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스포츠신문의 사회부 데스크였던 나는 16강전부터 일본에 건너갔다. 공동개최국이었던 일본 현지의 분위기를 취재하고 사회문화 현상 등을 살펴보는게 주요 관심사였다.
그전까지 일본을 여러 차례 취재했지만 한일월드컵은 일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끔 한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인상깊었던 것은 일본 매스컴과 국민들이 한국에 보인 호감(好感)이었다. 일본은 이미 16강전에서 탈락한 터라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을 법 한데 강호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격파하는 등 선전을 거듭하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스포츠신문들은 연일 한국 대표팀을 주요 기사로 다루고 TV는 한국에 파견된 리포터들이 서울과 지방 곳곳을 누비며 붉은악마 열기와 다양한 화제 등 스케치 기사를 쉼없이 전달했다.
한국이 스페인과 8강전을 할 때 나는 오사카 총영사관에서 동포들이 TV 합동응원을 벌인 현장에 있었다. 승부차기 끝에 짜릿한 승리를 거두자 동포들은 밖으로 뛰쳐나왔다.
총영사관 앞에서 신바람나는 풍물로 분위기를 달구다가 급기야 수백명이 징과 꽹과리를 치며 도심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아마도 재일동포들이 시내 한복판에서 벌인 최초의 퍼레이드였을 것이다.
행진을 따라가면서 내심 긴장을 했다. 오사카 한복판에서 한국인들이 월드컵 8강에 올라갔다고 풍물패를 앞세우고 요란하게 자축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적잖이 신경 쓰였다. 16강에서 탈락한 일본인데 달갑지 않은 이웃나라가 4강에 진출했으니 배알이 꼴릴수도 있지 않을까 한것이다.
그러나 기우(杞憂)였다. 행진을 따라다니던 2시간 내내 해꼬지를 한다거나 불만의 제스처를 하는 일본인을 한명도 목격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부러움 가득한 표정을 짓거나 함께 기뻐해주며 박수를 했다. 솔직히 놀라웠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과연 반대였다면 우리는 일본의 승리를 흔쾌히 축하해줄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많은 침탈을 받고 혹독한 일제 식민까지 겪은 피해자라는 점이 고려되야 하겠지만 일본 국민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 신드롬’은 월드컵 결승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매일 저녁 TV를 켜면 붉은악마와 한국에 관한 뉴스가 넘쳐나는 등 당시 일본을 휩쓸었던 잉글랜드 축구스타 ‘베컴 열풍’을 능가할 정도였다.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이 열린 날 도쿄의 스타디움에서 재일동포들은 초대형 TV화면을 보면서 일본인과 다른 외국인들도 함께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 그때 어눌한 한국말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구호와 함께 손뼉을 치던 한 일본인 청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감동과 놀라움은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이 끝나고 절정에 이르렀다. 다음날 일본의 스포츠신문들은 일제히 1면과 2면, 3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하는게 아닌가. 한국과 터키 선수들이 어깨동무한 채 관중들에게 인사하는 감동적인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은 신문들을 보고 내가 한국에 있는건가 어리둥절 했다.
그때 체험을 계기로 일본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고 ‘가깝고도 먼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아베 신조 트위터
일본 아베 신조(安倍 晋三) 정부의 무역보복으로 우리 국민감정이 들끓고 있다. 일본 상품을 불매하고 일본관광도 가지말자는 ‘일본 보이코트’ 운동이 민간에서 시작되고 있다.
당연하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만부득(類萬不得)이지 누가 누구한테 ‘보복’ 운운한다 말인가. 보복은 자기가 입은 해를 되갚는 행위를 말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앙갚음이요, 응징이다. 일본이 지금까지 저지른 역사의 악행들 낱낱이 열거하자면 매일 우리가 보복해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보복’을 얘기하고자 한다. 지금 일고 있는 ‘보이코트 운동’이 정말 일본이 아파하고 뼈아픈 교훈이 되야 하니 말이다.
일본의 무역보복은 이미 저들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올만큼 양날의 칼이다. 국제적 이미지 훼손(毁損)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아베가 무리수를 둔 것은 여러개의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곧 예정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2 이상을 당선시켜 개헌을 하겠다는 요량이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기 위한 책략이다. 북핵문제로 극우여론을 결집시켜 군사무장의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북미 정상이 판문점회동을 하는 등 사실상 종전의 수순으로 나가고 있으니 똥줄이 탈 법도 하다.
