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정부의 안타까운 '북맹'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등에 은밀하게 외교적 접촉을 시도했지만 북한 측이 응답하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미 고위관리를 인용해 최근 보도했다.
이 고위관리는 2월 중순부터 뉴욕 북한대표부를 포함한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정권과 접촉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며 “지금까지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말기를 포함해 1년 이상 여러 차례 북한과 관여하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북·미 간 적극적인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정부 출범 두달, 이런 보도가 갑자기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바이든정부의 의도적인 언론 플레이로 보인다. 바이든정부가 대북접촉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북측이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浮刻) 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향후 전개과정이 예측된다. 바이든정부의 외교국방인사들은 북이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가 없다는 것을 공언하고 있다. 북은 하노이회담 결렬이후 일관되게 미국의 계산법이 달라지지 않는 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해 왔다.
미국은 지난 3월 8일부터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들어가며 북을 자극하고 있다. 한미연합훈련이 연례적 방어적 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러시아 등 제3의 언론은 북한 점령을 전제로 한 훈련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향후 북이 대응하여 단거리 미사일이라도 시험발사한다면 미국은 도발을 했다며 북을 또다시 옭아매려할 것이다.
북미간의 기싸움과 힘겨루기는 계속될까. 더 심각한 위기가 생기지는 않을까. 여기서 2년전 하노이회담의 교훈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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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일 북미 회담이 결렬된 후 하노이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영변 핵시설을 통째로 폐기하는 그런 제안을 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수용 제재 결의, 부분적 제재 결의까지 해제하기 어렵다는 미국 측 반응을 보면서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조미 거래에 대해 좀 의욕을 잃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최 부상은 "영변 핵단지 전체, 모든 플루토늄과 우라늄 시설을 포함한 핵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영구 폐기하는 데 대해, 역사적으로 제안하지 않았던 제안을 이번에 했다"며 "그 대신 우리가 미국에 민생, 민수용 제재 다섯 건에 대해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제안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친 것이나 같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거대한 농축우라늄 공장까지 포함한 모든 핵시설을 우리가 이번에 영구적으로,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는 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지만 여기에 대한 미국 측의 호응이 없었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미국에 차려지겠나. 여기에 대해선 장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수뇌회담을 옆에서 보면서 '우리 국무위원장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 좀 이해하기 힘들어 하지 않았나',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거듭 말했다.
앞서 리용호 외무상은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에 대해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며 "미국이 우리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미국을 우회적(迂廻的)으로 비난했다.
국제관례상 대부분의 정상회담은 실무회담에서 미리 의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대략적인 합의를 이뤄놓는다. 그런데 미국은 회담장에서 전혀 조율되지 않은 안건을 제기했다. 이는 미국이 회담을 엎어버리겠다는 의도였다고 봐야 한다.
원인은 트럼프 개인에게 있다. 회담 기간중 미국에선 트럼프의 개인변호사 코언의 청문회(聽聞會)가 열렸다. 코언은 청문회에서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자다. 그는 사기꾼이고 협잡꾼이다”라고 충격적인 폭로를 쏟아냈다. 2016년 대선 기간 중 트럼프의 불륜설을 막기 위해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했던 코언은 "영부인께 거짓말을 한 것이 내 가장 큰 후회 중 하나"라며 "착하고 좋은 분이시다.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청문회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역사적인 하노이정상회담 타결을 위해 백악관에서 책상까지 들고간 그가 마음을 바꾸게 된데는 여론악화가 결정적이었고 극우보수의 대리인이나 다름없는 반북매파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의 입김이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
하노이에 온 미국 기자들이 정작 북미회담보다는 코언청문회에 관심을 갖자 트럼프는 당혹해했다. 하노이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북이 기피하는 볼튼을 두 번째 만남에 배석하게 했고 발언의 기회를 줘서 북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요구를 공론화 했다.
