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白善燁: 11/23/1920∼7/10/2020)은 친일파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하여 당시 명문인 평양사범을 1939년 3월에 졸업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만주국이 세운 봉천군관학교(만주군관학교의 전신)를 1940년 3월에 입학하여 1942년 12월에 졸업하고 1943년 만주국군 소위가 되었다.
1943년 12월 열하성에서 간도특설대 기관총박격포 중대 소속으로 팔로군(1937~1945년에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로 모택동이 항일투쟁을 위해 장개석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군)을 공격하는 작전에 참가했다. 이 사건만으로도 백선엽은 일본제국주의 친일행위자 이다.
1938년 9월에 설립된 간도특설대는 일본군을 지원하기 위한 조선인 특수부대이다. 간도특설대는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동북항일연군(독립군)과 팔로군을 토벌하기 위해 108차례 전투를 벌였다. 간도특설대에게 살해당한 항일독립군과 민간인은 172명이 이르고 그 외 많은 사람들이 체포, 강간, 약탈, 그리고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일본이 패망하자 백선엽은 귀향하여 평안남도 도인민회 치안대장을 지냈다. 1945년 12월에 간도특설대 출신인 김백일, 최남근 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이승만의 단독정부인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좌익을 제거하는데 앞장섰다.
1948년 11월 여순사건(일명 여순반란사건)을 주도한 박정희 소령이 남로당 활동 혐의로 체포되자 박정희 구명에 앞장선 일등공신이다.
당시 남로당 총책은 이재복인데 이재복의 명단에 박정희가 좌익세포 명단에 있었으며 육사 2기 동기인 임안일에게 남로당 세포명단을 주어 원용덕의 부탁으로 백선엽이를 통해 김창룡 대위를 설득하여 박정희를 구해 주게 된다. 결국 백선엽을 통해 이승만이가 박정희를 살려준 것이다.
이승만, 백선엽, 박정희는 모두 반민족 행위를 한 자들로 역사는 그들의 반민족행위를 거짓없이 분명하게 기록한다. 역사는 정치의 권모술수나 타협이 아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한 때의 친일을 뉘우치고 반성하면 죽은 후에라도 친일을 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친일을 안친일이라고 우기기 때문에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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