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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한국의 주부. 14년 간 명상수행과 채식을 하고 있다. 지구환경과 동물 보호, 대체의학에 많은 관심이 있으며 가정생활에서 지구온난화를 막는 저탄소녹색살림의 노하우와 채식 정보, 영적세계의 이야기, 자연치유법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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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오르는 동물들의 끔찍한 여정

글쓴이 : 유현희 날짜 : 2011-01-11 (화) 11:58:43

경북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경기도를 거쳐 강원도까지 옮아가면서, 나라 전체가 구제역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전국에서 가축 100만 두(頭 )이상이 살처분되면서, 마치 전 국토가 그들의 두려움과 고통으로 가득 찬 것만 같다.

살처분이란 말 그대로 동물을 죽인 후에 매립(埋立)하는 것이 아니라, 산 채로 동물들을 매립하는 것이다. 즉, 살아있는 동물들을 땅속에 묻는 생매장(生埋葬)이 살처분이라는 것이다.

살처분 대상에는 만삭이 된 임신한 돼지와 갓 태어난 어린 새끼 돼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방이란 미명아래 단지 구제역이 발생한 인근 지역에 있다는 명분(名分)만으로, 두려움에 비명 지르는 동물들을 포크레인으로 내리치며 흙을 덮어 산 채로 매장하고 있다.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한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보편적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발생한 불쌍한 동물들의 처참한 최후의 장면을 각종 매체에서 목격할 때 마다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말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인간중심적이고 편향(偏向)적인 용어가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은 동식물계에서 지능과 창조적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고차원의 언어체계와 도구를 사용하고, 예술적 행위를 한다. 인간은 이러한 자질(資質)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와 문명을 발달시켜왔다. 종교적 견지(見地)에서 보면 이러한 자질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능력인데, 인간은 과연 이러한 능력을 신의 의지에 합당(合當)하게 잘 활용하고 있는가?

구약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과 같은 모양과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나온다. 하나님과 닮은 형상이라고 해서 단지 외형적 모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약 에베소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을 따라 의(義)와 진리(眞理)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신의 속성인 거룩함과 의, 사랑 또한 함께 지녀야 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는 동물을 포함한 자연계를 자신의 이익과 쾌락, 탐닉(耽溺)의 대상으로 본다. 특히 동물들에 대한 인류의 행위는 참으로 무자비(無慈悲)하고 잔혹(殘酷)하다. 비단 구제역 살 처분뿐만 아니라, 우리의 밥상에 갖은 양념으로 보기 좋게 올라오는 접시 위의 고기가 어떻게 각 가정의 식탁까지 올라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알게 된다면, 누구나가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성에 크나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현대의 축산업은 대부분 공장식 축산업이라 말할 수 있다. 공장식 축산업이란 말 그대로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이, 고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을 생산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동물의 생활습관과 본능, 편안함은 철저히 무시한 채,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는 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관리상의 편의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육을 말 하는데, 이러한 사육 환경은 동물들에겐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를 바 없다.

태어나서 도축(屠畜)되기까지 운신(運身)하기 조차 힘든 비좁은 공간과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단조로운 일상은 동물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평생을 자신의 배설물 더미 위에서 살아가다보니 축사의 위생 상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결하다. 이러한 밀집 사육환경은 질병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고 그 확산 속도를 빠르게 하므로 사육되는 가축들에게 다량의 항생제와 화학약품, 방부제를 투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 유방암, 전립선암, 고환암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성호르몬제를 다량으로 투여한다. 성호르몬이 주입된 소나 돼지는 정상보다 20%이상 빠른 속도로 자란다고 한다.

 


돼지는 다른 동물들과 교제를 하면서 하루에 30마일을 돌아다니는 매우 사회성이 강한 행동적인 동물이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인 본능마저 충족되지 않는, 한발 내디딜 수조차 없는 비좁은 쇠창살 속의 집약식 사육으로 돼지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는 극심한 스트레스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새끼 돼지들은 태어나자마자 마취도 없이 꼬리가 잘리어져 나가고, 송곳니마저 뽑힌다.(거의 잇몸 가까이 잘라낸다.) 또 수컷은 육질(肉質)을 부드럽게 하고,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마취도 없이 거세(去勢)를 당한다.


