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일본은 서기 369년에 부여의 여자 무당이 세웠다고 닥터 코벨이 논문으로 발표했다고 들었습니다. 부여 무당이면 부여제사장이고 왕족이므로 당시 일본을 점령하고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일본천왕으로 추대한 것으로 판단 합니다. 부여는 고구려 백제의 상국이므로 부여유민에게 왕의 권위를 세워준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일본서기는 700년대에 작성되었는데, 일본역사가 짧으니까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일본 역사인 것처럼 기록한 것이지요. 일본 역사라고 보는 것 보다는 고구려 백제의 역사라고 봅니다.
논평: 미국대학에 개설된 전공과목은 약 1,800개에 달한다. 댓글의 내용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로부터 논거(論據)를 밝힐 수 없는 주장으로 논평의 가치조차 없으나 다음과 같이 오류를 지적한다.
첫째, 닥터 코벨(Jon C. Covell: 1910∼1991)은 ‘일본 고대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둘째, 미술사는 미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인문학이다.
셋째, 인문학에는 철학, 예술(미술), 언어가 있다. 미술은 예술의 한 분야이다.
넷째, 역사란 인간이 삶을 영유한 장소, 시간, 그리고 특정한 사람 등에 관한 사실을 기록하는 학문이고 문헌 기록에 의한 사실을 고증(考證)하는 학문으로 서지학(書誌學: bibliography)의 수반이 필수다. 즉, 누구든지 검증할 수 있도록 문헌사료들을 제시해야 한다.
다섯째, 역사학은 미술(예술)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 고대 미술사’를 전공한 코벨(Covell)은 역사학자(歷史學者: Historian)가 아니다.
여섯째, 모든 분야의 역사연구에는 그 학문 이름 끝에 ‘역사’란 단어를 붙일 수 있다. 즉, 철학의 연구는 철학사, 언어의 연구는 언어학사, 물리학의 연구는 물리학사, 생물학의 연구는 생물학사, 천문학의 연구는 천문학사 등이 되겠다. 따라서 약 1,800개의 전공을 연구한다면 모두 역사라고 말할 수 있으나 역사학은 아닌 것이다.
일곱째, 그래서 김태영학파는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다’라고 주창했다.
여덟째, 서기 369년은 백제 제13대 근초고왕 24년(369)으로 당시에는 백제를 부여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홉째, 백제 제26대 성왕 16년 봄에 서울을 사비(오늘날의 안휘성 청양)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했으므로 성왕 때부터 백제를 부여(남부여)라고 칭했다.
열째, 일본의 역사연대는 서기 531년 제29대 흠명(欽明) 때부터로 531년을 건국 연대로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일본 제왕 연대표>가 언급한 제1대 신무(神武: 진무)부터 제28대 선화(宣化: 쎈카)까지는 연대가 없으므로 가짜라는 방증이다. 그리고 28대에 걸쳐 여자가 왕위를 계승했다는 것은 지구상에서 오직 일본인들만이 주장한 것으로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잡담(雜談)이다. 28명의 여자가 왕을 했다는 것은 논리성, 합리성, 객관성 그리고 설득력이 없는 허구의 소설이다.
열한째, 그러므로 서기 369년의 부여는 백제를 일컫는 말일 것이며 고구려(BC232), 백제(BC213)의 상국이 될 수 없다. 역사 연대를 뒤죽박죽 함부로 섞지 말라. 물론 역사학자가 아닌 코벨(Covell)의 오류이지만 말이다.
열두째, 가야, 백제, 왜(일본의 전신)는 모두 오늘날의 대륙 절강성에 있었고 신라는 강소성에 그리고 고구려는 산서성에 있었다. 백제 제26대 성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가 526년에 대만에 있던 왜(倭)를 데리고 오늘날의 일본열도로 들어갔다. 그래서 531년부터 일본역사는 연대를 기록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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