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내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함은 슬픈 일이듯 조국의 참역사를 알지 못함 또한 크나큰 비극이다. 그런데 지나인들, 식민지 일본인들 그리고 이들에 직접 간접으로 동조해온 한국의 제도권 식민반도사학자들의 방해 공작에 의해 참역사를 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지나인들의 역사 왜곡은 구제불능의 전통적 관행으로 그들은 첫째, 지명을 없애고 둘째, 지명을 옮기고 셋째, 글자를 바꾸고 넷째, 똑같은 지명을 여러 곳에 설치하며 다섯째, 동서남북의 방향을 정반대로 표시하여 헷갈리게 하고 여섯째, 서안에서 5천리 낙양에서 6천리 등 터무니없는 과장과 허풍으로 거리를 왜곡하며 일곱째, 수많은 날조된 문헌사료들[사부(史部), 경부(經部), 자부(子部), 집부(集部)]을 생산하여 천연적인 옛 강과 산의 지명들뿐만 아니라 땅의 이름들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조작을 해왔다.
특히 황하(黃河)의 북쪽이란 의미의 하북(河北) 지역인 산서성 남부에 위치했던 수양산, 고죽국, 창려, 노룡(새), 유수(난하), 갈석산, 기주, 유주, 영주, 요서 등의 지명들을 오늘날의 하북성으로 옮겨놓은 만행을 저질렀다.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 제3대 왕 주체(朱棣: 재위, 1402-1424) 시기에 당시의 직이(直隶)라고 부르던 지금의 북경, 천진시 서부, 하북의 대부분(산서성 남부), 황하북부 하남성 즉 하내, 그리고 산동성 일부 지역 중 특히 산서성 남부에 있던 거의 모든 지명들을 오늘날의 하북성으로 옮겨놓았고 청나라 시기에도 이러한 역사 왜곡이 계속되었다. 직이가 직이성으로 다시 직례성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지명들이 옮겨진 직례성(청나라)을 손문의 중화민국 때인 1938년에 하북성으로 이름을 바꾸어 원래의 하북인 산서성 남부가 오늘날의 하북성으로 둔갑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대한민국의 제도권은 말할것도 없고 재야의 사학자란 사람들조차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왜곡의 비극으로 인하여 오늘날의 하북성에 수양산, 고죽국, 창려, 노룡, 난하, 갈석산 등이 있다하고 유주와 영주가 이곳이라 하며 요녕성 요하(遼河)를 고구려 당시의 요수(압록수)로 인식하여 요하의 서쪽이 요서이고 요하의 동쪽이 요동이라는 등 문헌사료상 전혀 근거 없는 망발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들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들을 읽지도 않을뿐더러 역사 왜곡의 원흉 지나인들과 똑같이 역사적 진실을 날조, 조작하는데 공모하는 어처구니없는 민족 반역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지나의 동북공정에 맞서 싸워야 할 동북아역사재단은 동북공정을 정당화하는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유주와 영주의 위치에 즈음하여 필자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유주(幽州)를 기록하고 있는 문헌사료는 약 820종으로 5,000권이 넘고, 영주(營州)에 관한 문헌사료는 약 320종으로 1,082권에 달하며, 영주(瀛州)는 약 1,615권, 그리고 영주(靈州)는 약 1,570권에 달하여 유주와 영주를 기록하고 있는 원전(原典)은 도합 9,267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들 모든 문헌사료들을 조사, 검토, 비교, 분석, 비판, 교차확인하여 <유주와 영주의 위치 연구>란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유주와는 달리 영주는 3가지의 다른 영주가 존재하였다. ‘바다영’의 영주(瀛州), ‘신령령’의 영주(靈州), 그리고 ‘경영할영’의 영주(營州)가 그것이다. 이들의 이름이 다르듯 이들의 위치도 달랐음을 본 논문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조금씩 역사적 사실이 첨삭(添削)되어 지면서 수나라 당나라 시기에 상당한 내용이 왜곡되었고 명나라의 280년 동안이 가장 심각하게 날조되었으며 청나라도 명나라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을 여러 문헌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급기야 손문의 중화민국 시기에 북방공정이라 하여 당시의 하북인 산서성 남부를 오늘날의 하북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올바른 동이배달한민족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숲을 보지않고는 왜곡된 역사를 밝힐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자랑스러운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정립하는데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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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21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우선 필자의 딱딱한 논문을 읽고 공감해주신 정선생께 감사와 힘찬 박수를 보낸다. 역사적 관찰을 통해 민족형성을 분석해보면 중국[지나]은 서출인 서자나 방계로 이루어진 모계사회이고 동이배달한민족은 장자나 적자로 이루어진 부계사회이다.
