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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마라톤문학
저는 절대로 엘리트 마라토너가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으면 보통 마라토너는 다 할 수 있고 제가 못 해도 다른 마라토너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도 못하는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을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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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김치와 같다

나를 찾아 나선 美대륙 5200km 횡단(32)
글쓴이 : 강명구 날짜 : 2021-05-09 (일) 04:27:28

Marathon is like Gimchi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면서 나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고 물도 건네주지만 어떤 사람은 전화기를 잡는다. 전화기를 잡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하나는 갓길이 없는 길에서 운전에 방해가 된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고, 다른 하나는 지금 우리 동네에 대단한 사람이 지나간다고 신문사에 전화를 건다. 그러나 경찰이 오든지 기자가 오든지 나에게 응원과 격려의 말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기자가 오고나면 그 다음날 나를 알아보고는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다르다.

Most people pass by and cheer me up and give me water, but some grab the phone. There are two types of people who hold the phone. One calls the police that I obstructed his driving on the road without a shoulder and the other calls the newspaper about a great man passing by in our neighborhood. However, whether the police came or the reporters came, they alike gave me words of support and encouragement. It's the same to ask this or that, but it's different there were many people to recognize, cheer and shout at me, the next day after a reporter came.

 

애든스 Athens를 지나올 때는 유난히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고 지나가던 차에서 경적소리도 많이 들렸다. 신문과 방송에 모두 내 기사가 나갔단다. 애틀랜타의 한국방송에서도 인터뷰 방송이 나갔다고 뉴스내용을 보내왔다. 트랙터로 밭을 갈던 농부가 달려가는 나를 발견하더니 내게로 다가와 아이스박스에서 차가운 물과 밭에서 갓 딴 듯한 복숭아 하나를 건네며 오늘 아침 너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며 다시 기자처럼 이것저것을 물어본다. 매스컴을 타는 일은 왠지 어깨를 으쓱하게 만든다.

There were many people who recognized me and a lot of honking in the cars that were passing by me especially when I ran up to Athens. They said that my stories were all in the newspapers and on the air. Atlanta's Korean Broadcasting System also sent me a message saying that the interview with me had been aired. A farmer who was plowing the field by a tractor found me running and came up to me and handed me a cold water and a peach that looked fresh from the field, and asks again like a reporter, saying

“I heard the news about you this morning." Getting on the media somehow makes me shrug.

 

그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내게 다가오더니 모자를 쓴 매무새를 다시 고친다. 나의 눈길은 자연히 그의 모자로 갔는데 그의 모자에는 Korean Veteran이라는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한국에 근무하셨군요?”하고 물었고 그는 “60년대 말에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이 있을 때 한국의 오산 공군기지에 근무했었지요. 그 당시 나는 일본의 오키나와에 근무했었는데 그 사건으로 급히 한국으로 파송되었지요. 그 때는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어요. 우리는 항상 비상대기를 하고 있었지요. 태극기를 보고 당신에게 쫓아왔는데 당신은 한국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이렇게 대륙을 달린다니 장하고 놀라워요. 나는 당신을 지지해요!”하며 이 노병은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나도 기억해요 내가 어렸을 때 미국의 정보함정이 북한에 끌려갔었어요. 그 무렵 1 21사태도 있었고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판문점 북한군에 의한 미군 폭력사건도 있어서 전쟁의 위험이 일상을 어둡게 감쌌지요. 나는 어서 종전의 상태가 끝나고 평화협정이 맺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는 나의 손을 잡으며 나는 당신을 지지해요. 당신이 원하는 남북통일이 오기를 기도할게요! 그 후 나는 다시 한국을 방문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TV를 통해 엄청나게 발전한 한국을 보고 놀라곤 했어요.”하고 말했다. 나도 당신이 통일된 대한민국에 초대되기를 바랄게요!”라고 말을 하면서 우리는 포옹을 힘차게 하고 헤어졌다.

