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세 우서한(于西翰) 단군 원년에 맏아들 아술(阿述)을 태자로 삼았다. 기유2년(BC1992)에 풍년이 들어 한줄기에 이삭이 여덟개 달린 벼가 있었다. 경술 3년(BC1991)에 달돌(達突) 나라 사절이 왔다.
신해 4년(BC1990)에 임금께서 보통 사람으로 변장하고 하(夏)나라에 들어가 지리(地理)와 정치(政治) 인정(人情)과 풍속(風俗)을 살피고 반년(6개월)만에 귀국하여 관청(官廳)의 제도를 크게 고쳤다.
● 단군조선의 세금은 1/20
이때 1/20의 세금(稅金)을 내는 법(法)을 만들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 상고사>에 의하면, “ 단군조선은 20분의 1을 취하는 사가동전(四家同田: 네 가구가 하나의 밭을 경작함)인 입일세(卄一稅) 였고 지나(支那: China)는 10분의 1을 취하는 팔가동전(八家同田: 여덟 가구가 밭 하나를 같이 경작함)인 십일세 (十一稅)였다.” 라고 되어 있다.
다음은 <맹자>의 기록이다. 白圭曰 吾慾二十而取一 何如 盟子曰 子之道 貊道也(백규왈 오욕이취일여하 맹자왈 자지도 맥도야) “백규가 말하기를 나는 20분의 1의 세금을 받고 싶은데 어떻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맹자가 말하기를 그대의 방법은 맥(貊: 단군조선)의 방법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라에서 세금을 적게 부과하는 것은 백성을 위한 정책이라 믿어진다.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철학사상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홍익인간은 배달국(倍達國)과 단군조선(壇君朝鮮)의 국시(國是)였다. BC1990년 지금으로부터 4,000 년 전에 백성들을 생각하여 우서한(于西翰) 단군께서는 1/20의 세금을 부과했던 것이다.
● 삼족오(三足烏)는 동이(東夷)의 상징
www.zh.wikipedia.org
갑인 7년(BC1987)에 세발달린 새 삼족오(三足烏: 세발달린 까마귀)가 궁중에 날아 들었는데 날개 넓이가 석자(三尺)였다. 삼족오의 기원(紀元)은 배달국(倍達國) 자오지(慈烏支: 치우) 천황으로 BC231년에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추모(鄒牟:주몽, 동명성왕)의 상징적인 국조(國鳥: 나라 새)가 삼족오이다. 제 9세 아술(阿述) 단군 첫 해에 맏아들 노을(魯乙)을 태자로 삼았다.
정사 2년(BC1984) 청해(靑海: 현 청해성의 청해로 보임)의 욕살(당시의 벼슬) 우착(于捉)이 군대를 일으켜 궁성 (宮城)을 침범하므로 단제께서 상춘(常春: 길림성 장춘)으로 피신 (避身)하시고 상장 우지우속 (于支于粟)이 군사를 이끌고 이들을 쳤다.
3년 뒤에 도성(都城)으로 돌아왔다. 경신 5년(BC1981)에 고소(高蘇)에게 명하여 국법전서(國法全書)를 다시 편찬하였다. 신유 6년(BC1980) 봄에 백성들에게 참정권(參政權)을 허락 하였다. 민권(民權)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 최초의 동물원과 신문고
제10세 노을(魯乙) 단군 신묘 원년(BC1950) 처음으로 큰 동물(動物) 우리를 만들어 가축 이외의 동물을 길렀다. 우리 동이배달한민족 (東夷倍達韓民族)의 역사상 최초의 동물원(動物園)으로 보인다. 을미5년(BC1946)에 궁궐문 밖에 신원함(伸寃函: 혹은 신원목伸寃木)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으로 하여금 이 함(函: 상자)에 신원서(伸寃書: 원통함을 호소하는 글)를 넣어 억울함을 풀게 하였다.
병오 16년(BC1935) 동문(東門)밖 육지에서 연(蓮: 연꽃)이 피어나 질줄 모르고 태백산(太白山: 불함산, 백두산, 묘향산, 장백산)에서는 누어있던 돌(石)이 일어나고 천하(天河: 현 외몽고 바이칼 호수로 당시는 천해天海로 불렀음)에서 신귀(神龜: 신비한 거북)가 등에 그림을 지고 나타났는데 바로 윷판과 같은 것이었다.