이 같은 민족 구성으로 인하여 지나인들은 큰집인 한국, 배달국,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대진, 신라, 고려에 대해 항상 열등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900년, 백제는 870년, 신라가 935년, 대진이 259년, 고려가 471년의 역사로 평균 역사 역년이 687년인데 반하여 지나의 왕조는 한나라 426년, 수나라 36년, 당 290년, 송나라 319년, 명나라 276년으로 평균 270년의 짧은 왕조이다. 27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지나는 687년의 오랜 역사에 항상 열등의식을 가졌다. 집요한 역사왜곡과 날조는 적통과 서자라는 민족형성의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학자들의 직무유기라기 보다는 사대주의에 찌들은 자주성의 부재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일제식민주의 잠재의식에서 나타난 자율적 학문의 결여 때문이다.
학문이란 지식을 배우고 익히며 체계화하는 과정으로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을 학자라 하는데 한국의 제도권이라 하는 대학에는 역사학자가 없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2011년 국가별 1인당 년간 독서량을 보면 일본이 12.7권, 프랑스가 11권, 미국이 10.8권 그리고 한국이 2.7권이다. 역사학자도 국민이니 이 통계 속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터, 1년에 2.7권의 책을 읽어 어느 세월에 4,022권의 25사, 1,893권의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사고전서에 수록된 80,000권의 방대한 문헌사료들을 어떻게 읽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한자로 쓰여있는 역사책들을 말이다.
한마디로 자질과 실력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 학자라고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에 5천년 동안 왜곡, 날조, 조작되어온 민족사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램지어는 법학자이지 역사학자가 아니다. 역사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로 역사학자가 다른 분야의 사건을 다루는 것은 신뢰감이 가지만 법학자가 ‘위안부 역사’를 운운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범하게 되고, 정치와 금전을 개입시킨 학자는 학자가 아닌 것이다. 학자는 정치와 돈과 명예에 초연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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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21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고구려의 요동 위치 연구에 대한)
우선 참고문헌을 자세히 검토한 점에 감사드립니다.
필자와 같은 나이의 어린 시절에 속담같은 경구가 있었지요. 한 바보가 말합니다. "아 다이도 바이다." 두번째 바보의 대응입니다. "마이좀 또이 또이 해." 세번째 바보의 답입니다. "두이다 바이버이다." 결론은 세사람 모두 말을 잘 못하는 바보들이라는 것이지요.
1962년에 북경대에서 <고조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리지린의 고조선 위치도 틀렸고, 리지린의 논문에 참고한 윤내현도 틀렸고, "고조선의 서쪽 강역이 하북성 난하까지"라는 이 두사람의 설을 들어 "낙랑군이 평양이다"라고 한 총독부 학설을 비판한 이덕일도 틀렸어요. 세 사람이 모두 틀린 것입니다.
물론 고강힐, 리지린, 윤내현, 이덕일 모두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하여 고조선의 위치를 고증하지 못한 점은 모두 틀린 것이지요.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관자>, <산해경>, <전국책>, <진서>, <구당서>, <위서>, <수경주> 등을 읽으면 무엇하나요.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을요.
한자에 능통하다는 것과 역사문헌을 지리지명에 맞추어 해석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지요. 고대사의 지리지명을 고증할 때는 반드시 1차사료인 <상서/우공>, <여씨춘추/유시람>, <회남자/지형훈>, <주례직방씨>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중국고대지명대사전>,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비롯하여 <한서지리지>를 포함하여 25사에 나오는 모든 지리지를 읽고 교차확인해야하고, <수경주>, <산해경>, <로사> 등을 읽어야 합니다.
이들 네 사람은 이같은 문헌사료들을 읽지 못했지요. 그들의 논문이나 저서 말미에 나오는 참고문헌을 보면 쉽게알 수 있어요. 엉터리 주장을 한 사람들의 논문이나 글은 참고할 필요도 없고, 틀리고 오래된 학설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이유로 북한 리지린의 논문은 무시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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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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