The next person I meet approaches me and fixes his hat again with mock modesty. My eyes naturally went to his hat, which was engraved with the letter ‘Korean Veteran’. I asked him, "You worked in Korea, didn’t you?" And he said, "When the Pueblo was abducted in the late '60s, I worked at Osan Air Base in Korea. I worked in Okinawa, Japan at that time and was rushed to Korea. It was the very moment of danger of breaking out a war at that time. We've always been on standby. I came after you when I saw Taegeukgi, and it's amazing that you are running on this continent for the sake of peaceful unification of Korea. I support you!" The old soldier asks me to shake his hands. I said, “I also remember that. When I was a kid, an American intelligence ship was taken to North Korea. Around that time, there was a 1. 21 situation, too. I don't remember exactly, but there were incidents of two U.S. officers killed by North Korean soldiers in Panmunjom that darkened Korea with the danger of war. I hope the armistice will end soon and a peace treaty will be signed.” He held my hand and said, "I support you. I'll pray for the 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that you want! After that, I didn't get a chance to visit Korea again, but I was surprised to see Korea's tremendous development on TV." I also said, "I hope you will be invited to a unified Korea!" and we broke up with a big hug.

 

나는 이미 애팔래치안 산맥의 코앞까지 와 있다. 저 멀리 시야에 스모키 마운틴이 다가와 있다. 참 먼 길을 거침없이 왔다. 이제부터 워싱턴 DC까지 내가 달리는 길은 리하이웨이로 불리는 11번 도로이다. 남북전쟁 때 남군의 패전군 사령관 리 장군을 기리는 도로이다. 패전군 사령관의 이름을 기리는 것도 신기하다. 남북전쟁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때때로 지나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전쟁을 벌이고 싸움을 한다. 똑 같은 인격을 가진 인간을 노예에서 해방시키자는데 안 된다고 목숨 내걸고 싸움까지 할 이유는 없었다. 내전일수록 더 피비린내 나고 잔혹한 것도 말도 안 된다.

I'm already at the very edge of the Appalachian Mountains. Smokey Mountain is coming up in my sight far away. I've come a long way without hesitation. From now on, my way to Washington, D.C. is Route 11 called Lee Highway. The road is dedicated to General Lee, the defeated commander of the Southern American army during the Civil War. It is also interesting to honor the name of the commander of the defeated forces. The scars of the Civil War remain here and there. People sometimes wage wars and fight for ridiculous reasons. There was no reason to fight for life against the argument to free a human being of the same character from slavery. It is nonsense that the bloodier and crueler the civil war is.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잠자던 온 세상이 부스스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분주해진다. 한 마리 새가 노래를 하면 다른 새들도 같이 노래를 불러댄다. 제일 부지런한 물고기가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르면 또 다른 물고기도 수면을 박차고 솟아오르며 아침 기지개를 켠다. 어미 천둥오리가 부채살을 그리며 어디론가 가면 새끼 천둥오리도 쪼르르 따라나선다. 잠에서 깨어난 자연은 숲 속이고 물속이고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When the morning sun rises, the whole world wakes up, stretching itself and rubbing its eyes, and becomes busy. When one bird sings, the others sing together. When the most diligent fish jumps up to the surface of the water, then other fishes also jump up to the surface of the water and start stretching in the morning. When a mother wild duck goes somewhere drawing a fan, the baby ducklings follow her. I can hear the busy sound of nature waking up from sleeping in the forest and also in the water.

 

물도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산도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나는 어려서부터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집에서 사는 꿈을 꾸어왔다. 낙스빌은 도시 전체가 그렇다. 앞으로는 테네시강이 흐르고 뒤로는 애팔라치안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특히 스모키 마운틴이라는 천혜의 아름다운 산을 이웃하고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오밀조밀한 볼거리와 대자연이 만들어 놓은 장대한 경관이 잘 조화를 이루어 천국의 옆 동네에 온 기분이다.

