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주(衛州), 급현(汲縣), 목야(牧野)의 위치는 다음 <그림 8>의 <대청광여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당시의 계현이 두 곳으로 혼동되어 있는 듯하다. 한 곳은 <그림 7>에서 살펴본 산서성 남부의 대흥현의 계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림 8>에서 볼 수 있는 황하북부 하남성 하내에 위치한 계현이 그것이다. 혼동을 주기 위한 고의적이거나 아니면 후대 사가들의 실수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두 곳은 모두 북연의 영토 안에 있는 지역으로 앞의 <그림 6>에서 충분히 밝힌 바 있다. 계속 연구하려고 한다.
<한서/지리지>, <후한서>, <설문해자>, <사기집해>, <중국고금지명대사전>, <괄지지>의 기록을 요약 정리하면,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이 유주이면서 요서인 산서성 남서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서성 남서부가 고죽국이라는 결정적인 근거가 바로 수양산인 오늘날의 중조산(中條山)이다. 지금의 하북성에는 백이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다 죽었다는 수양산인 중조산이 없다. 그들이 수양산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곳은 산(山)이 아니라 ‘작은 언덕(小阜)’임을 필자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하북성에 있다는 수양산을 현지 답사하여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북성에 전국시대의 북연(北燕)이 있었다는 주장은 1차사료나 문헌자료상 전혀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한서/지리지>에 “요서군은 진(秦)나라 때 설치한 것으로 유주에 속하며 영지에 고죽성이 있다”고 하였으며, “지금의 노룡현에는 옛 고죽성이 있고 백이숙제의 나라였다. 전국시 연(燕)에 속했다”라고 <통전>이 말해주고 있고, <이아/석지편>에서도 “연을 유주라 한다”고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산서성 남부와 경계를 이루는 하내를 모두 하북이라 하였음으로 전국시(403-221BC) 북연은 고죽국이 있던 황하와 인접한 산서성과 하내지역에 위치했던 나라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연이 동서로 길게 뻗친 하북(河北)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그 강역은 동서가 길고 남북은 폭이 매우 좁은 약소국이었던 것이다. <그림 6> 참조.
청나라 때 만들어졌다는 <대청광여도>에서 황하가 ‘ㄴ’자로 꺾이는 곳에 위치한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인 당시의 포주(蒲州: 수양산 바로 위쪽), 고사리를 캐먹었다는 수양산(뇌수산, 오늘날의 중조산), 백이숙제의 묘가 있는 산서성, 섬서성에 있는 화산(華山) 그리고 하남성 등을 <그림 9>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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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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