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논평>
댓글 :
고려가 대진의 단대사를 편찬하지 않은 것은 즉 고려 인종 때 신라 고구려 백제만 편찬한 것은 거란遼과 金 때문이겠지요? 거란이나 금이 대진의 력사를 편찬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논평 :(김태영학파T.K.School):
우선 “단대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자로 표기해 주기 바라며, 댓글에 대해 즉답할 수 있는 1차사료나 문헌자료가 없어 논평하기가 불편하지만 여러 문헌사료들을 조사, 검토, 분석, 교차확인 한 바를 바탕으로 견해(見解)를 밝힌다.
김태영학파는 고려 시기에 대진(발해)에 대한 역사 기록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고려 제5대 경종황제(975∼981) 4년 6월에 발해인[대진인] 수만명이 [고려에] 내투해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둘째, 고려는 문(文)을 숭상한 황제국이고
셋째, 고려는 <고려실록>을 기록하였으며
넷째, 고려라는 국호에서 알 수 있듯이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라는 자부심을 가진 왕조이고
다섯째, 제17대 인종황제(1122∼1146) 23년 12월에 김부식이 전왕조(前王朝)인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 즉, <삼국사기>를 편찬한 일이 있으며
여섯째, 제25대 충렬황제 33년(1307) 11월에 원(元)에 역대 실록을 보낸 일이 있다. “전왕(前王)의 명으로 직사관(直史館)를 보내 선대(先代)의 실록 185책을 만들어 원으로 보냈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불가하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조상 이래의 실록을 다른 나라로 반출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란 <고려사>의 기록을 볼 때 고려에는 역사기록을 전담하는 직사관(直史館)이란 벼슬이 있었고
일곱째, 제26대 충선황제(1298, 1308∼1313) 복위년(1308) 12월에 원(元)이 하정사를 보내 <세대편년절요> 등을 바치게 했다는 기록이 보이며
여덟째, 제28대 충혜황제 4년(1343년 5월 18일 음력) 원(元)이 송·요·금의 역사 기록을 고려로부터 요구한 바 있다. “壬午 元遣直省舍人實德來, 索宋·遼·金三國事蹟(임오 원(元)에서 직성사인 실덕이 와서 송·요·금의 사적(事蹟: 일의 자취 즉, 역사 기록)을 요구 하였다)”란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고려가 타국인 송, 요, 금의 역사를 기록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원나라가 알고 있었기에 그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이해한다.
함께 살펴본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과거제도를 실시하여 문(文)을 숭상한 왕조로 고려실록을 남긴 고려는 분명히 전조(前朝)인 대진(발해)의 사적(事蹟)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고려가 기록한 대진의 역사기록이 어느 시점에서 소실되었거나 이씨조선의 세종과 정인지 등이 <고려실록>를 폐기하고 지금의 <고려사>를 찬술한 과정에서 대진의 기록이 분실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거란이나 금이 대진의 력사를 편찬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의 답이다.
대진은 고구려를 계승하여 옛 고구려의 강토를 거의 회복한 황제국이다. 대진의 초기 국호는 후고구려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지나인들은 대진국을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칭송한 강력한 왕조이며 해동성국이란 경도 110⁰로 갈리는 황하의 동쪽에 있는 번성한 나라란 의미이다.
고려 역시 대진의 핵심 강역인 산서성과 하내(河內)를 회복하였으나 대진의 산해관 북쪽 영토 전체를 되찾지 못하였다. 즉, 고려는 고려의 만리장성 동쪽 기점인 오늘날의 하북성 산해관(山海關)으로 국경이 되어 산해관 이북의 땅은 요(遼: 거란족)와 금(金: 여진족)의 영토가 되어 대진의 전역(全域)을 회복하지 못했다.
송, 요, 금을 통일한 나라는 몽고(원)이다. 그러므로 송, 요, 금의 역사는 당연히 원나라가 편찬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원은 고려로부터 송, 요, 금에 관한 사적(事蹟)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원나라의 탈탈(脫脫)이 <송사> 496권, <요사> 106권, 그리고 <금사> 135권을 지었다.
<송사>, <요사>, <금사>는 <명사>나 <청사고>를 비롯하여 명·청 시기에 찬술(撰述)된 사서들과 비교해 볼 때 지리지명 왜곡이 덜하다. 원나라의 탈탈이 이들 사서를 편찬할 때 고려에서 가져간 사적(史蹟)에 근거하였다는 부인하기 어려운 방증(傍證)이다.
어떤 이유이든 대진(大震)의 정사(正史)가 오늘날까지 전해오지 않은 것은 동이배달한민족의 천추한(千秋恨)이다. 역사학자 김태영이 <대진(발해)의 강역 연구>(제17집)(2022)란 논문을 출간하여 대진의 역사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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