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요동과 요서의 위치

백제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남조(南朝) 제(齊)나라 시기(487-488)에 심약(沈約)이 지은 <宋書(송서)>로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遼東)의 동쪽 1천리에 있었다. 그후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여 차지하였다. 백제가 통치한 곳은 진평군(晉平郡)과 진평현(晉平縣)이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백제의 위치를 밝히기 위해서는 요동과 요서의 위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1. 황하 동쪽은 요동 서쪽은 요서
한국 역사학계의 통설인 요동과 요서는 오늘날의 요녕성 요하(遼河)를 중심으로 요하 서쪽은 요서 그리고 요하 동쪽은 요동이라 한다. 요하의 발원지는 내몽고로 약 10곳에서 발원하여 요녕성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흘러 지금의 발해만으로 진입하는 하천이다.
이 하천을 요하라고 명명한 것은 거란족 야율아보기가 세운 요(遼: 916-1125)나라 회동원년인 938년에 지어진 이름으로 고구려가 망한지 약 270년, 그리고 춘추시기로부터 약 1,700년 후에 생긴 지명으로 요동인 산서성에 있던 압록수인 요수(遼水)가 아니다. 요동과 요서란 지명이 생긴 내력을 살펴보자.
요동(遼東)이란 ‘요(遼)가 있는 동쪽’ 또는 ‘요(遼)의 동쪽’이란 의미이며 요서(遼西)란 ‘요(遼)가 있는 서쪽’ 또는 ‘요(遼)의 서쪽’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요(遼)라는 글자가 어떤 뜻을 갖는 글자인지 어원을 알면 요동과 요서의 위치를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요(遼)란 큰샘들이 있는 땅’이란 의미를 갖는 글자이다. 샘이란 땅에서 솟아나는 물을 말한다. 그런데 유주(幽州)에는 7개의 군(郡) 가운데 상곡군(上谷郡)을 제외한 6군 속에서, 요서군(遼西郡)에만 48개의 작은 물이 있어 함께 3,046리를 흐르고, 요동군(遼東郡)에는 대요수(大遼水)가 1,250리를 흐르며,
현토군(玄菟郡)에는 마자수(馬訾水)가 2,100리 흘러가고, 낙랑군(樂浪郡)에는 열수(列水)가 820리를, 우북평군(右北平郡)에는 경수(浭水)가 650리를, 어양군(漁陽郡)에는 고수(沽水)가 750리를 흘러, 이물을 모두 합치면 8,616리를 흐르는 엄청난 샘물과 같은 것으로, 요(遼)라는 글자의 뜻과 일맥상통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요(遼)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지명들인 요산(遼山), 요산현(遼山縣), 요주(遼州), 요양(遼陽: 요주), 소요수(小遼水), 대요수(大遼水) 등이 모두 산서성(山西省)에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황하의 동쪽인 산서성이 요(遼)라는 글자를 지니게 된 이유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요(遼)가 있는 동쪽의 의미인 요동이란 지금의 산서성임을 입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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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19부
요동에 관한 1차사료는 <管子(관자)>로 요동에 천연소금이 산출되는 염지가 있다고 하였고, 둘째는 <사기/조선열전>으로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여 패수(浿水)를 경계로 삼았다는 것과, 셋째는 <한서/지리지>에 요동군은 진(秦)나라 때 설치했으며 유주(幽州)에 속한다고 하였고, 넷째는 <수서>로 고구려는 본시 고죽국인데 주(周)나라가 여기에 기자를 봉하였고 한(漢)에 이르러 3군으로 나누었으며 진(晉)대에는 [고구려가] 요동을 통솔하였다고 하고,
다섯째는 “고구려는 우(禹)가 구주(九州)를 나눌 때 기주(冀州)땅에 속했고 주(周)나라 때는 기자의 나라가 되었으며 한(漢)나라의 현토군(玄菟郡)이다. 요동에 있었으며 평양성에 도읍하였다”라고 <송사(宋史)>가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문헌사료의 근거는 필자의 학술논문에서 이미 밝힌 내용이니 검증을 원할 시는 www.coreanhistory.com 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요산, 요산현, 요주, 요양, 소요수, 대요수 등 요(遼)자가 들어간 지리지명들이 모두 산서성에 위치하며, 기주이고 유주이자 요서인 산서성 남서부에 고죽국이 있었고 고죽국이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고구려가 있던 이곳 산서성이 요동이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황하의 서쪽 마한지역에 있던 진(秦)나라가 강성해져 요동인 산서성 남서부를 강탈하여 요서라고 하였다. 따라서 황하를 경계로 황하 서쪽은 요서 황하 동쪽은 요동 그리고 진(秦)나라가 설치한 산서성 남서부의 요서(군)의 위치를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지도로 나타내면 다음 <그림 1>과 같다.

