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신문의 기자로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한 80년대 한가지 흥미로운 관행(慣行)은 기사를 쓸 때 선수들의 별명(別名)을 꼭 붙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일반 매체와 스포츠신문 기사의 차별화를 가져온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고 선수에게는 개성을 부여하는 별명 호칭에 필자 역시 적극적인 가담을 했는데 직접 별명을 지어준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생각나는대로 기술하면 우선 축구의 홍명보다. 이제 지도자로 빼어난 경륜을 보이는 감독의 신분이지만 필자가 처음 봤을때 그는 고려대의 유망 신인이었다.
수비수이면서 탁월한 프리킥 실력을 보유한 그를 효창운동장에서 처음 봤을 때 ‘흥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큰 눈에 순진해 보이는 인상, 그리고 홍명보와 흥부의 운율(韻律)을 고려한 작명이었다.
그후 농구기자로 변신했을 때는 기존의 별명을 좀 업그레이드한 것을 퍼뜨렸는데 ‘에어본’ 전희철과 ‘매직히포’ 현주엽이다. 전희철의 본래 별명은 ‘에어’였다. 점프력이 좋아 붙은 것으로 마이클 조던의 짝퉁 분위기보다는 개성을 부여하자는 뜻에서 ‘본’을 추가했다.
그후 에어본은 대부분의 기자들이 사용할만큼 확산됐지만 정작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자리에서 처음 말하는 것이지만 에어본은 본래 할리우드 영화 ‘에어본(Airborne)’과 관련 있다. 에어본은 ‘하늘을 나는’, ‘비행중인’이란 의미의 형용사다.
물론 전희철의 탁월한 점프력을 강조한 것이었다. 더불어 ‘본’은 ‘bone’ 혹은 ‘본(本)’을 의미하기도 했는데 전희철의 근골형(筋骨型) 이미지와 점프의 근본을 갖춘 선수라는 중의법(重意法)을 고려한 것이기도 했다.
‘매직 히포’ 현주엽의 경우. 히포(하마)라는 외형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탄력있고 순발력있는 운동능력을 ‘매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골리앗’ 서장훈도 ‘슈퍼 골리앗’으로 업그레이드 하는데 일조했던 바다.
이같은 스포츠스타들의 별명붙이기는 기실 미국 매스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스포츠 스타들은 팬들과 미디어로부터 별명이 하사(下賜)됐다. 한국과 다른게 있다면 아예 이름대신 별명이 이름처럼 고착화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미국에선 스포츠스타들에 대한 별명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때마침 뉴욕타임스가 스포츠섹션에 이같은 분위기를 다룬 기사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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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J’ 줄리어스 어빙과 ‘우편배달부(Mail man)’ 칼 말론을 비롯, 80년대 전후에 ‘옥수수빵(Cornbread)’ 스타 세드릭 맥스웰 등이 NBA에 있었다면 NFL에선 50년대 ‘나이트 트레인’ 딕 레인, ‘쇠톱(Hacksaw)’ 잭 레이놀즈, ‘냉장고’ 윌리엄 페리 등이 본명보다 별명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월트 프레이저를 아는가. 어지간한 팬들은 별명 ‘클라이드’를 언급해야 ‘아하 그 선수’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뉴욕 양키스는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루스)와 아이언 호스(루 게릭), 졸틴 조(디마지오), 스쿠터(필 리주토), 요기(베라), 캣 피시(제임스 헌터), 미스터 옥터버(레지 잭슨) 등 수퍼스타들의 별명으로 유명한 팀이다.
그러나 현재의 간판스타 데릭 지터와 마리아노 리베라, 앤디 페티트의 별명이 뭐냐고 묻는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A-로드’라는 애칭이 있지만 긴 이름을 줄인 것일뿐 별명이라고 하기엔 궁색하다.
‘야구 별명-기원과 의미의 사전’의 저자인 사회학자 제임스 스키퍼 교수에 따르면 스포츠스타 별명의 절정기는 1920년대였다. 이후 별명을 부르는 관행은 꾸준히 줄어 1950년대이후 뚝 떨어졌다고 한다.
야구백과사전에 나타난 1871년부터 1968년 사이의 모든 메이저리그선수들 중 28.1%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열명당 세명 꼴로 별명이 있었던 셈이다. 그 중 흔한 별명은 레프티(Lefty)와 레드(Red), 독(Doc) 등이었다. 이미 스키퍼 교수는 30년전에 “다양한 별명의 시대는 끝이 난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별명의 감소는 비단 스포츠스타에 국한된게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라는 의견이 눈길을 끈다. 네브라스카 벨러뷰 대학 심리학과 클리브랜드 에반스 교수는 “과거보다 별명을 부르는 사례가 줄었다. 이는 친밀감과 유대감의 상실을 반영하는데 아마도 그런 변화는 정체성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쓰는 별명에 대해 호의롭지 않은 분위기때문일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아메리칸 네임 소사이어티의 에드 로손 회장도 ‘별명의 감소는 선수들에 대해 친밀감과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동감을 표했다.
<하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