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삼한이 위치한 산서성
한(韓)은 한(汗)이나 간(干)처럼 왕을 뜻한 것으로 단군조선을 세운 왕검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왕검 자신이 태일(太一)로 진한(辰韓)이 되고 왕검을 보좌하는 왕에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어 마한(馬韓)은 천일(天一)로 우현왕이라 하고 변한(弁韓)은 지일(地一)로 좌현왕이라 한 데서 비롯된다.
이들 삼한은 단군조선의 핵심 영토인 산서성 남부로 진한은 평양, 마한은 조양진, 변한은 원곡에 각각 왕성(王城)이 있었다.
예부터 인도인(印度人)들은 황하의 동쪽인 산서성을 해가 뜨는 곳이라 하여 진단이라 하였는데 문헌사료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을 진단(震旦)이라 칭했으며 <繙譯名義集(번역명의집)>에 이르길 동방이 진단이며 해가 뜨는 방향으로 옛날에 진단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天中記(천중기)>에는 “진단은 총하(蔥河)의 동쪽으로 해가 처음 떠서 비추는 동쪽 모퉁이라서 옛날 얻어진 이름이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총롱산(蔥聾山)은 지금의 오노산(五老山)이다. 산서성 우향현 서남이다. <山海經(산해경)>에 총롱산 가운데는 큰 계곡이 많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노산은 오노봉(五老峰)이란 이름으로 오늘날의 산서성 남서부에 위치한 중조산의 일부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총하(蔥河)는 섬서성과 산서성 사이의 황하가 굴곡하는 구간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산서성 남부에 단군조선의 삼한인 진한(평양), 마한(조양진), 변한(원곡)이 위치한 지역이며, 마한인 백제는 마한 54국의 하나인데 <攻媿集(공괴집)>에 “백제는 진단지역에 있으며 모두 54개국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백제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삼한의 하나인 마한지역이 진단지역임을 고증해주고 있다.

진단(震旦)의 ‘震’자는 벼락이란 의미이고 ‘旦’자는 해가 돋는 곳이란 뜻으로 진단이란 두려움과 권위을 떨치는 곳으로 왕검단군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초기 삼한과 오노산(봉) 등의 위치를 지도에 나타내면 다음 <그림 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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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22부
1. 마한은 서쪽에 위치
마한 54개국의 하나인 백제에 대한 문헌사료는 약 240종이 넘으며 삼한(三韓)에 대한 최초의 지나(支那) 기록은 <後漢書(후한서)>로부터 시작되는데 <후한서>는 삼한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韓)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진(弁辰)[변한]이다. 마한은 서쪽에 있는데 54국이 있으며 그 북쪽은 낙랑, 남쪽은 왜(倭)와 접(接)하여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며 그 북쪽은 예맥(濊貊)과 접하여 있다. 변진[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며 그 남쪽은 왜(倭)와 접해있다. 모두 78개 나라로 백제(伯濟)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만여호, 작은 나라는 수천가인데, 각기 산과 바다(황하) 사이에 있으며 전체 국토의 넓이가 사방 4천여리나 된다.

동쪽과 서쪽은 바다(황하)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국(辰國)이다. 마한이 가장 강대하여 그 종족들이 함께 왕을 세워 진왕(辰王)으로 삼아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하여 전체 삼한 지역의 왕으로 군림하는데 모든 국왕의 선대는 모두 마한 종족의 사람이다.”
라고 하여 백제는 마한 54국의 하나로 서쪽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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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23부
“동쪽과 서쪽은 바다(황하)를 경계로 하니”라고 하였으나 잘못된 곳으로 사료비판이 요구된다. 여기서의 바다라고 표현한 해(海)란 황하(黃河)를 뜻하는 것으로 산서성 남부에 위치한 삼한은 황하와 황하 사이가 될 수 없다. 서쪽은 황하와 경계한다고 설명해야 옳다.
필자의 이 같은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太平寰宇記(태평환우기)> 권 172 하에 보인다. “서쪽의 바다(황하)를 경계로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각각 사방 4천여리”라고 밝히고 있다. <후한서>의 내용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쪽의 황하와 경계를 한 것은 삼한 초기인 BC2241년의 상황으로 정확하다. 그리고 마한이 사방 4천여리라는 것과 진한, 마한, 변한이 각각 사방 4천리라는 기록은 엄청난 차이다. 다시 말하면 단군조선의 중심지인 산서성 남부를 중심으로 동서가 8천리요 남북이 8천리라는 것이다.
필자는 <태평환우기>의 기록을 따른다. 삼한을 옛날에는 진국(辰國)이라 했다는 진국이 바로 단군조선(壇君朝鮮)을 일컫는 말이다. 낙랑과 예맥은 산서성에 있던 지명이며 단군조선 삼한의 왕성(王城)으로 마한의 왕성은 조양진, 변한의 왕성은 원곡에, 진한의 왕성은 평양(임분)으로 역시 산서성 남부에 위치하였다.

정리하면 삼한 초기에는 서쪽의 황하와 경계가 되었으며 백제가 속한 마한은 서쪽에 있었고 그 후 산서성 남서부로부터 황하를 건너 섬서성과 감숙성에 걸친 영역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한이 삼조선으로 바뀐 것은 색불루가 단군조선 제22대 단군이 된 BC1285년 경으로 한반도(韓半島)는 황하(黃河)와 근접한 지역도 아니며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삼한이 한반도에 있지 않았음이 고증(考證)된 것이며 다음 <그림 4>에서 삼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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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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