함께 살펴본 내용과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문헌사료들이 기록하고 있는 요동과 요서는 한국역사학계의 통설로 믿고있는 요녕성(遼寧省) 요하(遼河)를 기준으로 한 요하의 서쪽을 요서 요하의 동쪽을 요동이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의 요녕성에는 산서성 처럼 요산, 요산현, 요주, 소요수, 대요수 등과 같은 천연지형물이나 지리지명들이 없었고 유주(幽州)가 아니기 때문에 요서군이나 요동군이라 부른적도 없었다.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기록된 요동과 요서는 당시 바다(海)라고 부르던 황하와 인접한 오늘날의 산서성임을 고증(考證)하였으므로 학계의 통설은 허구임이 뚜렷하게 판명된 것이다. 요동과 요서에 관하여 더 자세한 내용은 논자의 학술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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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연구> - 제20부
2. 요동에서는 천연소금이 산출
요동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춘추시기(770-403BC)에 관중(管仲: 719-645BC)이 지은 <管子(관자)/地數(지수)>편에 “초나라 여수(汝水)와 한수(漢水)에는 금(金)이 있고, 제나라 거전(渠展)에는 소금(鹽)이 있으며, 연(북연)나라 요동(遼東)에는 구운 소금(煑)이 있다”라고 하여 요동에서 소금이 생산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요동이란 지명은 최소한 춘추시기에 존재했던 지명이며 요동이라 일컫는 곳이 당시 북연의 땅이었는데 그곳에서 소금이 생산되었다고 적고 있다.
두 번째 요동에 관한 기록은 <사기(史記)/조선열전(朝鮮列傳)>으로, “한(漢)이 일어났으나 그곳이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연(북연)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음은 북연에 대한 기록이다. “서주 초기에 봉하였으며 희성(姬姓)이고 도읍은 계(薊)이다. 전국시 7웅의 하나이며 기원전 222년에 진(秦)에 의해 멸했다.” 북연의 도읍지인 계(薊)에 대하여 “계는 남쪽으로 제(齊)와 조(趙)와 통하며 발해(勃海)와 갈석(碣石) 사이에 있는 큰 고을이다. 사고(師古)의 주해에 의하면 계현(薊縣)은 연[북연]의 수도이다”라고 적고 있다.

<사기/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는 “연은 발해와 갈석 사이의 큰 고을이다. 남으로 제(齊)와 조(趙)와 통하며 동북으로 호(胡)와 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의 호는 동호(東胡)라고도 부른 고구려와 북부여를 뜻한다.
당시 제(齊)의 도읍은 하남성 정주와 낙양 사이였고 조(趙)의 도읍지는 섬서성 장안(長安)이였다. 북연의 수도 계(薊)가 하남성뿐만 아니라 섬서성과도 가까운 곳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연의 도읍지는 ‘갈석과 발해’의 사이에 위치하고 남으로 섬서성 장안의 조(趙)와 통하고 동북으로 호(胡)와 접하는 동서는 길고 남북은 폭이 좁은 강토를 소유한 아주 작은 나라임을 의미한다. 동서가 길고 남북의 폭이 좁은 당시의 북연강역을 도형으로 표시해보면 대략 다음 <그림 2>와 같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운 소금인 천연소금이 산출되는 요동과 북연(北燕)은 동북지역이며 유주(幽州)인 산서성 남부와 하내를 지칭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한국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요녕성 요하의 동쪽인 요동에는 천연 소금염지가 없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종합해보면 기주(冀州), 유주(幽州), 동북지방(東北地方), 요동, 북연, 요동의 소금 등이 위치한 지역은 산서성 남부와 하내 지역임을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의해 고증된 것이다.
따라서 <송서>가 기록한 것처럼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遼東)인 산서성(山西省)에 위치하였으며, 고구려가 요동을 장악하자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여 차지하였고 백제가 통치한 곳, 즉 백제의 도읍지는 요서에 있는 진평군(晉平郡)과 진평현(晉平縣)이라는 것이다. 요서인 진평이군에 도읍을 하였다는 백제는 본래 마한 54국의 하나였으니 지금부터 삼한(三韓)의 위치를 고증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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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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