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힘들게 손수레를 밀고 고개를 오르려는데 차가 한 대 급하게 제동(制動을 걸고 선다. 앞을 보니 길 한가운데 삽살개 한 마리가 어쩔 줄 모르고 왔다 갔다 한다. 더 뒤에서 여자가 쫒아와 개를 잡으려고 하니 개는 도망친다는 게 내게로 달려왔다. 나는 엉겁결에 개 꼬리를 잡고 말았다. 호랑이 꼬리를 잡으러 가다 개꼬리 먼저 잡았다. 여자가 주인인 줄 알고 여자에게 개를 넘기려니까 여자는 잔뜩 측은한 표정을 짓고 내게 개가 저러다가 죽겠으니 나보고 가는 길에 동물보호소에 갖다 주든지 파출소에 갖다 주라고 한다.
이 바닷가 마을에 어디 유기견(遺棄犬) 보호소가 있을 것이며 파출소인들 업무도 바쁜데 유기견까지 맡아서 보호해줄 리는 없다. 나는 엉겁결에 유기견 하나를 맡아서 함께 나의 여행의 동반자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여간 성가시고 모텔을 잡을 때마다 곤욕을 치를 것이 뻔했지만 이 가엾은 녀석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줄을 끌고 함께 달리려는데 개가 다리를 전다. 무거운 수레를 밀면서 개를 한 손으로 안고 고갯길을 넘을 수도 없다. 참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안아서 손수레 위에다 태우려고 잡으니 내 손에 피가 묻는다. 배와 다리에 상처가 났다. 손수레 위에 태양광 판넬 위에 앉혀놓으니 얌전히 앉아서 균형을 잡는다. 하지만 거기다 개를 앉혀놓고 뛸 수는 없었다. 뛰려고 하니 개가 균형을 잡는데 애를 먹고 있다. 그리고 녀석은 상처가 나 있는 상태이다. 미국에서 데리고 오지 못한 내 애견 때문에 나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다음 마을 까지 녀석을 데리고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저기 전화를 해봐도 개 잃어버린 사람이 없다. 다행히 한분이 내 처지도 딱하고 개 처지도 닥해보였는지 자기가 맡아서 키울 사람을 알아보겠다고 놓고 가라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전국일주 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녀석이 상처가 있어서 그럴 수도 없다. 헤어지기 전에 어제 포항 검프 멤버들이 헤어지기 전에 준 두유를 하나 따라주었더니 배가 고팠는지 목이 말랐는지 금방 꿀꺽꿀꺽 다 마셔버렸다. 작별인사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잠시였지만 녀석도 이별이 싫은가보다.
이제 호랑이 꼬리를 잡으러 갈 차례다. 웅비(雄飛)하는 호랑이 꼬리라도 잡아야 호랑이 잔등에 올라탈 수가 있다. 범털이라도 한 끄나풀 잡아야 행세하는 세상에 호미를 잡으면 그건 대단한 것이다. 강아지가 부디 좋은 주인 만나서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호미곶으로 힘차게 출발하였다.
호미곶은 해 저무는 저녁이나 해 뜨는 아침에 오면 더 좋은 곳인데 그렇게 맞추질 못했다. 그래도 거기에 있는 상생의 손을 바라보는 의미는 대단했다. 여기저기 기념비나 동상 등 여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지만 여기 바다 한가운데 있는 상생의 손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지 않았으면서도 큰 의미가 있는 조형물이 있을까? 저 밑에서 무엇인가 끄집어 들어 올린 손 같은데 빈손이다. 빈손이지만 손에 뭔가 꽉 찬 느낌이다. 피도 없고 가슴도 없는 조형물이지만 저 손 안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상생의 귀한 값어치가 담겨있어 엄숙한 생동감이 있다. 손은 빈손 같지만 그 귀한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꽉 움켜진 형상이다. 그 손 위에 쌓인 갈매기 오물이 더 오묘한 그림을 만든다.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거친 바다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종교적인 신성함까지 느껴지게 한다. 지금도 다섯 손가락 중에 세 손가락에 갈매기가 앉아있다. 가슴이 딱 트이도록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와 용암이 분출(噴出)되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낸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독수리 바위 등 조각 작품처럼 서있는 해안을 따라 구룡포를 지나 양포항에서 오늘은 일정을 마무리 했다.
대한민국이 내게 호랑이 잔등이다. 나는 호랑이 잔등에 올라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외국에 나가살다 왔지만 조국은 나를 반겨주었 다. 고양이털을 내보이면서 범털행세를 하는 이들을 마음껏 비웃어주려고 나는 보통의 힘 이상을 쏟아내며 매일 달리고 있다. 그들이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초인적인 힘을 쏟아 부으며 달리고 있다. 대한민국 안에 사는 사람 모두가 이미 범털이라고 주장하며, 그러니 우리 모두는 범털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부르짖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