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엉슬렝 수용소는 한때 아이들이 푸른 꿈을 꿨을 고등학교였습니다. 남국의 야자수들이 평화로운 정경을 연출하는 이곳이 30여년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속에 숨져간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월은 덧없는 것일까요. 캄보디아로선 씻을 수 없는 오욕(午辱)의 현장이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박물관으로 개조해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몸짓을 보이는 것은 다행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철망을 드리운 것은 수감자들의 투신 등 자살을 막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고통과 공포속에 지친 사람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의 집행마저 잔인한 폴 포트 정권의 권한이었으니까요.
이 좁은 공간에 몇명이나 갇혀 있었을까요.
누군가를 묶었을 쇠사슬 일부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벽에 무언가 낙서같은게 있었습니다. 갇혀 있던 사람들이 쓴 것일까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곳이 본래 학교였다는 흔적이었습니다. 아마 학생들이 수학공식같은 것을 써놓았던 모양입니다.
다름아닌 학교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고 종국엔 죽음에 이르게 한 비극의 현장으로 만든 폴 포트 정권과 그 하수인들에게 분노가 끓어 오릅니다.
학살의 주범 폴 포트는 본명이 아니라 별명입니다. 영어의 Political Potential 혹은 프랑스어 Politique Potentielle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정치적 잠재성' 정도의 뜻으로 이름을 만들게 된 연유가 불분명하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겠지요. 동물만도 못한 야만의 행위가 지금 이렇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 그게 전쟁과 살육을 막아야 할 이 시대의 함의(含意)가 아닐까요.
킬링필드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골들입니다.

끔찍한 죽음의 땅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이곳을 거쳐간 2만명 중 살아남았다는 단 6명. 그들의 사진입니다.
이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른 주범들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요. 폴 포트는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단 4년간 200만명을 학살했고 강제이주정책과 노동정책, 흉년, 기근 등의 질병으로 다수의 국민이 아사하였습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에서 월맹의 편을 들었지만 끔찍한 학살행위에 부담을 느낀 베트남 정권은
그와 결별, 반체제 인사를 지원했습니다. 결국 1979년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정권을 잃고 북쪽 국경 밀림지대로 달아나 게릴라전을 수행한 그는 1998년 가택 연금 상태에서 사망했습니다.
비록 연금을 당했다고는 하나 자연사 했으니 천수(天壽)를 다한 셈입니다. 이래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하는걸까요.
지난 가을엔 뚜얼슬렝 수용소장에 대한 단죄가 이뤄져 세인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유엔이 후원하는 캄보디아 특별법정이 전쟁 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된 전 뚜얼슬랭 수용소(일명 S-21)소장 카잉 켁 에아브(68)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것입니다.
당시 AFP통신은 ‘도이크’로 불린 에아브가 1975년 프놈펜의 한 고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수용소에서 2만여명을 대상으로 ‘혁명의 적’임을 자백할 때까지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고, ‘킬링 필드’ 중 한 곳인 근처 과수원에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재판에서 도이크는 방탄유리가 설치된 피고인석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선고 내용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형도 무기징역도 아니고 30년형이라니, 아직 과거사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먼 캄보디아 정권의 한계를 보는듯 합니다.
역사의 오욕을 간직한 채 오늘도 뚜얼슬렝 박물관 위로 무심한 새털구름이 하나 지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