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성(山西省) 서북쪽에서 발원한 두 하천(河川)중 하나인 습수(상건하)는 하북성(河北省) 서북부를 지나면서 열수(영정하)와 합쳐 천진(天津)을 거쳐 발해만(渤海灣)으로 흐른다.
또 하나는 말갈백산(靺鞨白山)의 분원천지(汾源天池) 에서 발원(發源)하여 산서성 태원(太原)과 그 아래 임분시(평양성)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황하(黃河)로 들어가는데 고구려(高句麗)때는 압록수(鴨綠水)라고 불렀다. 다른 이름으로 당취수, 마자수, 대요수, 고려(高麗)때는 안민강이라고 불렀으며, 현재는 분하(汾河) 혹은 분수(汾水)라고 부르는 강(江) 이다.
따라서 산서성 (山西省)은 단군조선(壇君朝鮮)이 개국될 당시 중심지역(中心地域)이며, 이를 뒷바침하는 근거로 <사기>에서 말한 “낙랑(樂浪) 과 조선(朝鮮) 이란 이름은 단군조선의 하천(河川)이던 습수, 열수, 산수에서 비롯된 듯하다.”란 대목인 것이다. 낙랑(樂浪)은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북부를 포함하여 산서성 남.동부 패수(浿水: 현 망하)가 흐르는 패수현 일대로 낙랑(樂浪)은 단군조선의 건국당시인 BC 2333년 경부터 존재하던 이름인 것이다.
• 한반도(韓半島)에 대한 최초의 기록
정사 50년인 BC2284년 왕검께서 풍백(風伯: 입법담당)인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치수(治水: 물을 다스림)를 하도록 하였다. 우수주(牛首州: 맥국이 있던 곳으로 필자는 현 하북성 창주滄州로 비정한다)에 그 당시 홍수(洪水)를 다스린 업적비가 있다.
무오 51년(BC2283)에 운사(雲師: 사법담당)인 배달신(倍達臣: 왕검의 셋째 아들 부유)에게 명하여 강화(江華: 한반도 강화)의 전등산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고 제천단(祭天壇)을 마리산(摩璃山)에 만들게하여 장정 8,000명으로 일하게 하였다. 동방민족(東邦民族)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풍속이 단군왕검(壇君王儉)때 부터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294년 전에 한반도 강화에 대한 기록은 실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군조선(壇君朝鮮)때에 지나대륙(支那大陸)과 한반도(韓半島)는 동이(東夷) 민족이 같은 언어, 생활, 양식, 습관, 역사를 함께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 우(虞)에게 오행치수법을 가르침
단군왕검은 갑술67년(BC2267)에 태자(太子) 부루(扶婁)를 파견하여 하(夏) 나라를 세운 우(虞: 우임금)에게 도산(塗山: 안휘성 현 숙주宿州로 비정함)에서 오행치수법(五行治水法: 금, 수, 목, 화, 토의 오행 법에의한 홍수를 다스리는 법)를 가르쳐 주고 국경(國境)을 정하여 유주(幽州)와 영주(營州)가 조선(朝鮮)의 땅이 되었다. 또 회대지방(淮岱地方: 강소성)의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分朝: 지방정부)를 두어 다스리고 이를 우순(虞舜:순임금)에게 감독하게 하였다.
유주(幽州)는 황하 북부 하남성(河南省) 서부일대와 산서성(山西省) 남부 일대를 말하며, 영주(營州) 는 황하(黃河)북부 하남성(河南省) 동부 일대를 뜻한다. 동이배달한민족사 (東夷倍達韓民族史)에 자주 등장하는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는 이렇게 단군조선 때부터 우리의 강역(疆域)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과 하남성 (河南省)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나(支那:China) 대륙이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영토였던 것이다.
• 오해의 소지가있는 <서경>의 기록
<서경書經>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있다. 帝舜 歲二月 東巡守 至于岱宗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제순 세이월 동순수 지우대종시 망질우산천 사근동후)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수(巡守: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이고, 제후가 천자를 찾아뵙는 것은 술직述職이라 함)하고 대종(岱宗: 산동성의 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모시고 차례로 산천에 제사 지내고 마침내 동쪽 천자를 만나뵈었다.”
그동안 재야사학자란 분들조차도 “사근동후(肆覲東后)”를 “동쪽 제후들을 만나다”로 해석해왔다. 잘못된 해석이라 보아진다. 후(后)자는 ‘임금후’ 또는 ‘천자후’란 글자로 보아야 하고, ‘제후’라고 할때는 제후후(侯)자를 써야한다. 순(舜)임금은 단군왕검(壇君王儉)이 임명한 지방정부(분조)를 감독하는 감독자 (監督者)로서 회대지방(강소성)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아 동쪽인 회대지방의 제후들을 만나본 것이니 순수(巡守)란 표현을 썼던 것이다.
산동성(山東省)은 원래 배달국(倍達國)의 영토이고 단군조선의 고유(固有)의 영토임을 알고 있었다면 이토록 잘못된 해석이 나올 수 없었을 것으로 본다. <서경>에 정확한 날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이때 천자인 왕검단군(王儉壇君)이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도성(都城)에서 생활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 왕검(王儉) 말기에 12성을 쌓다
경자 93년(BC2241)에 천하(天下)의 땅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삼한(三韓)은 64족을 포함하였다. 웅백다(熊伯多)를 봉(封)하여 마한(馬韓) 이라하고, 치두남씨(蚩頭男氏)를 봉(封)하여 변한(弁韓)으로 임명하였으며 겸직(兼職)하여 우(虞)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였다.
요중(遼中)에 12개의 성(城)을 쌓으니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용도(용道), 거용(渠용),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 그것이다. 단군왕검 당시의 마한(馬韓), 변한(弁韓)의 한(韓)은 단군(壇君: 하늘에 제사를 지낼때 주인主人이자 천자天子란 뜻)를 보좌하는 왕(王)을 뜻한다. 당시 단군조선(壇君朝鮮)의 광활한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단군 (壇君)을 보좌하는 마한(馬韓:마왕), 변한(弁韓:변왕)은 항상 단군의 도성(都城)과 가까운 곳에 함께 있어야 한다.
제22대 색불루 단군 (索弗婁 壇君: BC1285-BC1237) 때에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 이라했으며 이때부터 진한, 마한, 변한의 영토가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의하면, “색불루 단군 때인 BC1285년 5월 제도를 개정하여 삼한(三韓)을 삼조선 (三朝鮮)이라했다. 조선(朝鮮)이란 관경(管境)을 말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관경(管境)이란 “맡아서 다스리는 경계”란 뜻으로 비로소 진한(辰韓: 진조선), 마한(馬韓: 막조선), 변한(弁韓: 번조선)이 독자적으로 다스리는 영토(嶺土)가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경자 93년(BC2241) 3월 15일 단제(壇帝: 왕검)께서 봉정(蓬亭: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필자는 산동성에 있던 한 지명으로 본다)에서 붕어(崩御: 천자가 세상을 뜸)하시니 교외 10리쯤 떨어진 땅에 장사 지냈다. 백성들이 마치 부모님 돌아가신듯 마음속에서 잊지 못했다. 태자 부루(扶婁)가 단군(壇君)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