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콘신 콜러에 있는 블랙울프 런 코스를 아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박세리가 맨발벗고 친데 있잖아?” 하면 “아하 거기?” 할 것이다.
지난 8일 최나연이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한 제67회 US오픈이 열린 블랙울프 런 코스는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98년 LPGA를 강타한 박세리 신드롬이 가장 거세게 몰아친 곳이기 때문이다.
당시 박세리는 태국계 미국선수 제니 추아시리폰과 연장 22홀째 승부를 벌이면서 볼이 워터해저드 바로 옆 러프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볼을 치기 위해선 물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박세리는 주저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모내기하는 사람처럼 정강이까지 차오르는 물에 발을 담갔다. 그때 TV 화면을 통해 백옥처럼 하얗던 발이 인상적이었다. 발목 위로는 햇볕에 그을려 까맣게 탔지만 양말속에 감춰진 발은 천상 여성의 고운 흰 발이었다.
최악의 러프에서 날린 멋진 샷으로 박세리가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을 때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기뻐했다. 지금이야 십수명의 한국선수들이 '밥먹듯' 우승하고 있지만 당시만해도 '지존' 아니카 소렌스탐을 필두로, 미국과 유럽의 절대강자들이 호령을 하던 시절이었다.
박세리가 LPGA 데뷔후 승승장구하는 것도 놀라운데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거짓말같은 우승을 차지했으니 그 감격은 지금 돌이켜도 온 몸이 짜릿할 정도다.
더구나 98년은 한국이 IMF 경제위기로 ‘국가부도’라는 미증유의 상황에서 온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펼쳤던 고달픈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코가 쑥 빠진 국민의 사기를 올려준 쾌거가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이요. 맨발의 투혼(鬪魂)이었다.
그때의 장면은 비단 우리 국민들에게만 인상적인 것이 아닌 모양이다. 뉴욕타임스는 최나연 우승 소식과 함께 9일 스포츠섹션 9면에 박세리의 98년 우승 당시 일화를 상세하게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맨발투혼 장면이 한국의 TV에 방영되는 애국가 배경으로 나온 것과 이후 수많은 ‘박세리 키즈’가 탄생, 오늘날 LPGA에서 가장 많은 투어프로들을 배출한 사실들이 이어졌다.
“(박세리의) 98년 US오픈 우승은 여전히 한국에서 울려퍼진다.(A 1998 Victory in the U.S. That Still Resonates in South Korea.)”
“매일 새벽 한국의 TV는 애국가로 시작된다. 화면엔 군인들의 행진과 전함의 항해장면, 어부와 회사원의 일하는 모습, 스포츠스타의 승리 장면이 펼쳐진다. 그곳에 박세리가 있다. 블랙울프런의 18번홀 워터해저드에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물에 뛰어들어 샷을 날리던 모습이다.
이 장면은 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연장사투끝에 우승한 것이 얼마나 중요하며 한국의 국가적 이미지나 다름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시 만 20세 동갑내기였던 박세리와 추와시리폰은 US오픈 사상 최장연장이라는 20홀 승부로 ‘아시아의 여자골프 침략(Asian Invasion of women’s golf)’ 서막을 열었다.
14년전 박세리는 LPGA에 입문한 세명의 한국선수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이번 US오픈엔 한국선수가 무려 28명이 출전했다. 98년 박세리의 우승이후 한국선수들은 지난해 챔피언 류소연과 올해 챔프 최나연 등 5차례나 US오픈에서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현재 세계랭킹에서 한국선수들은 탑10중 4명이다. 25명중엔 10명이 한국선수이고 100걸 안에는 무려 36명에 달한다. 이에 반해 미국은 16명에 불과하다.
태극낭자군은 LPGA의 상금도 지배한다. 지난주 끝난 노스웨스트 아칸소 챔피언십까지 한국선수들은 상금랭킹 탑10중 3명이 올랐다. 현재 풀타임 투어인 128명의 선수중 한국선수는 42명으로 32.8%의 비중이다.
박세리의 98년 우승은 단지 한국인선수에게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LPGA 상금랭킹 20걸중 1위 미야자토 아이(일본 103만5727달러)와 2위 쳉야니(대만 100만5527달러) 등, 15명이 아시아선수들이다.
지난 50개의 메이저대회에서 9명의 미국선수가 12번 우승을 차지했고 9명의 한국선수가 11번 우승을 거뒀다. 한국선수들은 98년이후 매시즌 평균 7개의 LPGA 대회를 석권하고 있다.
통산 25개의 LPGA 대회에서 우승하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박세리는 그렇게 많은 것을 성취할 줄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도 98년 우승을 ‘한국골프의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내가 한국의 어린 선수들에게 동기를 제공했다는 말을 듣고서 부담감이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자부심도 느꼈고 내가 우승한 98년 7월 6일 블랙울프 런에서 박세리가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대회 우승자 류소연에게 박세리는 ‘전설’로 통한다. 류소연은 “98년 이전에 골프는 한국에서 그렇게까지 인기있는 스포츠는 아니었다. 그러나 박세리 선배가 우승한 이후 골프는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덕분에 나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세리가 우승할 때 류소연은 8살이었다. “난 그때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이었고 골프는 그냥 취미였다. 그러나 98년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골프는 나의 인생이 되었고 바이올린은 취미가 되었다.”
메이저대회만 8차례 우승한 30년 경력의 베테랑 줄리 잉스터는 “98년은 아시아가 여자골프의 역사를 바꾼 해이다. 그때 이후 아시아 선수들은 멈추지 않고 전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통해 독자들은 박세리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박세리를 LPG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LPGA의 역사는 박세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이다.
에필로그를 덧붙이자. 박세리와 드라마틱한 연장승부를 펼친 추와시리폰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박세리가 우승을 확정지었을 때 뒤에서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는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기록적인 연장승부 끝에 패한 것이 억울하련만 추와시리폰은 뒷에서 환한 미소로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있었다. 태국서 미국으로 이민한 1.5세인 추와시리폰은 당시 명문 듀크대 학생인 아마추어 신분으로 박세리와 진검 승부를 펼쳤으니 그녀 역시 보통 선수는 아니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그녀의 근황을 전한 ESPN에 따르면 추와시리폰은 대학졸업후 2000년 투어프로로 변신했지만 원하는 성적을 내지 못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투어프로가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 게다가 골프에 전념하기엔 집안형편이 여의치 않아 결국 선수를 그만두었다.
그녀는 천성이 고왔던 모양이다. 간호사인 친구를 통해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했다. 그녀는 현재 버지니아 리치몬드에서 심장외과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름도 결혼과 함께 미국식으로 바꿔 와날리 베츠가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골프채를 잡은지 5년도 넘었다는 사실이다. 블랙울프 런에서 열리는 US오픈 대회를 앞두고 자신을 찾아온 ESPN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14년전 세리 대신 내가 우승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의 생활이 너무 행복해요. 세리는 대단한 경력을 쌓았어요. 모든게 잘 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