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발생한 탈북고아 9명의 북송사건이 국제적인 논란거리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들이 14세에서 23세의 고아청소년들이라는 점에서 세계인의 관심은 뜨겁다.
더구나 북한이 이례적으로 이들에 대한 합법적인 신분세탁과 중국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통해 압송한 전광석화(電光石火)같은 북송작전을 벌여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북한의 입장에서 김정은 체제이후 남한에 대한 북한외교의 첫 승리가 될 것이다. 그간 탈북자 인도에 관대했던 라오스로 하여금 남한의 요구를 뿌리치고 북한편을 들게 한 ‘일대개가(一大凱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주모 선교사 부부와 탈북청소년들이 라오스 국경지대에서 체포된 이후 무려 18일간 단 한차례도 한국대사관 관계자를 면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0일 라오스 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빌어 한국정부가 이들에 대한 공식면담을 요청한 적이 없고 탈북청소년들도 한국행을 원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보도했다.
외교통상부는 사건초기부터 면담요청을 했다고 강조하며 명백한 오보(誤報)라고 발끈했지만,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가 막대한 원조를 하는 라오스를 상대로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청소년들의 얼굴조차 한번 못볼만큼 한국 외교의 현주소는 참담한 것이기때문이다.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100번이 넘는 도움 요청을 했다는 주선교사의 주장과 대사관측의 말이 다르고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 너무나 많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아이들을 놓고 우리 대사관이 과연 어떤 노력을 어떻게 기울였는지, 왜 라오스에 어이없는 뒷통수를 맞았는지 국정조사를 통해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밝혀져야 한다.
세간에는 ‘탈북고아들이 개성공단 사태 등 남북 대화 재개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말이 돌고 있다. 그런가하면 ‘아이들의 북송을 유도해 남북대립을 심화시키려는 강경파의 술책’이라는 음모론(陰謀論)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술 더 떠 라오스당국은 선교사 부부가 이들의 인신매매(人身賣買)를 시도했다는 말까지 늘어놓고 있다. 북한이 아니라 제3국인 라오스가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간 탈북자들을 위해 노력해온 민간단체들의 인권활동이 한 순간에 매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대한 망언(妄言)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송된 청소년들의 안위(安慰)를 걱정하고 있다. 이들이 고문을 당하는 것은 물론, 처형당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잡히기 불과 35분전에 찍었다는 사진속의 아이들은 ‘브이’자를 그리며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이보다 훨씬 어린듯한 아이들, 부모도 없는 그들이 지금 어디서 어떠한 위험속에 처해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역설적으로 아이들이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덕분에 안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조사가 끝난후 ‘남한간첩의 꼬임에 빠져 인신매매될뻔한 공화국의 아이들이 무사귀환했다’며 대대적인 선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안전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진 후에도 신변에 문제가 없을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UN은 지난 31일 대변인 발표를 통해 “나비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실이 라오스 당국에 이들 탈북자 운명과 북송 당시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촉구했다”며 “북한 정부에 탈북자들에 대한 독립적이고 즉각적인 접근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UN의 수장(首長) 반기문 총장이 공식 발언을 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탈북자들이 북송된 사건이 아니다. 대부분 미성년인 아이들의 인권과 생명에 관한 일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북한땅에서 걸어나왔고 남한 혹은 미국의 제3국행을 원했다는 증거들은 얼마든지 있다. 명백히 난민(難民)인 그들이 의지에 반해 강제북송된 것은 국제법에 저촉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반기문 총장은 UN 차원의 공식면담을 반드시 성사시켜 아이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항구적인 안위를 보장받아야 한다.
강조하건대 ‘탈북고아 북송’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태에 책임있는 외교부가 자체 진상조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서는 안된다. 엄중한 국정조사를 통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반면교사로 삼고 적어도 인권문제에 관한한 여와 야는 정파와 이념을 떠나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