발해(渤海: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의 거야택, 대야택, 동해) 연안에서 금덩어리가 13섬(용량 계산단위로 130말)이나 나왔다. 을축 35년(BC1916) 처음으로 감성(監星: 별을 관찰하는 첨성대 일종)을 두었다. 이해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보위에 오르니 제 11세 도해(道해) 단제시다.
● 지나대륙에 유행한 ‘신수두’
도해단군 경인 원년(BC1891)에 맏아들 아한(阿漢)을 태자로 삼고 유위자(有爲子)를 태자태부(太子太傅: 태자의 스승)로 삼았다. 이해에 단군께서 오가(五加: 귀족들로 지금의 행정부 장관들)에 명을 내려 12 명산(名山: 이름난 산)의 가장 뛰어난 곳을 골라 국선(國仙)의 소도(蘇塗: 단군시대 천신天神에 제사지내는 지역으로 수두라고도 함)를 설치하였다.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조선족(朝鮮族: 단군조선족)은 우주의 광명(光明)이 숭배의 대상이 되어 태백산(太白山)의 숲을 광명신(光明神)이 살고 있는 곳으로 믿었는데 그 뒤 인구가 많아져 각지에 분포하자 각기 살고 있는 곳에 태백산의 숲을 모방하고 그 숲을 이름하여 ‘수두’라 하였으며 수두란 신단(神檀)이라는 뜻이다.
강적(强敵: 강한적)이 침입하면 수두 소속의 부락들이 연합하여 이를 방어하고 가장 공이 큰 부락의 수두를 첫째로 받들어 ‘신수두’라 이름했다.” 단군조선(壇君朝鮮)과 동시대인 요임금, 순임금, 하(夏), 은(殷: 상), 주(周)나라 때까지 지나대륙(支那大陸)에 단군조선의 ‘신수두’ 일반신앙(一般信仰)이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 하(夏)나라의 조공과 수호조약
정유8년(BC1884) 여름에 하(夏)나라 왕(王) 근(하나라 13대 왕)이 사신을 보내 조공(朝貢)을 하였다. 을축 36년(BC1856) 신우(神祐)를 하(夏)나라에 보내 두 나라간의 수호조약(修好條約)을 맺었다.
정묘 38년(BC1854) 선사(選士) 20명을 하(夏) 나라에 보내 나라의 가르침을 전함으로써 위세(威勢)를 보였다. 수호조약(修好條約)이란 문명(文明) 정도가 낮거나 혹은 혁명(革命) 때문에 외국인의 생명 재산을 확실히 보증할 수 없는 나라 사이에 맺는 조약을 말한다. 당시 하(夏)나라는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제후국(諸侯國)에 불과한 작은 나라였기에 수호조약을 한것이며 2년후인 정묘 38년(BC1854)에는 선발된 단군조선의 선비 20명이 하(夏)나라에 가서 가르치고 위세를 보였던 것이다.
을해 46년 (BC1846) 송화강(松花江: 흑룡강성에 있는 강) 기슭에 관청(官廳)을 세우니 배(船)와 그와 관계되는 여러가지 물건이 크게 세상에 퍼졌다. 천부경(天符經)에 대해 논(論)하시고 삼일신고(三一神誥)를 강연하셨다.
‘천부경’은 환국(桓國: 혹은 한국)에서 구전(口傳)으로 전하던 것을 배달국(倍達國)때 환웅(桓雄)께서 신지 (神誌: 역사를 기록하는 직책)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고 해서 녹도문인데 이 녹도문이 한자漢字의 전신이며 진서眞書라고도 불렀다)으로 기록한 것으로 81자로 된 동이배달한민족의 3대 경전(經典)의 하나다.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참佺戒經)을 우리민족의 3대 경전(經典)이라 한다.
정축 48년(BC1844) 유학생 25명을 하(夏)나라에 보내 하서(夏書)를 공부하게 했다. 을유 56(BC1836) 기계공장을 송화강(松花江) 기슭에 설치했다. 제12세 아한(阿漢)단군 무자2년(BC1833) 여름 4월 외뿔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서 나타났다.
그해 8월 단제께서 요하(遼河: 산서성과 하남성 사이의 황하)의 남쪽에 이르러 순수관경(巡狩管境: 천자인 단군이 제후들을 돌아본 지역) 의 비(碑)를 세워 역대 제왕(帝王)의 이름을 새겨 전하게 하였다. 먼훗날 창해역사(蒼海力士) 여홍성(黎洪星)이 이 비석(碑石)을 지나며 시(詩) 한수를 읊었다.
<下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