 것입니다.” 이 장계는 일종의 항명이었다. 이순신은 무능한 임금보다는 여린 백성의 안위를 택했던 것이다.
남해대교를 지나고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시로 들어서니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올봄에 귀농을 한 김창환 선배님이 나와서 동반주를 하여주셨다. 서투른 농사일에 적응하느라 여유가 없어서 운동도 못하신 모양인데 광양대교를 함께 뛰어주시고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저녁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광양에는 불고기 축제가 유명하다는데 마침 오늘이 축제의 첫날이었다. 사람들이 장터에 북적대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투를 벌일 때 산 위에서 횃불을 켜고 강강수월래를 부르며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던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차가 너무 많아 차를 주차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의 오랜 전통인 장날의 어수선하고 신나는 유전자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축제였다.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하다. 전남드래곤스 축구팀의 사인회도 있었던 모양인데 조금 늦었다. 하늘에는 풍등(風燈)도 날아가고 불꽃놀이도하고 태진아 쇼도 있다. 남미 전통복장을 하고 음악과 댄스를 하는 사람도 있고 터키식 케밥도 있고 독일식 쏘시지와 맥주도 있다.
지방의 축제에도 이제 세계인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 놀랍다. 아이들 놀이기구도 있어서 가족 나들이하는 사람들에게도 좋겠다. 우리들은 축제장에 들어서면서 옥수수 튀김빵을 먹었는데 이것도 굉장히 맛있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은 역시 유명한 광양 불고기, 특별한 양념은 안했지만 연한 고기 맛이 일품이었다. 운이 좋은 탓에 영양보충 실컷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