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회남자가 국토의 중앙을 기주라 했는데 기주가 천하의 중앙인가요? 한나라의 중앙인가요?
논평: 인간은 강(江)과 산(山)에 의지하여 한 평생을 살아가는 법이다. 중앙이란 땅의 가운데란 의미로 이곳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문명(文明)이 풍부한 지역이란 뜻이다.
황하의 이름은 모두 11가지로 황하(黃河) = 하수(河水) = 대하(大河) = 간하(簡河) = 사하(沙河) = 총하(蔥河) = 해(海: 바다) = 하(河) = 구하(九河) = 덕수(德水) = 마협하(馬頰河) 등으로 칭한다.
황하의 물이 9번 꺾이기 때문에 구하(九河)라 하는데 산서성, 섬서성, 하남성이 서로 교차하는 이곳에서 황하가 가장 크게 굴곡한다.
태호복희씨의 도읍지가 이곳이고 복희가 하도낙서를 구한 곳이 바로 여기이며 소호금천씨의 산이 화산(華山)이고 염제신농씨의 도읍지가 이곳이며 염제와 황제헌원이 3차례 싸운 곳이고 치우와 헌원이 10년 동안 73회 전쟁을 한 곳이 바로 여기이다.
한웅(桓雄)의 웅산(雄山)이 이곳이며 신시(神市)라고 알려진 지역이 이곳이고 왕검단군조선의 불함산인 옹옥산이 여기이니 어찌 중앙(中央)이란 표현 이외에 어떤 단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곳에서 살고 싶었으면 ‘바라고 희망하고 원하여’ 기(冀)자를 넣어 기주(冀州)라 했겠는가.
천자국이라 일컫는 동이배달한민족의 모든 나라들은 이곳 산서성에서 시작되었음을 저자의 학술논문과 저서에서 여러 차례 지겹도록 언급하였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고로 하북성에 갈석산, 난하, 수양산, 고죽국 그리고 단군조선이 있었다느니 요녕성에 고구려의 도읍지가 었었다느니 길림성에 신라의 계림이 있었다느니 등등은 1차사료와 문헌자료에 근거없는 헛소리임을 알라.
자세한 내용은 www.coreanhistory.com에서
댓글 논평2
댓글:
비정 추정 추측 개인 생각으로 점철된 역사. 이 역사에서 가야가 반도 남부에 있었다고 비정하신 첫번째 분은 누구일까요? 조선말 실학자 일까요? 일제 때 일인 사학자일까요? 그분의 논문을 보고 싶네요.
논평:
신라 제23대 법흥제(法興帝) 19년(532)에 금관국(가야) 임금 김구해가 왕비와 아들 셋을 데리고 신라에 귀부(歸附)하여 가야땅은 신라의 영토가 되었으며 임나(任那)란 가야(伽倻)를 의미하니 신라와 왜(倭 : 일본)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이다. 따라서 대륙에 있던 신라를 최초로 한반도에 끌어들인 실학자들 중 정약용(丁若鏞)이라는 자가 있으니 비록 허구이긴 하나 한반도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일본의 주장에 단초(端礎)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정약용이다.
임나일본부설을 포함하여 한·일관계에 관한 학위논문은 석사학위논문 13편과 박사학위논문 2편 모두 15편이 있지만 주장과 독창성이 없어 읽을 가치조차도 없다.
가야는 절강성(浙江省)에 있었다. 저자의 학술논문 『신라의 강역 연구』(제18집), 2023을 참고하기 바란다.
임나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은 『사근경 II: 역사는 모든 학문의 뿌리』가 출간되거든 참고하기 바란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김태영의 한민족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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