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
“1차 사료와 고전연구 주장에 대해서 식민지적 발상이라는 생각이다. 역사는 왜곡된 상태에서 남아있어 그 사료와 기록들에는 왜곡된 문장들이 있게된다...환웅시대도 샤먼 환웅 선우환웅 번왕(무장)환웅이 있었고, 단군때도 무당단군 기자단군 번왕(무장) 단군이 있었는데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모두 환웅 단군으로 기록되어 한반도는 중원 변방이 되도록 기록되어있다. 이는 패권자의 기록이 역사이기에 남은 현상 아닌가 싶다. 이런 기록들로는 미래를 알수도 없어 역사가 거울이 되지 못한다. 반도엔 빙하기가 없었는데 빙하기를 앞에 두고 기술된 기록들이 옳은걸까? 상고사들 모두 한반도에 삼한의 존재를 넣고 있는데 실체는 없는 삼한으로 무덤터 삼한입니다. 왜 무덤터 삼한이 되었는지 고증되는가? 본인을 알리는 사진에 새모양 돌을 사용하고 오행이 적도변화임을 알리는 사진을 사용한다. 원주옆 영월 주천에서 발견된 돌인데 설명 가능할까? 다산은 역사학자는 아니다. 그의 글은 후대인 지금 반박을 당하고 있다. 역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다고해서 역사를 모르는것은 아니다. 반박을 당할지라도 자신이 아는것을 주장할수 있는건 아닌지? 사료와 문헌에 빠진것도 있으니까.”
댓글에 대한 논평이다.
가), 우선 식민지(植民地)란 타국의 정치적, 경제적 활동의 속국관계로 통치를 받는 지역을 뜻한다. 단군조선, 삼한,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대진(大震: 발해), 고려 어느 나라도 식민지에서 타국(요, 순, 하, 주, 한, 수, 당, 송, 요, 금, 원, 명, 청)의 통치를 받은 적이 없다. 단군조선의 강역에 삼한이 있었고 삼한 땅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형성되었다.
나), 백제와 고구려가 망하자 그 땅은 대진과 신라가 차지했고 대진이 망한 자리와 신라의 고토(古土)는 고려가 관할하였다. 사대주의(事大主義)의 극치를 이룬 수치스런 이씨조선(李氏朝鮮)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한반도로 쫒겨오면서 광활한 대륙 영토를 명나라 주원장과 그의 아들 주체에게 바쳤다. 이성계와 이방원은 활(弓) 한 번 당겨보지도 않고 조상들의 강역을 명나라에 스스로 바쳤다. 이 같은 영토헌납은 세종 때까지 지속되었으니 자국의 영토하나 지키지도 못한 왕을 대왕(大王)이라 추앙하는 사람들의 역사관이 한심스럽다.
다), 전쟁으로 이민족에게 영토를 빼앗긴 것이 어찌 식민지적 발상이 될 수 있는가. 수나라가 고구려를 4차례나 침략하였으나 모두 패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도 뚜렷이 기록되어 있다. 수나라가 고구려의 식민지였는가를 이민복에게 묻는다. 패전(敗戰)과 식민지의 차이점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식민지적 발상”이라 하는 망언(妄言)은 역사를 모르는 지극히 무식함에서 비롯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라), 고전(古典)이란 옛날의 의식이나 법식을 포함하여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어온 저술이나 작품을 말하는 것으로 고전은 연구할 필요성도 가치도 없으며 필요한 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고전연구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필자에게 “고전연구 주장에 대해서”라는 말은 옳지 않다.
마),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역사학(歷史學)은 문헌기록에 의해 전거(典據)를 제시하고 고증(考證)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내용은 역사가 될 수 없다.
바), “역사는 왜곡된 상태에서 남아있어..”라고 하는데 모든 역사가 다 왜곡(歪曲)된 것은 아니다. 왜곡된 역사 내용을 비판하는 것을 ‘사료비판(史料批判)’이라 하며 역사학자의 특수한 소임(所任)이다. 사료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독서량(讀書量)에 의해 결정되는바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사람은 비록 역사학을 전공하여 인류대학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사료비판을 하지 못한다.
사), 정약용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역사학자가 아니라면 알지 못한 동이배달한민족사를 아는 것처럼 헛소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정약용이 주제넘게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며 정약용의 역사인식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필자밖에 없다.
