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해(蒼海)는 당시의 북해(北海)를 단군조선에서 부르던 또 다른 이름으로 보인다. 북해(北海)는 산서성(山西省) 남부에 있는 동서 84리 남북 17리의 소금이 생산되는 천연호수로 운성염지(運城鹽地) 또는 삼문협수고(三門峽水庫)라 한다.
● 2천년 넘게 지나를 지배한 단군조선
<산해경> ‘해내경’의 기록이다. 北海之內 有蛇山者 蛇水出焉 東入于海(북해지내 유사산자 사수출언 동입우해) “ 북해안에 뱀산이 있는데 그 산에서 사수가 나온다. 동으로 들어가 황하에 이른다.” 북해(北海) 안에 뱀산이 있고 뱀 물이라는 사수(蛇水)가 나온다는 기록이다.
이암(李嵒) 어른이 쓴 <단군세기>에 의하면, “15세 대음단군 (代音壇君) 신사 2년(BC1660) 홍수가 크게 일어나 민가에 큰 해를 입혔다. 단제께서는 백성을 매우 불쌍하게 여겨 곡식을 창해사수(蒼海蛇水: 창해 즉 북해의 맴 물인 사수)의 땅으로 옮겨 그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 이 두 사서(史書)의 기록으로 보아 북해(北海)가 창해 (蒼海)인 것이 분명하다.
한(韓: 하남성 낙양과 정주사이에 있던 작은나라) 나라가 진시왕(秦始王)에게 망한 것에 원수를 갚고자 한(韓)나라의 세족출신 장량(張良)이 단군조선(壇君朝鮮)에 부탁하여 창해역사 (蒼海力士: 창해에 살고있는 힘이 센 장사) 여홍성(黎洪星)을 구하여 120근의 철퇴를 만들어 진시왕 정(政: 진시왕의 본명)의 수레를 박살내고 진시왕을 죽이지 못하고 실패를 한다.
이 내용이 범장이 지은 <북부여기>에 잘 기록되어 있다. 癸未二十二年 蒼海力士 黎洪星與韓人張良 狙擊王政 于搏浪沙中 誤中副車(계미 이십이년 창해역사 여홍성여한인장량 저격진왕정 우발랑사중 오중복거) “ 계미 22년(BC219: 북부여 시조 단군 해모수 때임) 창해역사 여홍성이 한나라 사람 장량(張良: 유방을 도와 한漢나라를 세운 사람)과 함께 진나라왕 정(政)을 박랑사 (搏浪沙: 황하 북부 하남성 박랑현 동남으로 패수浿水 근처임) 가운데서 저격 (狙擊)하였으나 빗나가 수레를 박살냈다.”
제 12세 아한(阿漢) 단군께서 황하강 옆 창해(蒼海: 북해) 근처에 세운 순수관경 비(碑)를 보고 한나라의 장량과 함께 진시왕을 죽이려던 창해역사(蒼海力士) 여홍성(黎洪星)이 시(詩)한수를 지었던 것이다. 그 시(詩)가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2,096년동안 지나대륙(支那大陸:China) 을 지배했던 단군조선의 패망의 비애(悲哀)를 노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 ‘중국’이란 이름의 유래
무신 22년(BC1813) 용가(龍加: 벼슬이름) 래양(來良)을 보내 하(夏)나라 걸(桀)을 도와 상(商)나라 탕(湯)왕을 치다가 탕(湯)이 사죄하니 래양이 회군(回軍) 할 때에 염이(종족이름) 때문에 관중향서기주 (關中鄕西岐周: 섬서성 기산岐山과 위수분지渭水分地)에 살았다.
을묘 29년(BC1806) 청아 욕살 비신(丕信: 혹은 한불배)과 서옥저(西沃沮) 욕살 고사침(高士琛)과 맥성(貊城) 욕살 돌개(突蓋)를 봉(封)하여 왕(王)으로 삼았다. 병진 30년(BC1805) 유위자(有爲子)를 국태사 (國太師: 나라의 스승)로 삼고 태학관(太學館: 교육기관)을 세워 어진 선비를 양성하였다. 국태사(國太師)인 이 유위자(有爲子)가 바로 ‘중국(中國)’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분이다. 중국(中國)은 원래 ‘사이중(中)’에 ‘땅국(國)’자로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공자의 7대손인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의 기록이다. 有爲子 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 (유위자 이천생성인 영명양일호중국 이윤수업어문) “유위자는 하늘이 낸 성인이며 그에게서 넓고 뛰어나게 좋은 중국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윤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
BC1805년은 하(夏)나라가 망하고 상(商: 은)나라가 시작될 무렵이다. 이때 단군조선(壇君朝鮮)에서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중국(中國)이란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당시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과 하남성(河南省)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나대륙 땅은 단군조선의 영토(領土) 였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이윤(伊尹)은 상(商: 은)나라 탕왕(湯王)의 신하로 상(商)나라를 세울때 개국공신이며 단군조선 제12세 아한단군때의 국태사 (國太師)인 유위자 (有爲子)의 문하생이다.
