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부
따라서 영주B 지역은 선비족들의 거주지역이 아니였기 때문에 당나라 시기의 역사왜곡이라 단정한다.
당나라는 왜 이같은 역사를 조작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논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900년을 존속했던 고씨(高氏)의 고구려를 멸했으나 동이족의 한 족속인 대씨(大氏)가 다시 대진(발해)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의 옛 영토를 탈환하자, 당나라는 대진과의 고구려 영토 소유권 전쟁에서 참패한 수치와 지나인들의 병적인 춘추필법의 이유 때문이라 믿는다.
아무튼 영주가 어디였는가를 밝히는 가장 중요한 점은 ‘영주A’와 ‘영주B’ 모두 황하강의 주변에 위치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하북성이나 요녕성은 황하와 인접한 지역이 아니다.
따라서 “영주(營州)는 현재의 중국 요령성 조양(朝陽)으로, 당나라 때에는 동북 변방을 통치하는 전진기지였다. 고구려가 망한 뒤에 이곳에 고구려 유민이 많이 끌려와 있었다”라는 송기호의 주장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헛소리임이 판명된 것이며
‘영주를 하북성에 있는 난하와 요녕성에 위치한 대릉하 유역까지로 본’ 신용하의 주장 역시 큰 오류임이 입증되었다. 다음 <그림 9>에서 영주는 황하 주변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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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38부
지금까지 요동과 요서의 위치를 그림으로 확인하고 요동땅인 산서성 남부에 조선의 패수가 있었음을 알아보았다.
패수(浿水)를 달리 부르던 이름이 예수(濊水)이며 예수 부근에 단군조선을 세운 왕검의 고향 단향(壇鄕)이 있었는데 주나라 사람들은 왕검을 숙신씨(肅愼氏)라 불렀음을 살펴보았다.
숙신씨의 나라가 위치한 동북인 산서성 남부에는 부함산(불함산)이 있고 이 불함산은 오늘날의 왕옥산의 다른 이름임을 확인하였다.
동북을 유주라고도 했는데 유주와 겹치는 지역을 영주라고 하며 영주는 두 곳으로 영주A와 영주B가 있다. 영주A는 섬서성 서안(西安) 동북남 일대를 뜻하고 영주B는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를 의미한다는 것까지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대진의 초기 도읍지였던 동모산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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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39부
IV. 발해란 국호는 오류
대진(발해)의 건국과 관련된 1차사료는 후진(後晉) 시기(945)에 나온 <舊唐書(구당서)>와 송나라 시기(1044∼1060)에 편찬된 <新唐書(신당서)>로 이 두 정사를 함께 비교, 검토, 비판하면서 약 1,310년 동안 발해란 국호로 불린 것은 오류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후고구려란 이름으로 고구려의 장수 대중상 부자(父子)가 세운 나라는 대진(大震)이 되어야 한다는 문헌사료적 근거로 본고에서는 대진으로 서술한다.
우선 발해(渤海)란 이름이 기록된 원전 문헌사료는 모두 922종, 3,947권, 7,634개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이들 문헌들을 조사해본 결과 발해란 이름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천연호수인 발해
둘째는 천연호수 발해의 주변 지역을 발해군이라 한 행정상의 발해
셋째는 1928년 이후에 나타난 황해(서해)의 일부인 발해
넷째는 당나라가 일방적으로 지어서 기록한 대조영의 국호인 발해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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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40부
1. 발해는 본래 천연호수
<수경주>, 각종 <지리지> 그리고 여러 문헌사료들을 자세히 조사해보면 옛날에는 황하(黃河)처럼 흐르는 물은 해(海), 하(河), 수(水)라고 부르고, 천연호수(天然湖水)처럼 고여 있는 물은 해(海) 앞에 한 글자를 더 붙여 발해(渤海), 동해(東海), 서해(西海), 청해(靑海), 북해(北海), 남해(南海), 천해(天海) 등 두 글자로 된 고유명사로 불렀다.
천해(天海)는 현재의 외몽고 바이칼 호수를 일컫는 말이고, 북해(北海)는 산서성 최남단 천연호수인 운성염지를 가리키던 말이며, 청해(靑海)란 청해성에 있는 서해(西海)라고도 부르는 천연호수를 가리키고 남해(南海)는 광동성 신풍강수고(新豐江水庫)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당나라 중기 이후까지 문헌사료에 기록된 해(海: 바다)는 모두 황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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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발해)의 강역 연구> - 제41부
발해를 거야택(巨野澤) 또는 대야택이라 했는데 <中國古代地名大詞典(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기록부터 확인해 보도록 하자.
“대야택: ‘거야’ 또는 거야택이라 부르며 고대의 저명한 호수다. 거야택의 옛터는 현 산동성 거야현 북쪽에 있으며 옛날에는 제수와 사수가 서로 연결되어 접해있었다. 당나라 때는 거야택의 수면이 남북의 길이가 300리 동서의 폭이 약 100리 였으며 대야택 이라고도 불렀다. 송나라 때 거야택의 남부는 물이 마르고 땅이 단단해져서 평야가 되었으며 북부는 양산박의 일부가 되었다.”
라고 하여 대야택이 거야택이며 위치는 산동성에 있다는 내용이다. <山海經(산해경)>을 새롭게 설명한 <海經新探(해경신탐)>에
“<진서𐤟지도기>를 인용한 <수경주>에서 전하기를 ‘름구란 자는 춘추시대의 제나라 도읍인 동해 사람임이 밝혀졌다.’ 땅은 현재 범현 경내에 있으며 멀리 한나라와 위나라의 동해군이고 발해군 도읍은 동아에 비해 아주 멀다. 위𐤟진 시대의 거야택은 사람들에 의해 동해로 불렸다. 거야가 바다(해)라는 이름으로 불린 건 2천년이 지속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漢書(한서)/武帝紀(무제기)>에 “원광 3년(BC131) 봄 하수(황하)가 범람해 언덕에서 꺾여 동남류해서 발해로 들어갔다.”는 발해는 거야택을 뜻한다.
<中國歷史地名大辭典(중국역사지명대사전)>에서도 “옛날에는 동해를 함께 발해라 칭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옛날 동해를 발해라 칭했다”는 기록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 <六家詩名物疏(육가시명물소)>, <詩傳旁通(시전방통)>, <記纂淵海(기찬연해)>, <圖書編(도서편)>, <格致鏡原(격치경원)>, <古今事文類聚(고금사문유취)>, <升菴集(승암집)> 등이 있다.
요약 정리하면 대야택, 거야택, 발해(渤海), 동해(東海)는 같은 지명을 달리 부르던 이름이며 발해의 위치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이라는 것이다. 그 흔적으로 동평호, 남양호, 소양호, 남산호, 독산호, 미산호 등의 자연 호수가 남아있다.
동해라고 부르던 발해는 오늘날의 발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 <그림 10>, <그림 11>, <그림 12>를 비교하면서 발해(동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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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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