북이 회담중에 제시한 영변 핵시설 전면폐기는 사실 예상보다 훨씬 파격적인 카드였다. 조건도 대북제재 가운데 민생분야에 영향을 주는 제재만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영변은 북핵시설의 80% 이상 비중을 차지한다. 전문가 사찰을 통해 북핵의 현실도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정도 거래라면 미국이 안받을 이유가 없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전임자들이 일찍이 내어본 적이 없는 제안을 갖고 하노이까지 멀리 왔는데도 트럼프가 만족하지 않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마음은 결렬(決裂)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노이에 오기전만 해도 그는 북미간 역사적인 합의가 미국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꿈으로써 재선고지와 함께 노벨평화상까지 노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합의해도 여론이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 확실시되자 판 깨뜨리기를 시도한 것이다. 국제 관행상 전례없는 행위였다. 그는 오히려 뜻밖의 결렬이 청문회의 관심을 덮을 가능성이 크다고 계산을 했다. 회담을 엎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볼튼에게도 이게 웬떡이냐 싶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이날 예정된 오찬도 취소하고 돌아가는 비례(非禮)를 범한 것은 결렬을 작정한 억지로 김정은 위원장과의 자리가 불편해졌기때문으로 판단된다. 재론하건대 미국으로선 영변 카드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었다. 그들이 즉석에서 요구한 영변 플러스 알파는 영변 카드를 받고 일부 제재를 해제한후 추가 협상에서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북이 그간 미국에 가진 일종의 피해의식은 합의후 말을 바꾸는 미국의 파울 플레이였다. 부시 대통령 시절 곤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축구 경기 도중에 골대를 옮긴 것은 다름아닌 미국”이라고 시인하지 않았던가.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돌아온 후 트위터에 “북한과 아주 중요한 핵 정상회담을 하는데 민주당이 유죄판결을 받은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에 대한 공개 청문회를 연 것은 미국 정치의 또하나의 낮은 수준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내가 회담장에서 걸어나오는데 기여 했을 수 있다. 대통령이 해외에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말았어야 하는 짓이다. 부끄러운줄 알라!”고 민주당과 언론을 비난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부끄러움은 트럼프의 몫이 되었다.
하노이 합의가 이뤄졌다면 다음 만남은 필경 평양 아니면 워싱턴DC가 되었을테고, 북미 정상은 평화협정에 서명후 선린우호 관계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한머리땅(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진정한 비핵화도 자연스럽게 이뤄졌을 것이다. 트럼프는 재선 성공과 노벨평화상 수상에 이어 훗날 마운트러시모어 암벽에 새겨진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즈벨트, 에이브러햄 링컨에 이어 다섯 번째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는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걷어찼다. 재선에 실패하고 노벨상은 언감생심, 온갖 망신살 끝에 미대통령 역사상 임기중 두 번 탄핵되는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역사에 남겼다.
트럼프가 좌충우돌하며 똥볼을 차댄 통에 바이든 대통령은 반대로만 해도 점수를 받을만한 유리한 입장인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대북정책은 트럼프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공(功)의 측면에서 볼때 트럼프는 북의 지도자를 사상 처음 만났고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한 최초의 미국대통령이다. 미국과 대화하기 시작한 2018년이후 북은 핵시험도,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도 하지 않았다. 북이 질색하는 한미연합훈련은 지속되고 대북제재가 오히려 강화됐지만 북은 풍계리 핵시험장폭파, 동창리 미사일엔진시험장 폐쇄, 미군전사자유해송환, 간첩혐의로 체포된 미국시민 3명의 석방 등 조건없는 호의를 지속했다.
바이든정부는 뜬금없이 북의 반응을 살피기 이전에 대북제재와 무관한 미국시민들의 북녘여행금지부터 해제해야 한다. 민생 관련 제재 해제로 북을 설득하여 영변카드를 되살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는 전혀 딴판이다. 북의 비핵화를 외치면서 허구헌날 비밀 접촉을 해봐야 상대가 응할 리 없다.
북은 하노이 결렬 직후, “올 연말(2019년)까지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을 기다려보기는 하겠지만 (영변 카드와) 같은 조건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못박은 바 있다. 북의 이같은 자신감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 핵무력완성국의 지위는 달라질게 없고 대북제재의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십수년째 경제제재를 받은 북은 ‘자력자강’ ‘자력경제’의 기치(旗幟) 아래 살아남기 위한 갖은 방도를 동원해 왔다. 그만큼 제재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이다. 특히 2017년 11월 핵무력완성 선포이후 군수산업의 비중을 민수산업으로 돌리는 등 민생경제에 올인하면서 북녘 경제는 제재국면에서 도리어 상승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정부는 ‘비핵화없이는 제재해제도 없다’고 짐짓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시간은 미국의 편이 아니다.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바이든 정부의 북맹(北盟)이 타파되지 않는 한 하노이의 천재일우는 그저 꿈에서나 떠올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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