Water also gives people a sense of stability, but mountains give people a sense of stability, too. I have dreamed of living in a house where the river flows in front and the mountain stretches out behind like a folding screen. That's what the whole city of Knoxville is like that. In front, the Tennessee River flows and the Appalachian Mountains surrounds it like a folding screen. Especially, it is a blessing to be near a beautiful mountain called Smokey Mountain. I feel like I'm in the neighboring village to heaven, that’s combined well with the elaborate view made by people and the magnificent view made by Mother Nature.

 

미국에서 가장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곳. 봄이면 꽃가루 알러지로 고생을 하는 내게는 필시 가장 고통스러운 곳. 꽃가루 알러지로 홍역을 치를지라도 나 눈부신 햇살 아래 흐드러진 낙스빌의 꽃향기에 취해도 좋으리라. 이 특별한 해의 오월에!’

Knoxville is the city where pollens fly the most thickly in the United States, and it must be the most painful place for me who suffer from pollen allergies in spring. Even if I were to be smothered with pollen allergies, 'I'd be glad to get the scent of the flower of Knoxville under the brilliant sun, in May of this special year!

 

너무 사람들로부터 동떨어져 외롭지도, 너무 혼잡하지도 않고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인 내쉬빌이 바로 옆에 있어 적당히 떠들썩한 곳이다. 컨트리 뮤직은 18세기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이주해온 가난한 백인들의 민요이다. 동부의 대도시에 가지 못한 이들은 애팔래치안 산맥 주변에 모여 살았다. 따라서 컨트리 뮤직은 마운틴 뮤직이라 불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싱그러운 오월의 푸르름이 햇살을 타고 달리며 확장된 온몸의 기공을 통해서 가슴으로 그대로 밀려든다.

나는 건망증이 심해서 방금 전의 일도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이상하게 남들은 기억도 없다는 유아기의 편린을 가지고 있다. 그 희미한 추억의 작은 조각 속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왕십리에도 한강이 흐르고 청계천이 흐르는 모습이 있다. 그 무렵 뒷산엔 숲도 있었다. 그 강과 청계천은 순식간에 오염이 되고 복개가 되고 그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고 산은 민둥산이 되어서 나의 어린 시절은 우울했다. 어머니의 꽃 같은 모습도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It's a moderately noisy place, which is not lonely or too crowded, for it’s located right next to Nashville, home to country music. Country music is a folk song of poor white people who migrated from Ireland and Scotland in the 18th century. Those who did not make it to the eastern metropolis gathered around the Appalachian Mountains. Therefore, country music was also called Mountain Music. The greenishness of the lush May is rushing straight into my chest through the expanded pores of the whole body while running under the brilliant sun here in Knoxville. I am so forgetful that I often forget what I just did, but strangely I have a piece of an infantile memory that others don't even remember. In a small piece of that faint memory, there were the Han River flowing and Cheonggyecheon Stream flowing through Wangsimni, where I was born and raised in the central Seoul. Around that time, there was a forest in the mountain behind my house. The river and Cheonggyecheon Stream were quickly polluted and covered with cements, and highway was constructed over it, and the mountain was ripped of all trees, so my childhood was gloomy. My mother's flower-like figure disappeared so quickly.

 

이 아름다운 낙스빌에 뉴욕에서 권이주씨가 나를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새벽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비행장에 가서 조지아의 애틀랜타에서 내려서 다시 친구분하고 같이 세 시간 반을 운전을 해서 오셨다. 그는 내가 마라톤에 처음 입문하던 해에 한인으로는 최초로 5년 전에 미대륙횡단 마라톤을 95일 만에 완주했다. 그의 마라톤이 내게 영감을 주고 도전정신을 자극하여 나도 이 험한 길을 나선 것이다. 그는 나보다 12살이 많은 띠동갑인데도 아직도 더 큰 도전을 꿈꾸고 있다. 세 달 남짓 만에 보는 그를 나는 너무 반가워 힘껏 얼싸안았다.

