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북남’의 로맨스드라마로
화제를 모으는 ‘사랑의 불시착(사랑불)’ 9화 에필로그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윤세리(손예진)가 리정혁(현빈)의 방에 있는 책들을 정리하며 은근슬쩍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사 / 랑 / 해 / 리 / 정 /혁’
책을 정리해주는 척 하며 제목의 맨 윗 글자로 만든 사랑고백의 재치있는 조합은 기발했다. 다행히(?) 리정혁의 눈썰미도 보통은 아니어서 윤세리의 수줍은 고백을
얼른 알아채고 서가로 다가가 손으로 쓰윽 가리키며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 장면을 위해 동원된 소품 책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꼼꼼히 살펴봤다. <사상과
정의> <랑만의
시대> <해방의
력사> <리얼리즘> <정치경제학 비판요강> <혁명의 시대> 순이었다.
그런데 북녘에 진짜 이런 책들이 있을까. 진위 여부는 제작진에게 확인하거나, 평양 인민대학습당 전자열람실에서 찾아봐야겠지만 표지만 따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랑만의 시대>와
같은 것은 북에선 보기 힘든 제목이니까.
사실 윤세리의 재치있는 사랑고백은 오직 북녘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북에선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기때문이다. 만일 남녘처럼 두음법칙을 따른다면 <랑만의
시대>는 <낭만의 시대>여야 하니 ‘사/낭/해/리/정/혁’으로 할 수도 없고 대략 난감이다.

이상 tvn 캡처
사랑불’은 북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꽤나 정성을 들인 드라마다. 연기자들의 옷과 자잘한 소품들, 무대 세트, 거리 모습 등은 놀랄 정도로 흡사하다. 평양 역전과 평양 호텔, 3대헌장 기념탑 등 평양의 건물과 기념물들도 그럴싸하게 나온다.
‘사랑불’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장면은
윤세리와 북의 부대원들이 요리한 휘발유 조개구이였다. 오직 북에서만 즐길 수 있는 휘발유 조개구이는
말 그대로 조개위에 휘발유를 뿌려 익히는 방식인데 50년대부터 간편하고 빠르게 조개를 익혀먹을 수 있어
민간에서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오늘날엔 전문식당도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평양에선 대동강 풍치가 아름다운 락랑 호텔이나 보통강과 가까운 량강호텔 등 몇 군데 전문 식당이 있고 주로 서해안과 가까운 내륙에서
휘발유 조개구이를 제공하는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이 같은 식당들은 전용 돌판에 비단조개/대합조개 등을 촘촘히 세워놓고 휘발유가 담긴 작은 구멍이 난 플라스틱통을 분사해 불을 붙인다.
‘사랑의 불시착’에선 물 먹인 가마니위에 조개를 세워놓고 불을 붙이는
장면을 선보였는데 이 방법은 민간에서 전통적으로 하던 방식을 재현한 것이다.
혹자는 굽는 과정에서 조개에 휘발유가 들어가지는 않을까 우려하겠지만 조개를 세울 때 입을 아래쪽으로 촘촘히 세워두고
휘발유를 위에서 조금씩 뿌리기 때문에 스며 들어가는 걱정은 안해도 된다. 오히려 조개껍질에 남아 있는
은은한 휘발유 향(?)이 묘한 중독성이 있어 한번 경험한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꼭 다시 한번
찾는 명물 요리이기도 하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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