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손키스와 윙크에 놀란 서구인들'
17일 뉴욕타임스 웹사이트를 보는데 월드섹션에 오른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평양에서 개최된 국제마라톤대회를 취재한 것이었다. 뉴욕타임스 기자가 이 대회를 어떻게 취재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기자가 마라톤대회 출전을 하고 그 체험기(體驗記)를 실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평양국제마라톤 대회는 지난 12일 30개국 650여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됐다. 체험기를 올린 기자는 제어 번즈(60) 기자였다.
다음은 그가 카메라를 들고 뛰면서 작성한 체험기 '북한마라톤 오래 가는 호기심(At Marathon in North Korea, Curiosity Goes a Long Way)'이라는 제목의 기사 주요 내용이다.
5만석 규모의 김일성종합운동장은 오전 8시반부터 관중들로 거의 만석(滿席)을 이룬 상황이었다. 평양마라톤은 김일성의 4월15일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하프마라톤과 10km 단축마라톤이 함께 개최되고 2회 대회부터 외국인들의 참가가 허용됐다.
붉은 모자와 흰 유니폼을 입은 대회 진행자들이 도열(堵列)하고 선수들은 출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갈 것인지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한 외국인 참가자는 '아무 문제없이 진행되면 북한이 아니다'라고 비꼬았다.
지난 2월 북한당국은 에볼라 확산을 우려해 외국인 선수들의 출전을 갑자기 금지했지만 다음달 특별한 설명없이 출전을 허용했다.
달러가 절박한 북한은 관광을 확대하기 위해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증진시켰다. 핵무기와 인권유린이라는 ‘악(惡)의 축(軸)’ 이미지를 개선시키기 위해 스포츠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라톤에 신청한 외국인들의 안내를 위해 동승한 북한 체육성 관리 오룡종은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군사력에 치중하고 사람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직접 와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평양마라톤에 출전한 북한 선수 일부는 외국 참가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외국 선수들이 먼저 출발했고 한시간쯤 후에 북한선수들이 출발했다. 여자선수 일부는 흰리본을 허리에 두른 모습이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출전한 선수들은 800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운경이라는 안내원은 우리가 입은 유니폼을 세심하게 검사했다. 미국이나 남한, 일본 깃발은 물론, 의류회사 로고도 노출(露出)하면 안된다. 지난해 대회에서 한 선수가 이런 문제로 청바지를 입고 달려야 했다.
안내원은 "만일 로고가 눈에 띄면 국제육상연맹에 돈을 얼마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운동장을 지나 197피트(61m) 높이의 '승리의 아치(개선문)'를 지나쳤다. 이 상징물은 일본의 한반도 지배에 저항의 상징이다. 박운경 안내원은 대회전 코스 투어를 하면서 "프랑스에 간적이 있나요? (파리 개선문보다) 우리것이 11m 더 높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초반 언덕 코스가 힘겨웠지만 살구나무들이 만발(滿發)한 연도에서 시민들의 성원이 이어졌다. 군인 한명은 몇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고 아파트 창문을 통해 한 여성이 손을 흔들기도 했다. 붉은색 상의를 입은 여성들이 선수들을 위해 테이블에 음료를 따라 올려놓았다.
에볼라 여파(餘波)로 이동식 화장실을 두지 않아서 레이스 도중 용무가 급하면 도로 가까운 곳의 사인판을 따라가야 했다. 어떤 화장실은 건물 2층에 있었고 식품점과 식당 가라오케바를 지나서 가야하는 곳도 있었다.
선수들이 카메라를 휴대하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금지다. 하지만 규칙은 강제성이 없는 듯 했다. 카메라를 빼앗거나 사진 찍는 것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애틀에서 온 잴런 팃콤(32)은 지난 2011년 평양서 열린 프리즈비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는 "더 느슨해지고 통제를 덜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타디움이나 기념물 앞에서 점프하며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취하는 등의 사진을 찍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는 "바티간 성당앞에서 누구도 모욕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지 않냐"고 말했다.
아이들은 더 적극적이었다. 지나가는 선수들을 향해 손뼉을 치고 영어로 “만나서 반갑다” "환영한다" "이름이 뭐에요" "몇살이에요"하고 물었다.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네덜란드 출신의 행크 마넨(36)은 젊은 여성이 그에게 손키스를 보내는 제스처를 취해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답례를 하고 나서 이제 저 여자는 큰일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프마라톤에 출전한 맨해튼 출신의 리차드 프리드먼(67)은 교통정리를 하는 제복입은 여성이 자신이 지나칠 때 윙크를 하는 바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인 마틴 로한(57)은 웃으면서 "아마 그 여자 눈에 뭐가 들어갔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1987년 공사는 시작됐지만 아직도 완공되지 않은 105층의 류경호텔도 보였다. 북한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한 저서에서 김정은이 2013년 연간 외국관광객 숫자를 3년내에 2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늘릴 것을 지시했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평양마라톤대회와 국제영화축제를 위해 새로운 국제공항을 건설했고 스키 리조트는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시절 경험이 가미(加味)됐을 법 한 것이다.
란코프 교수는 김정은이 북한을 동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들 희망을 갖고 있다며 비록 여행 인프라의 유감스러운 상황 때문에 아주 비현실적인 꿈이긴 했어도 돈많은 서구인들이 현금을 풀어놓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올해 60세인 나는 이번 마라톤이 1년사이에 4번째 뛰는 것이다. 30km까지 3시간5분이 걸렸다. 아직 12km가 남은 상황이고 4시간이 지나면 김일성 스타디움이 문을 닫기 때문에 컷오프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스타디움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난 레이스를 중단하고 북한선수중 가장 선두로 오는 리용호와 라현호가 뛰는걸 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2시간 14분대로 골인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마넨은 고향에 돌아가 손키스를 받은 얘기를 하겠지만 사람들은 아마 거짓말로 생각할 것이다.
하프마라톤 3위를 한 베이징 주재 이태리 대사관 직원 필리포 니코시아는 평양마라톤의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미약한 개방이라고 봐야 한다. 뉴욕필하모닉이 2008년 평양에 왔을때처럼 대양에 떨어진 작은 물방울에 불과하다. 그러나 호기심은 온기로 바뀔 기회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