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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적인 식민사관에 언제까지 휘둘릴 것인가. 우리 민족의 참된 역사, 진실된 역사를 알리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재야 사학자.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한민족사관정립의식개혁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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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고려의 6천리강토

댓글에 논평한다
글쓴이 : 김태영 날짜 : 2025-05-26 (월) 17:44:25

댓글(이00):

죄송합니다만 너무 나무라시지는 마십시요. 한가지 더 의문이 듭니다. 김부식이 고맙다면 왜 조선이 고려를 이은 것도 아닌데 고려왕조 실록을 태종과 세종이 폐기를 했다고 전에 말씀하셨는데, 왜 고려왕조 실록이 조선으로 들어 온 것입니까? 그리고 세종 이도는 나쁜 짓도 많이 했으나 그간 전해 내려오던 동이족의 문자 한글을 집대성한 공로는 인정해야 합니까? 아니면 세종이 하지 않았어도 다른 누군가가 했습니까?

 

논평: 

첫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동이배달한민족사는 없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눈물나게 고마울 수밖에 없고

둘째, 이성계가 반역(反逆)으로 멀쩡한 고려를 뒤엎고 이씨조선을 세웠다고 했지 고려를 이은 것이 아니라 말한적은 없다. 이는 마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을 멸한 유방(劉邦)이 한(漢)을 세우고 한나라의 사마천이 <사기>를 지으면서 진나라 역사를 기록한 이치(理致)와 같다. 유방이 진을 멸했다고 해서 한(漢)이 진(秦)을 이은 것이 아닌가.

셋째, 역사서가 전해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해당 왕조가 직접 기록한 <실록>과 후조(後朝: 계승받은 후왕조)가 전조(前朝: 전왕조)의 역사를 기록하여 전하는 경우이며

넷째, 고려는 황제국으로 고려가 직접 기록한 <高麗國史(고려국사)>가 전해왔으나 이조(李朝) 4대왕인 이도(李祹: 세종)와 그의 신하 정인지 등이 <고려국사>를 폐지하여 지금은 전하지 않으니 세종과 그의 신하 정인지 등은 만고의 역적이다.

다섯째, 거란족으로 원(元: 몽고)의 다루가치(達魯花赤)를 하다가 고려에 귀화(歸化)하여 고려의 신하가 된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한반도로 쫓겨올 때 사서들을 함께 가지고 온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여섯째, 고려는 본시 문(文)을 숭상한 나라로 해인사(海印寺: 광동성 박라)에 소장되어 있던 역대실록(歷代實錄) 및 경전(經典), 사서(史書) 기타 서적들을 오늘날의 요녕성 와방점시(瓦房店市) 동북에 있는 득리사진(得利寺鎭)으로 옮겨 안치했다. 요녕반도 맨 끝자락이다. 한반도로 쫓겨올 때 요녕성을 거쳤을 것이니 고려의 사서들을 가지고 온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며

일곱째, 송(宋) · 요(遼) · 금(金)이 망하고 원(몽고)의 탈탈(脫脫)이 <송사>, <원사>, <금사>를 지었다. 원이 이들 사서를 지을 때 고려에 자료를 부탁한 사실이 기록에 나타나니 고려가 그만큼 문헌기록을 중시했다는 방증(傍證)이 될 것이고

여덟째, 세종은 한글을 창제(創製)한 적이 없다. 단군조선 제3대 가륵(嘉勒)단군 원년인 BC2181년에 을보륵이 가람토 38글자를 만들었으며 고려중렵 시기에는 이 글자를 이두문(吏讀文)이라 불렀다. 세종(1418∼1450) 때는 이 이두문을 ‘언문(諺文)’ 또는 ‘암클’이라 불렀다. ‘언문’이란 ‘상놈의 글’이란 뜻이고 ‘암클’이란 여자들이 사용한 글자란 의미로 멸시한 말이다. 세종때에 한글의 전신인 이두문이 실존했다는 증거다.

아홉째, 세종 이전에 이두문(한글)이 있었다는 기록은 당시 집현전 부제학이던 최만리(崔萬理)의 상소문에도 잘 나타나 있으며 역시 정인지의 발원문에서도 알 수 있다. 최만리는 고려 현종4년에 국사수찬관이 되어 고려실록 편찬에 참여한 최충(崔沖)의 후손이며 청백리에 녹선된 인물이다. 청백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열째, 만약 김태영학파(T.K.School)가 세종(이도)에 대한 평전을 쓴다고 가정하면 공(功)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성계, 이방원, 이도, 그리고 이향 4대에 걸쳐 광활한 6천리의 고려 강토를 명나라에 바친 점을 크게 부각할 것이다. 활시위 한번 당기지 않고 홍건적 수괴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에 강토를 빼앗긴 점은 어떤 변명도 정당화될 수 없다. 나라가 망해도 더럽게 망한 경우가 있고 떳떳하게 망한 사정도 있다. 고려를 더럽게 망하게 한 사람이 바로 이성계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과 저서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고려의 강역 연구>-고려는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제19집)(2023)

<동이배달한민족사>(2013)

<동이배달한민족사>(개정증보판)(2019)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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