● 섬서성 빈, 기땅에 관청을 설치
무인 52년(BC1783) 상(商)나라 사절이 처음으로 입조(入朝)하였다. 이해 7월에 임금께서 붕어(崩御: 천자가 세상을 뜸)하시여 태자가 보위에 오르니 제13세 흘달(屹達) 단제시다. 갑오16년 (BC1767) 주(州)와 현(縣)을 설치하고 직책을 정하였다.
겨울에 은(殷)나라가 하(夏)나라를 정벌하니 하(夏)나라 걸왕(桀王)이 구원을 청했다. 단제께서 읍차 (邑借: 벼슬 이름으로 보임)인 말량(末良)으로 하여금 구한(九桓)의 군사를 이끌고가서 싸움을 돕게하니 은(殷)나라 탕왕 (湯王) 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말량에게 명하여 군사를 돌리게 하였으나 하(夏)나라 걸왕이 약속을 위반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막으려하였다.
이에 은(殷)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夏)나라 걸왕 (桀王)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神誌: 사서를 기록한 직책)인 우량(于亮)을 파견하여 견(犬: 견융犬戎를 뜻하며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버지 고공단부 古公亶父로 섬서성에 있던 단군조선의 제후임)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낙랑(樂浪: 하남성 낙양 북부를 포함하여 산서성 남동부 패수가 흐르는 패수현의 원곡일대에 있던 제후국)과 함께 진격하여 관중(關中: 섬서성 위수분지 일대)의 빈(邠: 섬서성陝西省 함양시咸陽市)과 기(岐: 섬서성 기산현岐山縣 동북지방)의 땅에 살면서 관청(官廳)을 설치하였다.
무술 20년 (BC1763) 소도(蘇塗: 수두)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地花: 근수, 무궁화)를 심었다. 미혼의 자제로 글읽고 활쏘는것을 가르쳐 이들을 국자랑 (國子郞)이라 불렀다. 법정학교(法政學校)를 세웠다.
● 천문학으로 증명된 단군조선의 기록
무진50년(BC1733) 오성 (五星: 금성, 수성, 목성, 화성, 토성)이 모여들고 누런 학이 날아와 뜰의 소나무에 깃들었다. 다음은 <한단고기>에 있는 이암(李嵒) 어른이 쓴 <단군세기>의 기록이다. 戊辰五十年 五星聚婁 黃鶴來捿苑松 (무진오십년 오성취루 황학래서원송) “무진 50년 오성이 모여들고 누런학이 날아와 정원 소나무에 살았다.”
서울대 천문학자(天文學者) 박 창범 교수와 표준연구원 라 대일 박사가 이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BC1733년을 전후하여 약 550년간의 5행성의 위치를 계산했다고 한다. 1993년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초고속 컴퓨터(Super Computer)로 이 다섯 행성( 금성, 수성, 목성, 화성, 토성)들의 기록을 증명했는데 다섯개의 별이 한 군데 모인 것이 제13세 흘달 단군때 기록되어 있는 BC1733년 보다 1년 전인 BC1734년 7월 13일 초저녁으로, 매우 뚜렷한 형태로 오행성 (五行星)이 서로 아주 가까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단군조선의 기록보다 1년정도 차이가 나는 것은 당시의 시간 계산법과 약 3,000년이 지난 지금의 시간 계산법의 차이를 고려하면 무시해도 좋은 수치라고 박 교수는 말했다. 천문학(天文學)이란 과학적 (科學的)인 방법으로, 신화(神話)라고 매도(賣渡)했던 단군조선(壇君朝鮮) 의 역사(歷史)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立證)한 것이다. 갑술56년(BC1727) 9월에 유위자(有爲子)가 죽으니 단제께서 통곡하시고 국례(國禮)로 장사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