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동경) 80도를 기준하여 오른편 동쪽인, 동북아시아라고 하는 외몽고, 내몽고 동쪽, 흑룡강성(黑龍江省), 길림성(吉林省), 연해주, 요녕성(遼寧省), 하북성 북경근처, 그리고 한반도에서 한족(桓族) 일명 고산족(高山族)들이 사냥을 하고 유목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고 살던 것이 우리 조상의 시발(始發)이다.
한(桓)은 고산족을 뜻하고, 한(韓)은 유목민을 뜻하며, 동쪽에 살던 사람을 동이(東夷) 라고하고, 도(道)를 통한 것을 배달(倍達)이라하여 우리민족을 동이배달한민족(東夷倍達韓民族)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동북아시아에서 최초로 유목생활(遊牧生活)과 사냥을 했다는 증거로 그동안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 분포지역을 잘 관찰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빗살무늬 토기는 유목민(遊牧民)들이 사용하던 토기(土器)로 토기 밑부분이 뾰쪽하면서 둥그렇게 된 모양의 토기를 말한다.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 지역은 한반도인 수양개, 연해주지역, 바이칼호수 근처, 알타이산맥 근처, 연해주동쪽 일본열도인 홋가이도, 그리고 캄차카로, 북동아시아에 한정되어있다. 황하(黃河) 이북(以北)이나 이남(以南)에서는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 바 없다.
또한 1987년에 한반도 남해에서 약 6,000년경의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인골(人骨)이 발견된바 있고, 하북성(河北省) 북경지역에서 약 1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推定)되는 하토원인(河土原人)의 인골이 발견되었으며, 1988년에는 바이칼 호수 아랫쪽에서 약 7,000년 전 이상의 포파노바 인골이 발견되었다. 1944년에는 알타이산맥 남단에서 약 1만년 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냥도구인 흑요석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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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처음에는 아시아 북동쪽, 즉 동북 아시아에서 살았으나, 인구가 증가하자 점차 황하강 근처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지나인(支那人)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3황(皇)(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5제(帝)(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 순)에서 찾는다. 그들은 8명의 조상에서 갈라져나간 계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은 한국(桓國: BC 8936), 배달국(倍達國: BC 3898), 단군조선 (壇君朝鮮: BC 2333)으로 이어진 장자(장子), 장손으로 부계인 적자(嫡子)로 이어진 민족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지나는 우리의 방계(傍系: 직계에서 갈라져나간 계통)나 서출(庶出: 첩의 소생)로 모계(母系)로 이어진 나라이다.
<산해경>의 기록을 보면, 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 肅愼之國在白民國 北有樹曰 雄常
先八代帝 於此取之(대황지중유산명왈불함 숙신지국재백민국 북유수왈웅상 선8대제 어차취지) “크게 거친 땅(만주)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불함산 (백두산)이다. 숙신국(단군조선)에 있다. 백민국( 백의민족으로 장자이고 동이족중 제일 으뜸임)의 나라에 있으며, 북쪽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하여 웅상이라한다. 팔대제(3황5제)가 여기서 이 웅상의 나무를 취하였다.”
웅상(雄常)의 나무를 취하였다는 말은 제도(制度)나 문물(文物)뿐만 아니라 민족의 뿌리가 동이배달한민족에게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지나의 왕조는 모두 외자로 되어 있다. 요, 순, 하, 은(상), 주, 노, 위, 정, 진(秦), 조, 체, 연, 송, 제, 진(晉), 초, 진(陳) 모두 한 글자로 된 이름이다. 반면에 우리는 한국(정통국), 배달국, 단군조선,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 졸본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대진국(발해)으로 반드시 2글자 이상으로 되어 있다.
외자인 국호(國號)는 우리 동이배달한민족의 제후국(諸侯國)임을 암시한다. 사실상 요, 순, 은(상), 주는 단군조선(壇君朝鮮)의 제후국으로 단군조선에 조공(공물을 바침)한 기록이 사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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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이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단군조선 제 12대 아한단군(阿漢壇君: BC 1834)때 국태사(國太師)로 있던 유우자(有爲子)이다. 공자(孔子)의 7대손인 공빈(孔斌)이 쓴 <동이열전>의 기록을 인용하면, 有爲子以天生聖人 英名洋溢乎中國 伊尹受業於門(유위자 이천생성인 영명양일호중국 이윤수업어문)
“유위자는 하늘이 낸 성인이며 그에게서 넓고 뛰어나게 좋은 중국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윤이 그의 문하에서 배웠다”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이윤(伊尹)이란 상(商:은)나라 탕(湯)왕이 상나라를 세울 때 지대한 공(功)을 세워 재상을 지낸 개국공신 이윤을 말한다.
중국(中國)은 원래 ‘사이중(中)’에 ‘땅국(國)’자로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아한단군이 유위자를 국태사(國太師)로 삼은 때는 병진 30년인 BC1805년으로, 하(夏)나라가 몰락하고 상(은)나라가 시작될 무렵이다.
지나의 25사나 우리의 역사 어디에도 중국(中國)이라는 천자국(天子國)은 없다. 원래 “가운데 사이의 땅의 뜻인 중국(中國)”에 있던 나라들은 ‘가운데 사이의 땅’ 이 상징하듯이, 너무나 작은 소국(小國)들이였다.
<맹자>의 기록을 인용하면, 은(상)땅은 70리였고, 주(周)나라 땅은 100리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者也(하후은주지성 지미유과천리자야) “하의 뒤를 이은 은나라 주나라의 흥성할 때의 땅(국토)은 천리를 넘지 못했다”로, 옛날 지나의 나라들은 모두 황하(黃河)아래 하남성(河南省)에만 국한되어 있는 아주 작은 나라들이였다. 그래서 ‘가운데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중국(中國)인 것이다.
<통지通志: 정초>와 <자치통감資治通鑑: 사마광>의 기록을 보면, “중국(中國)의 조상은 사이(四夷)에서 생겼으며 사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왜의 부족(部族) 일부에서 갈라져 나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엄격하게 따지면 중국(中國)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족(支族)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중국은 ‘중화민국’의 약칭(略稱)으로, 1911년 손문(孫文)이 호북성(湖北省) 무창에서 3민주의 즉 민족, 민권, 민생을 부르짖으며 북경에 있던 청(淸)나라를 타도하자는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성공한 다음해인 1912년 1월 1일 이후부터이다.
▲ 손문(왼쪽)과 모택동 www.wikipedia.com
1949년 10월1일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하여 지금의 ‘중공’이 된 것이며, 손문의 ‘중화민국’의 약칭이 ‘중국’인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中國)이란 정식국호는 1912년 1월 1일 이후부터 나온 신생어(新生語)이다.
따라서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의 약칭이 ‘중국’이고, 지나 본토에 있는 중화인민 공화국의 약칭은 ‘중공’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한꺼번에 부를 때는 옛날부터 사용했던 ‘지나(支那)’가 가장 적합한 명칭이다.
한 가지만 첨언하자. 중화인민공화국이나 중화민국의 약칭을 첫 글자인 중(中)과 끝자인 국(國)을 따서 ‘중국(中國)’으로 고집한다면, 우리는 한국(韓國)이라고 부르지 말고 ‘대국(大國)’이라고 불러야 한다. 대한민국의 첫 글자인 ‘대(大)’자와 마지막 자인 ‘국(國)’자를 따서 ‘대국’이라 해야 옳단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