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친 발을 질질 끌며 황혼(黃昏)이 지는 어스름이 사원의 첨탑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보면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는데 그것은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다. 저물어 가는 모든 것은 덧없거나 안타깝거나 때론 보석처럼 빛나는 일인데 인도의 끝없는 들판에서는 성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 아련한 풍경은 위대한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사람의 발자취처럼 소멸(消滅) 될 때에야 비로소 평온해지는 모습 같다.
태양은 하루 동안 찬란하고 위대했다. 천하 만물을 차별 없이 따뜻한 품으로 감싸 안았다. 저물어 가는 태양의 바라보며 하루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니 힘들었지만 잔잔한 감동과 가슴 뿌듯함이 밀려온다.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미련 없이 때 되면 이 들판에서 모든 소멸에게 경의를 보내려 머리를 숙인다.
길 위에는 모든 위험이 상존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로드킬을 본다. 제일 안타깝고 슬픈 일은 개들이 많이 희생되는 것이다. 왜 영리한 개들은 차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 하는 걸까? 며칠 전에는 드물게 소 두 마리가 희생당한 채 길가에 내 팽개쳐져 있다. 오늘은 길이 완전히 막혀 차들이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손수레를 밀며 막힌 차들의 사이사이로 빠져나가서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통곡소리라 멀리서도 들린다. 나는 또 다른 소멸에 조의를 표하며 옆으로 총총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생으로 가기위한 관문일 뿐이다. 인도 사람들은 그렇게 윤회를 믿는다. 우주가 운행을 멈추지 않는 한 생명의 순환계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죽은 뒤 우리의 몸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다른 생이 올 것이다. 그래서 인도인의 철학에서는 생과 死, 생과 病, 생과 老는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봄이 오는 신선한 들녘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더 가지고 산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가진 자는 더 갖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가난하고 핍박(逼迫) 받는 사람의 조금 가진 것마저 빼앗으려 탐욕을 부리는가? 왜 강대국은 자신의 기득권과 패권을 유지하려고 갖은 음모와 술수를 다 동원하고 전쟁까지 부추기는 걸까? 베트남 전쟁에서 실패를 맛보았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증명되었듯 더 이상 전쟁으로는 패권을 유지할 수도 확장할 수도 없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다.
전쟁뿐 아니라 경제제재로도 패권을 유지할 수 없는데 자꾸 서구는 경제재재로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꼴이다. 아마 서구는 대만에서의 거사를 치루기 전에 러시아의 발모가지를 먼저 부러뜨리는 것이 수순이라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전쟁과 경제제재를 너무 많이 남발(濫發)하였다. 처음에는 효과를 보았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뭉치고, 미국을 믿지 못하는 인도가 말을 듣지 않으니 인도마저 경제제재를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쳐했다. 그래서 그것이 결과적으로 서구의 몰락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 나는 덧없고 안타깝고 추한 또 다른 애처로우면서도 한편 기분 좋은 제국주의의 소멸에 조의를 표하며 총총걸음을 옮긴다.
우리들은 언제고 전란에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극히 평온하게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하기야 전쟁의 포화 속에도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또 아기도 태어나고, 나이트클럽이나 술집에서의 토론도 이어진다. 왜 서구는 자신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가 계속 전쟁을 하도록 무기를 계속 공급할까? 그러는 동안 우크라이나의 모든 시설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전쟁으로 인해 무구한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조차 안 보이는데 세르비아-코소보 간의 전운이 감돌고, 중국-대만이 또한 그렇고, 아! 한반도는 정말 안 된다!

결국 우리는 잠깐 왔다가 가는 나그네 길인 것을! 인생에서 나그네 길이란 길 위를 걸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시간인 것을! 덧없고 안타까운 그 모든 욕망들은 시뻘겋게 달아오르다 갠지스 강가에서 장작 위에서 시커먼 재로 소멸하는 그날까지 불타지 않는 것은 오로지 평화의 노래뿐. 노래는 허공에서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평화를 준비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평화 속에 살 수 없다는 것을, 평화를 위해 다 같이 손잡고 행진하며 노래 부르지 않으면, 저항하지 않고 숨죽여 살면 우리의 평화마저 빼앗긴다는 것을, 군대와 전쟁에 의해 유지되는 평화는 거짓 평화라는 것을,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바라나시로 가는 길에 인더스 강의 지류 손 강의 다리를 건너며 평화의 고기를 낚기 위한 묘수의 낚싯줄을 풀었다 감았다를 계속 한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