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최종 예선전은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대만(당시 자유중국), 크메르(캄보디아) 5개국이 출전했다. 당시엔 일본이 경계 대상이었다. 68년 멕시코올림픽 깜짝 동메달을 차지한 일본은 스트라이커 가마모토가 빠졌지만 요코야마, 오기, 모리, 스기야마, 미야모토 등 동메달의 주역들이 모두 출전했다. 일본전을 결승으로 생각한 한국은 개막일에 일본과 말레이시아전을 배정하고 최종일에 일본전을 배정했다.
그런데 첫 경기부터 이변(異變)이 일어났다. 수중전으로 벌어진 경기에서 말레이시아가 스트라이커 시에드 아마드의 해트트릭으로 일본을 3-0으로 완파해버린 것이다. 한국은 일본의 불운(?)에 쾌재(快哉)를 부르며 올림픽 본선에 한발 다가선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돌풍엔 이유가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956년 이듬해 메르데카(독립) 컵 국제축구대회를 창설, 버마와 함께 동남아축구의 맹주(盟主) 노릇을 했다. 1960년부터 한국과 일본이 가세하면서 메르데카컵은 아시아 최고 권위의 대회로 인정받았다. 한국이 최고의 멤버를 갖췄지만 사실 말레이시아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김호-김정남에 필적하는 명 수비수 소친온과 찬드란, 아르무감, 목타르 다하리, 시에드 아마드, 류륜텍 등 70년대 말레이시아 축구 전성기를 주도했던 선수들은 50대이상 올드팬들에겐 낯익은 이름들이다. 운명의 한국전을 앞두고 말레이시아에게 또한번 행운이 찾아왔다. 경기 당일 드문 가을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스콜현상이 잦은 아열대 기후로 인해 비교적 수중전에 익숙했다. 한국은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계속 미끄러지며 정상적인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전반을 득점없이 비기더니 후반 초 상대의 기습공격으로 기어코 실점을 하고 말았다. 한국은 만회를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정상적인 볼콘트롤에 실패하면서 결국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수중전으로 대어를 낚은 말레이시아는 한국의 약점을 간파, 이후 메르데카에서 한국과 만날 때 경기전 소방차를 동원해 멀쩡한 구장에 물을 뿌려 수중전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당시 현장에서 라디오 중계 캐스터가 언급한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에도 말레이시아는 중요한 대회에서 몇 차례 더 한국을 괴롭히는 등 그야말로 난적(難賊)이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한국 2-3 패)에 이어 1975년 아시안컵 예선(한국 1-2 패),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차 예선 2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엔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급성장한 반면, 말레이시아는 변방축구로 전락, 더 이상 대결할 기회가 없었다.
무려 35년만에 이뤄진 이번 대결에서 말레이시아가 우승후보 한국과 3-3 무승부를 거둔 것은 엄청난 이변으로 보이지만 오랜 그들의 축구역사를 돌이켜볼 때 결코 약팀이 아니다. 혹자는 말레이시아 축구가 쇠퇴한 이유에 대해 90년대 축구도박 파문과 화교출신 선수들을 배제했기때문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한국인 김판곤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말레이시아는 해외에서 활약하는 이중국적 선수들과 외국인선수들의 귀화를 추진, 팀 수준을 높이고 꼼꼼한 전술을 입히는데 성공했다. 비단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신태용감독이 지휘하는 인도네시아도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튼 클럽 수비수 저스틴 허브너(네덜란드 출신)를 비롯, 라파엘 스트루익, 이바르 제너, 샌디 월시, 셰인 패티나마, 조르디 아마트, 마크 클록 등 무려 7명의 귀화선수를 영입, 아시안컵 16강의 결실을 일궜다.
이번 아시안 컵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의 언더독이 세계 수준의 팀과 경기해도 더 이상 호락호락 당하는 동네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축구공은 둥굴고 둥굴다.
** 2016년 10월 한국과 말레이시아 추억의 스타들이 OB전을 벌였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소개한다.
2016년 10월 한국 OB팀의 김정남과 말레이시아 OB 팀의 소친온. 이들은 1일 강원 춘천시 공지천구장에서 시합을 마친 뒤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1971년이후) 45년이 흐른 이날 강원 춘천시 공지천 구장에서 양국의 전 국가대표들로 구성된 OB 팀의 대결이 펼쳐졌다. 제11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한민족축구대회' 개회식에 앞선 이벤트. 한국 OB 팀은 1971년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 뛰었던 김정남과 이세연 등을 포함해 김진국, 이영무, 김재한, 박경훈, 이태호 등 왕년의 스타 20명으로 구성됐다. 말레이시아 OB 팀엔 1971년 경기에서 한국의 파상공세를 막아낸 명수비수 소친온이 포함돼 있었다.
경기 결과는 이상하리만큼 똑같았다. 한국 OB 팀이 훨씬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후반전 역습 한 방에 0-1로 무너졌다. 더욱이 골의 주인공은 45년 전 승리의 주역 소친온이었다.
선수 시절 같은 수비수로서 자존심 대결을 펼쳤던 김정남(73)과 소친온(67)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뜨겁게 포옹했다. 공교롭게 이날 두 선수의 등번호는 같은 3번이어서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들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45년 전 말레이시아에 패하고 2개월 뒤 은퇴했던 김정남은 "통한의 패배였기에 내 축구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며 "하지만 오늘 소친온을 만나니 너무 반갑고 좋았다"고 말했다. 소친온도 "한국 OB 팀과의 경기 제의에 선뜻 응했다"며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고 밝혔다. 양 팀 선수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45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인 이세연(71)은 중국계 말레이시아 골키퍼 조지경과의 남다른 인연을 소개했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국가대표까지 같은 포지션으로 많은 시합을 하면서 친해진 두 사람은 자녀를 낳으면 서로의 이름을 쓰기로 약속했던 것. 결국 조지경의 아들은 조세연이 됐고 이세연의 딸은 이지경이 됐다. 이세연은 "지경이란 이름을 붙였더니 (다소 어감이 이상한) 이지경이 됐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감수했다"며 "이번에 조지경이 올 까 기대를 많이 했는데 사업이 바빠 못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아쉬웠다"고 말했다.
* 2024 아시안컵 칼럼 특별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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