그동안 반북(反北), 반한(反韓), 혐한(嫌韓) 감정을 장기집권의 수단으로 삼은 아베로서 가장 만만한 대상은 남한이다. ‘역대급 친일정부’였던 오바마와 박근혜때 위안부 등 역사문제에 쐐기를 박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기화로 한 평화헌법 폐기 시나리오가 트럼프집권과 박근혜탄핵으로 뒤틀려가는 지금, 마지막 고육책은 남한을 자극하여 갈등과 분쟁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전례없는 일본 자위대 전투기의 위협 비행과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무역보복을 생각해보라. 아베는 내심 우발적인 군사 충돌까지 유도하는 듯 하다.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은 여하한 한국과의 분쟁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과 많은 나라들이 제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더욱이 남한은 국민감정이 냄비끓듯 쉽게 달아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 무리수가 나올 것이라는 계산을 틀림없이 했을 것이다. 은근히 일본을 두둔하며 ‘문재인 때리기’에 골몰하는 자한당과 수구언론 등 극우세력은 얼마나 든든한 일본의 뒷배인가.
아베의 속셈을 간파해야 한다. ‘일본안가기’, ‘일본상품 불매’는 정신승리는 될지언정 현명한 보복이 아니다. 글로벌경제체제에선 일본의 무역보복이 꼭 우리만의 손해가 아니듯, 전면적인 일본 보이코트가 일본만의 손해로 귀결되지 않는다. 우리가 배척하는 일본상품에 우리의 원자재가 포함되고 우리가 거부하는 일본관광으로 우리 업체들과 동포사회가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한번 따져보자. 일본 인구는 1억2천만명이고 한국은 40%인 5천만명이다. 그런데 현실은 일본보다 세배 가까이 관광을 더가고 자동차 수입률은 수백배의 역조(逆調)가 난다. 일본 국민들이 애국심 때문에 한국관광을 덜 가고 한국자동차를 안탄다고 치부해선 곤란하다. 관광 인프라 문제든 가격대비 차량 성능이든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차제에 일본이 무역보복은 엄두도 못내도록 대일의존도를 줄이고 수입선 다변화, 반도체 국산화율을 높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北)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세계 최악의 경제제재를 십수년째 받아왔지만 핵무력을 완성하고 더하여 경제까지 나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일본 보이코트’는 감정이 아니라 합리적 이유로 전개되야 한다. 후쿠시마 방사능 때문에 일본관광을 피하고 해당지역 농수산물과 상품의 우려로 수입을 금하거나 불매해야 한다. 일본의 무역보복을 격앙된 감정으로 맞대응하면 상대의 감정 역시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국내에서 활동하는 일본연예인 퇴출 압력은 실리와 명분을 따질 것도 없는 졸렬한 짓이다. 아베는 지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아베집권이후 의도적인 이미지 훼손으로 반한감정을 조장했어도 절대다수의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 악감정이 없고 중립적이다. 앞서 2002년 월드컵의 예를 들었듯 얼마든지 일본국민들을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다.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며 자국민을 이용하는 아베류의 소수 극우정치인들이 문제의 핵심이다.
일본에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1995년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와 일제 종군위안부의 존재 및 강제성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1993년 ‘고노 담화’를 떠올려보라.
무라야마 전 총리
아베류들이 설 자리를 잃게 하고 양식을 갖춘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도록 힘을 실어주면 어떨까. 남북이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본의 야당 정치인이나 자민당내에서 고노담화를 계승하는 정치인들의 방북을 주선하며, 이들의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다. 사회 문화 예술 체육 등 민간차원의 교류를 정례화 하여 북한을 이해하고 호감을 갖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도록 하자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서 ‘토착왜구’로 불리는 자한당류 정치인들을 말끔히 청소하는 작업이다. 겉모습만 한국인을 한 채 극우일본과 이해를 같이 하는 정치모리배들을 청산하고 문재인대통령을 사사건건 헐뜯으며 악의적 이미지 구축에 혈안이 된 적폐언론을 불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일본 보이코트’다.
아베류가 날뛰는 일본과 토착왜구가 설치는 한국의 공통점은 역사의 단죄를 못했다는 점이다. 수천만명을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한 2차대전의 전범국 수괴라 할 일본왕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도조 히데키(東條 英機) 등 소위 ‘A급 전범’ 7명만 처형됐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들의 위패는 그들이 죽음을 이르게 한 피해자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돼 영웅이자 희생양으로 추모되며 당당히 면죄부를 받았다.
만일 히틀러가 살아서 천수를 누리고, 명령을 집행한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 등 몇 명만 처형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독일 정치인들이 정기적으로 참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해방후 일제 36년간 반민족행위를 한 악질 친일파들이 처단은 커녕, 신생 공화국의 기층세력이 되고 독립투사들과 후손들은 핍박을 받은 굴절과 오욕의 대한민국이 그나마 낯을 들게 된 것은 이승만 독재를 끝장낸 4.19 학생혁명과 전두환 군사정권의 항복을 받아낸 6.29 선언, 세계 초유의 무혈시민운동인 3.10 촛불혁명 덕분이다.
안팎으로 켜켜이 쌓인 적폐(積弊)를 일소(一掃)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할 수 있다. 반드시 해야만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먼 훗날 부끄럽지 않은 조상이 되기 위한 역사의 책무이다.
로담(爐談) newsroh@naver.com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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