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땅은 50리에서 100리 정도에 불과한 나라였다. 당시 노(魯: BC722-BC662) 나라의 연대기(年代記: 중요한 사실을 연대의 순서에 따라 기록함) 를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라는 이름으로 다시 편찬(編纂)하면서 ‘춘추필법’이란 말이 나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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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孔子: BC551-BC479)란 사람이 노(魯: 하남성에 있었음)나라에서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징재의 아들로 태어난다. 숙량흘이 70세 때 공자를 낳고 72세에 세상을 뜨니 이때 공자는 3살이었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나이가 많은 선생 밑에서 배웠다고 한다. 공자가 14세 때는 어머니마저 사망하여 홀홀단신 고아가 된다. 17세때 말단 관리(官吏)가 되어 일하면서 노(魯)나라 대학(大學)에서 주공단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시경詩經>과 <서경書經>를 공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구(孔丘: 공자의 이름)가 <춘추>를 쓰면서, 노나라의 환공(桓公)이 은공(隱公: BC722-BC712)을 살해(殺害)하고 왕(王)이 된 사실을 감추고 기록하지 않았고 소공(昭公: BC541-BC510)이 신하인 계씨에게 쫒겨난 사실도 숨기고 기록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라인 노(魯)나라의 수치(羞恥)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爲國諱恥 尊華壤夷 詳內略外 (위국휘치 존화양이 상내략외) “자국을 위하여 수치를 감추고 지나는 높이고 동이는 깎아내리며 지나의 역사는 상세하게 기록하고 남의 역사는 간단하게 기록한다.” 이러한 사상(思想)이 공자(孔子)의 <춘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서 ‘춘추필법’이란 말이 유래(由來)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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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필법’의 실상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주천자(周天子)(주나라 왕)가 정후(鄭候: 정나라인 제후국)의 화살을 맞고 다친 일을 기록하지 않았고
(2) 송(宋)나라 태종(太宗)이 거란(契丹)과 싸우다가 화살에 다친 사실을 기록하지 않고
(3) 한(漢) 무제(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하고 그곳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 한사군(漢四郡)을 만들었다는 <한서: 반고>의 허위 기록과
(4) <사기>의 武王奉箕子于朝鮮(무왕봉기자우조선)“무왕이기자(箕子)를 조선의 왕으로 봉했다.”는 ‘봉작설封爵說’의 허위 기록.
(5) 한(漢)무제가 위만조선이 망한 BC107년부터 BC98년까지 고구려(高句麗) 6대 태조대왕궁(太祖大王宮)과의 9년 전쟁에서 고구려에 참패(慘敗)한 사실을 감추고 기록하지 않은 것.
▲사마천 www.ko.wikipedia.org
(6) “단군조선 23대 아홀단군(阿忽壇君) 을유2년인 BC1236년에 은(殷)나라 27대 무을(武乙)왕을 벌하기 위하여 은나라 성책을 부수고 회대(淮岱:하남성, 안휘성, 강소성 일대) 땅을 평정하고 엄(淹), 서(徐), 회(淮)땅을 제후로 봉하였다.”는 기록을 사마천의 <사기>에는, “ 帝武乙無道 爲偶人 謂之天神 天神不勝 乃僇辱之 武乙獵於河渭之閒 暴雷 武乙震死(제무을무도 위우인 위지천신 천신불승 내륙욕지 무을렵어하위지한 폭뢰 무을진사) 은나라 무을왕은 황음무도(荒淫無道: 주색에 빠져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도리를 하지않음)을 좋아해 천신을 모독하고 무도(無道)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어느날 황하 (黃河)와 위수(渭水)로 사냥을 나갔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라고 당시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지 않고 진실을 감추고 빙빙 돌려서 은유적(隱有的) 으로 치사(恥事)하게 표현한 것. 여기서 천신(天神)은 단군조선(壇君朝鮮) 이며 벼락 맞아 죽은 것은 전쟁 중에 죽은 것이다.
▲당태종 www.ko.wikipedia.org
(7)당(唐) 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안시성(安市城) 전투에서 고구려(高句麗) 양만춘(楊萬春) 대장군의 화살에 눈알이 빠진 사실을 숨기고 이질, 늑막염으로 죽었다고 허위 거짓 기록한 점.
(8)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성인 ‘연(淵)’씨를 당나라X들이 천개소문(泉蓋蘇文) 으로 기록하여 ‘천(泉)’씨로 둔갑시켜 놓은 일.
▲연개소문 www.wikipedia.org
(9) 당 나라가 고구려 장군 대중상(大仲象)을 걸걸중상(乞乞仲象)으로, 그의 아들 대조영(大祚榮)을 걸걸조영(乞乞祚榮)으로 대(大)씨성을 당시 말갈족의 성씨인 걸걸(乞乞)로 바꿔 고구려(高句麗) 후손을 말갈족(靺鞨族)으로 사서(史書)에 기록한 일.