한마디로 각 가정의 식탁에 올라오는 육류는 조그만 상자 속에 갇혀 운동부족으로 잘 걷지도 못하여 도축 운반 중 육중한 체중을 견디다 못해 다리가 부러진, 다량의 항생제, 방부제, 화학약품 , 성장호르몬제를 투여 받으며 엄청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견뎌온 존재인 것이다.

 

비좁은 닭장 속에 한꺼번에 수많은 수가 갇혀, 날개 한쪽조차도 들어올리기 힘든 양계장 또한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돼지와 마찬가지로 닭들 또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정신적인 혼란 상태에서 상대방의 머리나 부리를 쪼아 대는 등 성질과 행동이 상당히 공격적으로 된다. 심지어 동종(同種)을 잡아먹는 카니발리즘의 희생물이 되는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양계농장에선 이러한 상황들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갓 세상에 눈을 뜬 병아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리 절단기에 의해 부리 끝이 무참(無慘)히 잘리는 말도 안 되는 비인도적인 탄생 신고식을 치르게 한다. 부리 안쪽에는 아주 민감한 내벽이 있어 말초신경(末梢神經)들이 퍼져 있다. 당연히 절단 시 엄청난 고통이 수반(隨伴)되리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다.

암탉의 경우는 더 처참하다. 소위 ‘강제털갈이’라는 방법으로 암탉에게 충격을 주어 알을 더 많이 낳도록 유도하는데, 강제털갈이란 밤낮의 구분이 없게 하고 며칠 동안 물과 음식을 주지 않고 어둠 속에 가두는 충격법이다. 이러한 급격한 환경의 변화는 암탉에게 온몸에 털이 다 빠질 만큼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일시적이지만 알을 비정상적으로 더 많이 낳게 하는 효과는 있다고 한다.

다 자란 후에도 인간의 식탁 위에 오르기 까지 또 한 번의 엄청난 고통의 과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기 수조에 담가져 기절하고, 자동 목 절단기에 이어 펄펄 끓는 탱크 속으로 빠진다. 더 비참한 것은 어떤 닭들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제대로 기절하지 못하고, 목이 절단되지 못하고 살아 있는 채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노란 털이 보송보송한 갓 태어난 수컷 병아리의 최후(最後)는 어떤가?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병아리 감별사들에 의해 생사의 기로(岐路)에 놓인다. 수컷으로 구분되면, 알을 낳지도 못하고 고기로 이익을 남길 만큼 빨리 크게 자라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침 공산품처럼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세상의 빛도 못보고 영문도 모른 채, 분쇄기와 연결된 대형 파이프 구멍 안으로 던져져 죽음을 맞이한다. 매년 3천만 마리 이상의 병아리가 이렇게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 된다.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이러한 잔인한 방식으로 길러져 죽음의 문턱에서조차 생명의 존재가 아닌 단지 인간의 식재료로만 취급을 받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채식주의자가 되기 전에는 접시 위의 스테이크가 동물들의 엄청난 고통의 대가(代價)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으니까 말이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진정한 만물의 영장으로 불리어지려면, 생명에 대한 존엄성(尊嚴性)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창세기 첫 장에 보면 신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는 특권을 부여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다스리라는 것’은 모든 생명체를 인간의 편의(便宜)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 신의 사랑으로 돌보고 보전하며, 필요할 땐 신의 섭리(攝理)와 자연의 순리(順理)에 따라 이용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은 오늘날 자신의 생존마저도 위태로운 현실을 자초(自招)하고 말았다. 자연의 존속(存續)이 없는 한 인간도 종말을 면치 못 한다. 인류는 이제 겸허하게 신의 의지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생명체가 평화로이 공존(共存)하는 길을 모색(摸索)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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