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굴은 밤하늘이었고 눈동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두 개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얼굴이 뜨거운 사막이나 대평원의 비바람을 견뎌온 흔적이라면 눈동자는 두려움, 온갖 어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해낸 의지의 광채(光彩)였다. 내 몸에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했다. 극도의 고통과 쾌감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고통과 쾌감은 한 쌍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처럼 때론 손을 잡고 때론 멀리 떨어져 멋진 연기를 하곤 했었다.
달려온 길은 분명 포장도로였지만 고난과 외로움 인내와 끈기의 숲이었다. 도전의 덩굴과 용기의 아름드리 나무들 그리고 무모하다는 질책(叱責)의 늪이 있는 숲이었다. 작은 조각배를 타고 거친 파도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대양을 횡단하는 무모함과 도전정신이 어우러진 바다였다. 설렘과 두려움이 바람과 구름이 되어 흐르는 드높은 하늘이었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 뉴저지의 뉴 홉으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심장의 파장이 커지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26 년간 살았던 뉴욕에 나를 반겨줄 사람들의 미묘한 파장과 격렬히 반응하고 있다. 지금 이 길은 몸의 묵고 낡은 기운은 모두 하늘과 땅에 방전시키고 새롭고 활기찬 기운을 재충전해서 오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의 길이다.
육신이 가장 활기차게 움직일 때 의식은 한없이 고조되어 우주의 한 가운데서 용해(溶解)되어 자아를 뛰어넘어 삼라만상(森羅萬象)으로 퍼져나가는 새로운 자아를 경험했다. 내 몸의 모든 세포와 기관이 가장 활발하고 완벽하게 움직일 때 도달하는 특별한 기쁨과 평화로움을 달리면서 느꼈다. 나에게 있어 대륙횡단 마라톤은 그 특별한 기쁨과 평화의 정체를 찾아서 떠났던 마라톤 명상여행이었다.

각종 납부금 고지서와 일, 가족과 생계의 거미줄에 걸려 꼼짝 못하고 겨우 숨만 쉬는 일상에서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생긴 두 다리의 근육은 날개가 되어주었다. 그 날개옷을 입고 대지를 날듯이 달려왔다. 어지간한 철새의 이동거리보다도 긴 3,150 마일을 달려왔다. 달리면서 척추를 곧게 펴고 가슴은 활짝 열고, 단전(丹田)에 약간의 힘을 주고 호흡을 고르게 한다. 달리는 동안 착지할 때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으면서 몸무게 중심이 발꿈치와 발가락으로 이동해가면서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기분으로 뛰어오른다.
달린다는 것은 몸이 허공 속에 공중부양(空中浮揚) 되어 있는 시간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하늘을 난 적은 있지만 사람이 보조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새처럼 날 수는 없다. 달릴 때 한 발은 기역자로 허공에 뜨고 나머지 한 발마저 대지를 박차고 솟아오르면 온몸은 하늘을 나는 형태가 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대지를 박차면서 순간적으로나마 하늘에 떠있는 기분은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다. 운동으로 군살이 다 빠진 가벼운 몸을 허공으로 차고 오를 때 심장은 그 순간을 충분히 즐긴다.
나는 언제나 홀로였다는 소외의식이 스스로를 절해(絕海)의 고도(孤島) 같은 길로 등을 떠밀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홀로였는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달리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제 뉴욕이 가까워질수록 뉴욕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심장의 자장은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겨울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마른 육신이 나의 뜀박질을 소리가 되게 하였다. 내가 달려온 길에 뿌려진 땀이 통일의 노래를 움트게 하였고, 소리가 되어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소리가 되어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였다. 달리기는 가장 원시적인 몸동작이다. 그 단순한 몸짓으로 대 서사시를 썼다. 그 처절한 몸짓으로 지상 최대 규모의 무대를 만들어 열연을 했다. 그 몸짓은 나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제사(祭祀)의 춤사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