(10) 당(唐)나라가 713년에 일방적(一方的)으로 대진국(大辰國) 황제(皇帝) 대조영(大祚榮)에게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겸 홀한주도독’이란 벼슬을 주었다고 사서에 엉터리로 기록하여 ‘발해(渤海)’란 국호(國號)를 임의로 만든 것.
(11) 단군조선(BC2333-BC237), 고구려(BC231-668), 백제(BC213-660), 신라(BC57-918), 대진(발해)(698-957), 고려(918-1392)의 역사(歷史)와 관련된 산서성(山西省)에 있던 모든 지명(地名)을 명(明)나라때 하북성(河北省)으로 모두 옮겨놓고 지명조작(地名造作)한 점. 하북성(河北省) 에 있는 현재의 진황도 (秦皇島)와 산해관(山海關)은 한마디로 가짜임.
(12) 명(明)나라가 역사를 왜곡(歪曲)하기 위하여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捏造)하여 <삼국연의; 삼국지>, <수호전>, <열국지>등 엉터리 역사소설(歷史小說)을 만든 것. 소설 ‘삼국지’는 중국의 사대사서(四大史書) 중의 하나로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와 내용이 많이 다름.
(13) 근세 청(淸)나라가 영국, 러시아등 서양(西洋)의 나라들과 교류(交流)할때 某國稱臣奉貢(모국칭신봉공) “모국이 신하를 칭하고 받들며 조공을 했다.” 는 식으로 허위 기록한 점.
(14) 1912년 중화민국(中華民國) 건립후 일본과 합세하여 1926년부터 본격적인 역사왜곡 (歷史歪曲), 지명조작(地名造作)한 것. 일제(日帝)에 의해 지나대륙의 지명이 한반도로 옮겨지고 지나(支那)는 우리 역사와 관계되는 많은 지명(地名)을 다른 이름들로 수없이 바꾸고 있는 점.
(15) 동이(東夷)의 이(夷)자는 본래 하늘(一)에서 내려온 활(弓)을 잘 다루는 사람(人)이란 뜻으로 천자(天子)나 천손족(天孫族)을 뜻한 것이며, 이 이(夷)자는 ‘동이 이(夷)’자로 해야 옳은데 ‘오랑캐 이(夷)’라고 비하(卑下)한 점.
(16)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원래 이름은 ‘동북변강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 (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며 2002년 2월 부터 중공 공산당 정부가 직접 실시한 3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5개년 계획으로 2006년에 이미 완성된 프롸줵(Project)이다. 동북공정은 우리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의 역사인 고구려, 대진국(발해)의 역사를 지나(支那)의 것이라고 조작(造作), 날조(捏造), 왜곡(歪曲)한 것이며 우리땅 간도(間島)(흑룡강성黑龍江省, 길림성吉林省, 요녕성遼寧省, 연해주沿海州)를 되돌려 주지 않으려는 고도의 술수(術數)라는 것.
(17) 내몽고 적봉시(赤峰市)에서 배달국(BC3898-BC2333)과 단군조선(BC2333-BC237)의 것으로 추정되는 적석묘(積石墓)와 많은 유물(遺物)들이 발견되었다. 이것을 ‘홍산문화’라 한다. 홍산문화(紅山文化)는 황하문명(黃河文明)인 ‘앙소문화仰韶文化’보다 1,500년이 앞선 문화(文化)라 한다. 발굴(發掘)된 이 유물들은 분명히 동이(東夷)의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탐원공정探源工程’ 이라 하여 우리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의 문화 문명을 자신의 것이라고 조작하고 있는 점.
▲홍산문화 유물 옥룡 www.ko.wikipedia.org
• 한국도 정부차원서 대처해야
이 밖에도 허위 엉터리 기록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비록 거짓으로 조작, 왜곡, 날조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세월(歲月)이 흘러 60년 100년이 지나면 그 엉터리가 바로 정사(正史: 바른 역사)가 되는 것이다.
지나인(支那人)들은 그 원리(原理)를 너무나 잘 알고있다. 그들의 역사 (歷史) 기록을 보면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해왔었기 때문이다. 더 늦기전에 우리 나라에서도 민간차원(民間次元)이 아닌 정부차원(政府次元)에서 동북공정에 대처해야 한다. 동북공정, 탐원공정, 이들 모든 공정은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연속인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춘추필법(春秋筆法)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事實)을 잊지 말아야 하며 지나의 사서(史書)를 읽을 때는 반드시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 쓰여진 점을 감안(勘案)하여 해석(解釋)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