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방장하던 30대 초반, ‘포도 단식(다이어트)’이라는걸 해봤다. 일주일 과정이었는데 먼저 3박4일간 일체의 곡기를 끊는 대신 하루 한번 포도 두송이가 식사의 전부였다. 그리고 사흘은 회복식이라 하여 감자 으깬 것을 먹으며 서서히 정상 식사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어디가 아파서 한 것은 아니었고 포도가 완전식품이라 하여 껍질과 씨까지 씹어먹으면 몸에 좋다는 후배 말에 인내심도 시험해볼 겸 셋이서 죽이 맞아 벌인 일이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정상적으로 근무를 하며 해야 했다는 것이다. 매일 직장까지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출퇴근 하고 취재도 다니며 몸을 움직이는 활동량이 많은데다 평소 식사량이 남보다 많은지라 밥을 굶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흘 되던날 출근하는데 전철을 갈아타기 위해 서울역 계단을 올라가는데 숨이 차고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매일 근무를 하면서 달랑 포도 두송이만 먹었으니 힘이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허기가 지면서 두통도 느껴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단식을 하면 움직임을 최소화 하는구나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황교안 블로그>
단식농성에 들어갔던 자한당 황교안대표가 8일만에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갔다. 알려지기로 이번 단식 농성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몸에 무리가 안되도록 감식도 했고 거사일 전날엔 병원에서 영양제까지 맞은 사실이 드러났다. 농성장에 임신부 당직자도 불침번을 서라고 했다는 일도 포함하여 ‘황제 단식’ ‘민폐 단식’이라는 조롱(嘲弄)도 쏟아졌다.
애당초 그이의 단식 농성은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단식의 이유가 일본과의 군사교류협정(지소미아) 등을 앞세웠으니 얼척이 없었던게다. 덕분에 ‘해방이후 처음 일본을 위한 단식열사가 등장했다’는 희한한 평가도 나왔다.
솔직히 얼마나 버틸지 궁금했다. 단식 사흘만에 지소미아 종료유예 결정을 내린 청와대로부터 “목표를 이뤘으니 이제 그만 하시라”는 꼬드김(?)이 나왔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었겠지만 슬그머니 거둬들이기엔 단식기간이 너무 짧았던 걸까. 공수처 철폐 등의 나머지 목표를 호기롭게 거명하며 계속한 것은 좋았는데 사흘째부터 누워서 자리보전에 들어가니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미국에선 장례식때 고인(故人)의 마지막을 보는 ‘뷰잉’의 절차가 있다, 이불덮고 시신처럼 누운 그이를 둘러싼 투명천막은 기괴한 풍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명색이 목숨 건 단식인데 적어도 일주일은 꼿꼿함을 보여줄줄 알았다. 한 보름 지나서 덮수룩한 수염과 초췌한 얼굴빛에 사람들의 동정이 나오련만 사흘만에 맥없이 누워지내다 의식을 잃고 구급차에 실려갔다니, ‘저럴 걸 왜 했나’,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의학계에 따르면 사람이 수분만 취하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0~40일 정도라고 한다. 세월호유족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광화문광장에서 무려 46일간 단식을 한 사례도 있다.
SNS에는 황교안대표의 단식일에 맞춰 똑같이 단식에 들어가 자신의 상태를 SNS에 올리는 이들도 나왔다. 이들은 회사를 다니며 평상시처럼 업무를 보며 단식을 했다. 가만히 앉아서 운기조식(?)한 그이보다 몇배는 운동량이 많은데도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했다. 오히려 단식후 얼굴빛이 좋아지고 사흘이 지나니 머리도 맑아지며, 일주일 정도는 곡기를 끊어도 아무 지장이 없다는걸 알게 되었단다.
기차 출신 페친 한분도 이런 글을 페북에 올렸다.
“ 단식을 여러번 해봐서 알지만 8일 해봐야 쓰러질 일도 없다. 처음 하루 이틀은 배가 고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각이 무뎌진다. 8일쯤 안먹어도 아무렇지 않다. #황교안 단식 엄살 =>8일 단식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는데, 그 정도면 다이어트나 디톡스 차원에서도 할 수 있다. 한끼만 안먹어도 단식이라고 주장하는 자한당 의원들.. 이참에 모두 단식해서 다이어트하면 좋겠다. ”
우리 정치사에서 의미있는 단식투쟁의 기록은 1983년 5.18민주항쟁 3주년을 기해 전두환정권 시절 가택연금 당한 YS가 목숨건 단식을 23일간 벌인 것이다. 민주화 5개항을 내건 YS의 단식은 전두환정권의 굴복을 이끌었고 DJ와 민주 대오를 이뤄 결국 1985년 6.29항복선언의 기폭제가 되었다.
적어도 정치지도자가 단식을 하려면 이정도 명분에 이정도 결기는 있어야 할게 아닌가. ‘전쟁하는 나라’를 추구하는 일본에게 ‘평화 하겠다’는 북의 정보를 넘기는 ‘지소미아’를 죽어도 지켜야 한다는 반민족적인 목표도 황당하지만 목숨건 단식에 들어간 사람이 3일만에 자리보전하다 8일만에 의식을 잃고 병원에 후송되었다니 보는 이들이 민망해진다.
‘굶으면 죽는다.’ YS가 남긴 명언이다. 그런데 요즘엔 굶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약자의 마지막 수단이 되야할 단식투쟁은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의 희화화된 이벤트로 변질 되었다.
유례없는 ‘영양제 투혼’에도 불구하고 8일만에 의식을 잃은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제 황교안대표의 '저질 체력'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더불어 그이의 아킬레스건인 두드레기 병역면제의 족쇄(足鎖)도 풀어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믿어라, 믿어야 한다. 그이의 두드레기가 국방을 망친다는 것을. 암만.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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