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으로 풀려나온 무기수의 인기수기였던 <빵간에 산다>가 李元世 감독으로 영화화되는데 타이틀롤인 김영식역엔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신인인 金秋鍊 군이 피컵되었다. 釜山 출신의 김군은 이색적인 마스크에 좋은 체격을 지녔는데 그 상대역으로는 禹演征 양이 출연한다.>
1974년 10월 16일 경향신문 8면에 1단기사로 실린 내용이다. 원문을 보면 요즘 젊은 독자들은 읽기가 너무 불편할 것이다. 깨알처럼 작은 활자, 한자도 섞인데다 그것도 세로쓰기이니 말이다. 오래됐다면 오래 된 27년전 신문이지만 지금에 견주면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의 기사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피컵이라니? pick-up을 소리나는대로 쓴 모양인데 명색이 일간신문인데 그 시절엔 영어를 이렇게 무자비(?)하게 써도 되었는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까까머리 중학생이었지만 김추련은 내 기억에도 선명하다. 주간한국이었을것이다. 김추련이 <빵간에 산다> 촬영 에피소드를 취재한 것이었는데 상대역인 우연정에게 압도됐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우연정을 볼륨있는 육체파 여배우로 탑클래스였다.
나이는 김추련이 위였지만 연예계 데뷔는 우연정이 훨씬 앞서 연기지도를 받았고 특히 베드신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김추련. 이름도 특이했고 외모도 잘 생긴 미남이라기보다는 개성있는 호남이었다.
이때의 인터뷰가 유독 기억에 남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후 우연정이 골수암으로 한쪽다리를 절단하게 된 안타까운 사연때문이었다. 섹시스타로 인기를 모은 여배우에겐 죽음보다 더 큰 형벌일 수도 있는 시련에도 우연정은 종교의 힘과 예쁜 딸의 출산으로 삶의 희망을 이어갔다는 이야기를 간간 들을 수 있었다.
우연정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빵간에 산다>의 김추련이 떠올랐다. (우연정의 딸 윤은영은 지난해 MBC드라마 <황금물고기>를 통해 주목받으며 엄마와 함께 아침토크쇼에 출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빵간에 산다>는 각기 다른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만난 남녀의 사랑을 통한 갱생의 과정을 그린 멜로드라마로 그 해 김추련은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수십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의 대표작은 1977년 장미희와 함께 출연한 <겨울여자>를 꼽을 수 있다.
조해일의 베스트셀러를 김호선 감독이 영화화한 <겨울여자>는 58만명의 관객 신기록을 세우는등 큰 인기를 모았다. 당시는 멀티플렉스도 없고 전국 관객 실적도 파악할 수가 없는 시절이었다. 서울 개봉관 한곳에서만 동원한 관객이었으니 엄청난 흥행 성공이었던 셈이다.

겨울여자외에도 김추련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정윤희와 함께 <꽃순이를 아시나요>에 출연했고 한때 겹치기 출연으로 몸살을 앓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겨울여자이후 이렇다할 흥행작은 없었던 그는 81년 부산에서 보컬그룹 ‘휭거스’를 조직해 밤무대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 활동하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가정적으로는 불운했다. 부인과 파경 재결합 다시 파경을 거듭하며 종내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TV와 영화 등에 간헐적으로 출연하던 그는 91년 <어느 중년부인의 위기>를 끝으로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췄다. 왕년의 스타로 세인의 뇌리(腦裏)에서 잊혀져가던 그가 돌연 자살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8일 들려왔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오피스텔에서 약 3개월 간 지내면서 지병과 우울증 등으로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매체에선 그를 원로배우라고 표현했지만 향년 64세, 아직도 많다고 볼 수 없는 나이에 한때 충무로의 원조 터프가이로 통한 그에 대한 수식어치고는 사뭇 어색하기만 하다.
겨울여자의 김호선 감독은 김추련의 자살소식을 접한 후 한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음이 약하고 여린 친구”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막내아들 결혼식때도 만나는 등 잘 지내고 있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 했다.
사실 그는 최근까지 가수활동에 대한 의욕이 많아보였다. 56세이던 2003년 1집 음반 ‘영원한 사라’를 발표했고 올해 3월에는 정규 4집 ‘내 연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인은 자살하기 이틀전 지인인 강모 씨에게 한통의 등기편지를 보냈는데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아마 나는 저 세상에 가 있을 것 같다. 내 죽음을 확인한 후 112에 신고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A4 한 장 분량의 유서에는 “평생 영화배우로 살아오면서 한 때는 ‘겨울여자’라는 영화로 최고의 인기 배우로도 인정받았지만 많은 세월 뒤에 아쉬움도 많았고 행복했다...이제 인생을 마무리하고 떠나련다. 외로움과 어려움이 나를 못견디게 했다. 주위 분들께 죄송하다. 나를 사랑해주신 팬들께도 죄송하며 감사드린다”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얼마나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길래 죽음을 결심해야 했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녕 죽음이 답은 아니었을텐데. 고인의 명복(冥福)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