Mr. Kwon Yi-ju has come a long way from New York to cheer and encourage me in this beautiful city of Knoxville. He got up at dawn, took the subway, went to the airport, got off from Atlanta, Georgia, and drove with his friend for three and a half hours to meet me here. He was the first Korean to complete the trans-continental marathon in 95 days five years ago in my first year of marathon. His marathon inspired me and stimulated my spirit of challenge, so I went on this bumpy road. He is 12 years older than me, but he is still dreaming of a bigger challenge. I hugged him as hard as I could for the first time in more than three months.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우리는 길을 나서서 낙스빌의 서쪽에서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서 테네시강을 다시 건넜다. 테네시 주를 지나면서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테네시강을 벌써 네 번씩이나 건넜는데 그 중에서 네 번째 강이 제일 아름다웠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같이 달렸다. 아름다운 테네시 강변을 나이를 초월한 우정으로 함께 손수레를 밀며 달리니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Before dawn we set out together and crossed the Tennessee River again, passing from the west of Knoxville through the center of the city. While running through the Tennessee State, I have already crossed the winding Tennessee River four times, and the fourth was the most beautiful of them. We ran along the river trail for a long time. Running along the beautiful Tennessee riverside with friendship beyond the age gap, the footsteps became much lighter.

 

테네시에는 미인이 많다는 근거 없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었다. 테네시에 흐르는 강물과 숲을 배경으로 지나다니는 모든 여자들이 그저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 숲이 우거진 저 앞 길가에 아름다운 여인이 서서 사진기를 들고 달려오는 우리를 찍고 있다. 예로부터 물 좋은 곳에 미인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뉴 마켓이라는 작은 동네를 지날 때였다. 작년에 하프 마라톤을 뛴 마라토너란다. 나보고 지금까지 대륙을 가로질러 오면서 어디가 제일 인상 깊었냐고 물어본다. 나는 머뭇거림 없이 테네시라고 대답했다. 은퇴하고 여생을 보낼 곳을 꼽으라면 첫 번째로 고려할 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자신의 이름이 브랜다라고 말하는 여자는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좋아하며 자기는 이곳의 아름다움 때문에 이곳에 태어나서 지금껏 여기를 떠날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I had a myth that Tennessee had many beauties. All the women who pass through the river and forest in Tennessee just look beautiful. By the way, there is a beautiful woman standing on the road in front of the forest with a camera and taking a picture of us running to her side. It has been said that there are many beauties in the place where water is good and clean. It was when I passed by a small town called New Market. She says she is a marathon runner herself who ran a half marathon last year. She asks me where I was most impressed when I came across the continent. I answered ‘Tennessee’ without hesitation. I even added that if I chose a place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after retirement, I would consider it first. The lady who says her name is Branda likes to do high-fives with me and says she has never thought of leaving here since she was born because of the beauty of Tennessee.

 

온 몸을 휘휘 감는 오월의 진한 장미 향기와,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우정의 향기가 강물처럼 풍족하게 넘쳐흐른다. 앞으로 넘어갈 산이 높고 험할지라도 이제 나는 거뜬히 넘어 갈 힘을 얻었다. 마라톤은 김치와 같다. 땀으로 절이고 매콤한 열정으로 양념을 하고 은근과 끈기로 발효가 되어야 제 맛이 난다. 우정도 그런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절이고 매콤한 공감대로 양념을 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발효가 되어 제 맛이 난다.

The strong scent of May's rose that winds the whole body, and the scent of friendship that makes the nose wrinkle, overflow abundantly like a river. Even though the mountain ahead is high and tough, I now have the strength to easily cross over. Marathon is like gimchi. It must be pickled with sweat and seasoned with spicy passion and fermented with gentleness and tenacity to make it taste good. That's what friendship is like. It's not until a certain amount of time has gone to make it tasteful by pickling a feeling of caring for the other persons, seasoning with spicy empathy and respect for the other persons.


 

 

 

by Kang Myong-ku

translated by Song In-yeup

 

글 강명구 영역 송인엽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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