아), 환인 시기는 대략 BC8936, 환웅 시기는 약 BC3898년으로 추산한다. 그 당시에는 기록이 없었다. 동양 최초의 사서(史書)라고 하는 <사기>를 지은 사마천도 황제헌원 시기인 BC2697년부터 서한(西漢) 무제 시기인 BC101년까지 약 3,000년의 역사를 기록하였으나 연대를 기록한 것은 BC841년 이후부터이다. BC842년까지는 동양사의 연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 하물며 “환웅시대도 샤먼 환웅 선우환웅 번왕(무장)환웅이 있었고, 단군때도 무당단군 기자단군 번왕(무장) 단군이 있었는데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모두 환웅 단군으로 기록되어 한반도는 중원 변방이 되도록 기록되어 있지요.”라고 하는 대목은 1차사료나 문헌자료로 고증할 수 없는 허구의 소설이자 망발(妄發)이다. <25사>와 <사고전서>에 수록된 문헌사료들 어디에도 “한반도는 중원 변방이 되도록 기록되어 있다”는 내용은 없다.
차), 허구의 소설에 대해서 알아보자. 장자(莊子)는 소설(小說)을 “자질구레한 이야기”라고 정의한 바 있고 <한서>를 지은 반고(班固)는 “소설이란 꼴과 땔감을 베는 사람들이나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의 의론(議論)이다”라고 했다. 필자 역시 장자와 반고의 견해를 수용한다. 소설을 다른 말로는 소언(小言), 소기(小記), 소사(小事), 소도(小道), 쇄언(瑣言), 패관(稗官) 등으로도 칭한다. 모두 자질구레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자질구레한 소설인 허구(虛構)와 역사인 사실(事實)을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카), <25사>가 4,022권, <사고전서>에 79,337권, <삼국사기>가 50권, <고려사>가 139권, 이씨조선<왕조실록>이 1,893권이다. 필자는 소설과 서정시집을 제외하고 이들 문헌사료들을 포함, 지금까지 약 157,000권 이상의 세상 책들을 읽어보았으나 자질구레한 소설의 범주에 들지 않은 책에서 “환웅시대도 샤먼 환웅 선우환웅 번왕(무장)환웅이 있었고, 단군때도 무당단군 기자단군 번왕(무장) 단군이 있었는데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모두 환웅 단군으로 기록되어 한반도는 중원 변방이 되도록 기록되어 있다”라는 내용을 읽어본 적이 없다.
타), 따라서 댓글의 주장은 역사적 진실이 아님이 분명하게 밝혀지는 대목이다. 비록 역사의 일부가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역사로부터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하여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왜곡된 부분은 버리고 사실만을 취하면 될 터이니 전혀 문제 될 사항이 아니다.
파), 한반도에는 단군조선, 진한, 마한, 변한, 부여,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대진, 고려 어떤 나라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반도에 삼한이 있었다고 주접떤 사람들이 바로 정약용을 포함한 실학자라는 위인들이다. 누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두 밝혀두었으니 필자의 논문이나 저서들을 차근차근 읽어보기 바란다.
하), “원주옆 영월 주천에서 발견된 돌”에 관한 건은 고고학(考古學)으로 역사학이 아니다. 인류학(人類學)의 연구 대상은 인간의 체질과 문화이며 고고학은 인류학의 한 구성 분야로 고고학이란 “과거 인류의 물질적 유물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학은 기록을 통한 문헌사료로 하는 학문으로 깨진 기와장이나 옹기조각, 청동검, 방울, 거울, 그리고 돌맹이 등을 발굴하는 고고학과는 전혀 다른 분야이다. 그러나 발굴된 유물들과 문헌사료가 기록한 지역이 서로 일치할 경우 고고학은 역사학의 보조학문이 되는 것이다.
갸), 또한 필자는 “역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직 문헌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역사인양 헛소리하는 부류들을 비판하고 질책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제도권 전·현직 강단사학자들도 예외는 될 수 없다.
냐), 비록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때는 반드시 타당한 이유를 이성적(理性的), 논리적(論理的), 합리적(合理的) 그리고 설득력(說得力) 있게 제시하면 된다.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나 허구의 소설을 역사인 것처럼 헛소리하지 말라. 역사학자의 준엄한 경고이다.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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