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인 물의 도시이다. 빙하가 깎아내린 천혜(天惠)의 절벽이 즐비하고 강폭과 수면이 깊어 실로 장관(壯觀)을 이룬다.
역설적으로 이런 멋진 환경은 토목․건설인들에게는 큰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다리 하나를 건설하는데도 몇 배의 힘이 들고 터널을 하나 뚫는데도 수많은 희생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리 하나 터널 두 개. 뉴욕시와 뉴저지를 가로지르는 허드슨 강을 이어주는 연결 체계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에 의해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뉴욕과 뉴저지를 잇는 대역사가 2009년 6월 8일 첫 삽을 떴을 때 언론에선 100년만의 대역사(大役事)라는 표현을 썼다.
8년에 걸쳐 North Bergen에서 34가 Penn Station까지 약 5마일의 지하 철도를 건설하는 것이 이 공사의 핵심이었다. Penn Station도 기존의 7 애버뉴에서 한인 상가가 밀집한 6 애버뉴까지 확장(擴張)해서 기존의 Path Train과 연결을 하고 42가 8 애버뉴가 종점인 7번 전철을 34가까지 연장해서 새로 확장된 Penn Station과 연결하는 등의 다른 계획도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오늘은 뉴욕 뉴저지를 연결하는 항만 도로, 다리, 터널의 역사를 인류학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다.
뉴욕 뉴저지에서 기차나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공통된 불만이 있다. 시설이 너무 낙후되있고 매일 무엇인가 고장이 나거나 부서져 있다는 것이다. 짜증이 나는 일이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최소 50년에서 100년전에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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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 지하철이 최초로 건설된 것은 무려 107년전인 1904년이다. 42가 타임 스퀘어에서 125가 할렘까지를 연결하는 IRT(Intra Rapid Transit의 준말) 현재 1번과 9번 전철이 효시(嚆矢)였다. 그 이후 무려 30개의 크고 작은 라인들이 건설이 되었는데 이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설명을 하겠다.
이와 동시에 뉴저지 호보켄과 뉴욕 브로드웨이 34가를 연결하는 Path Train이 1908년에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다. 독자분들 중에 왜 뉴욕시 전철과 Path train이 연결이 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는 뉴욕시 전철망의 초창기 역사를 살펴봐야 해답이 나온다.
당시 건설된 IRT는 국영이 아니라 사설회사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Path(Port Authority Trans Husdson의 준말)도 사설회사였다. 두 회사 모두 32년 대 공황 때 도산(倒産)해 뉴욕시 정부가 인수해서 현재까지 운행을 하고 있다. 간단히 역사를 살펴보자.
1909년에는 지난 9.11 사태때 무너졌던 또다른 Path Train Jersey City와 World Trade Center가 위치해 있던 뉴욕시 남단을 연결하는 또 다른 Path Train Service가 시작되었다.
1910년, North Bergen과 뉴욕 Penn Station 직통 Pennsylvania Railroad Line이 서비스를 개통하였다. 2년전 추진한 시공 터널이 100년전 서비스를 시작한 철로의 쌍둥이 라인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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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7년 후 지난번 중국계 미국인의 역사에서 잠깐 언급했던 Holland Tunnel이 1927년 완공되었다. 1931년에는 맨해튼 북부 George Washington Bridge 상층부가 개통되었다. 1937년에는 맨해튼 중심부로 바로 들어오는 Lincoln Tunnel 3개 도로 중 가운데 터널(Central Tube이라고 불림)이 완공되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2차 링컨 터널(North Tube)이 1945년 3차 터널(South Tube)이 1957년도에 완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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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62년 George Washington Bridge 하단부(Lower Deck) 건설을 끝으로 뉴욕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교량, 도로 건설은 무려 50년 가량 멈춰진 상태이다. 같은 기간 동안 뉴욕시 인구는 1910년 당시 150만에서 8백만으로 무려 6배가 증가했고 뉴욕과 뉴저지를 오가는 유동인구는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1910년 20만에서 현재 200만명으로 10배가 증가했다.
시설이 낙후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매일 무엇인가 부서져나가는 것이 이해가 된다. 사실 100년이란 역사를 돌이켜보면 오히려 이들 구조물이 튼튼하게 견뎌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해야 할 지경이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건설을 했던 당시 미국의 저력(底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 보자 뉴욕 지하철이 개통된 1904년은 치욕의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기 1년 전이고 뉴욕 Penn Station이 완공된 1910년은 일제 합병이 되던 해다. 우리 한민족에겐 가슴 아픈 질곡의 역사 한 가운데서 Path Train을 전철 방식으로 시작한 미국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참고로 이 두 개 전철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건설된 맨해튼 북부의 발전소는 195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 생산 공장이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불과 30-40년 내에 이런 미국의 엄청난 기술력을 따라 잡고 있는 한민족의 은근과 끈기에 찬사를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