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통일네트워크 구축하자
‘약방의 감초(甘草)’란 말이 있다. 어떤일에나 빠짐없이 꼭 끼어드는 오지랖 넓은 사람을 이른다. 사실 약방의 감초는 좋은 뜻이다. 한약을 지을 때 없어선 안될 약초이기 때문이다. 감초는 소화기나 호흡기, 순환계 질병에 효과가 있고, 해독작용도 탁월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기능은 다른 약과 조화를 이루며 다른 약의 작용을 순하게 한다는 점이다.
나는 재외동포의 존재를 감초에 비유하고자 한다. 모든 약재를 조화롭게 하여 효능을 더욱 뛰어나게 하는 감초처럼 재외동포는 대한민국, 나아가 ‘통일 COREA’에 없어선 안될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영토는 더 이상 지리적 개념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지구촌의 한민족은 확장된 디아스포라로 ‘코리아’의 영역을 정치 경제 문화 사회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2019년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보면 재외동포들은 750만명에 이른다. 재외동포들을 하나의 나라로 묶을 경우 전 세계 242개 국가중 약 100위의 위상을 자랑한다. 중요한 점은 재외동포들이 G2라는 미국과 중국에 각각 250만명이 사는 것을 비롯, 일본에 80만 유럽 70만 러시아CIS에 55만 등 세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요 국가에 93%가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주국의 시민권을 갖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동포들도 590만명으로 79%에 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250만 재미동포들은 미국이 지난 100년간 최강대국의 지위속에 분단과 전쟁 등 질곡의 현대사와 한민족의 미래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히 중요하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미국 시민들인 한인들이 결집 여부에 따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에게 미국은 지난 세기 야누스의 두 얼굴과도 같았다. 조선의 국권이 풍전등화에 몰렸을 때 태프트-카쓰라 밀약으로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렸고 해방후엔 한머리땅(한반도)을 두 동강 낸 민족 분단의 장본인(張本人)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미국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는 늘 우리 편이었다. 경술국치(庚戌國恥 1910년) 전후로 뜻있는 지식인 유학생들이 미국에 건너와 십시일반 독립자금을 모금하고 미 주류사회에 조선의 문제를 알리는 등 해외 독립운동의 배후기지로 많은 활동을 했다.
3.1만세운동의 불씨가 뉴욕 등 미주한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1917년과 1918년 뉴욕에서 열린 소약속국동맹회에 박용만 등 재미한인 대표자가 참석해 당당하게 조선 독립을 천명했고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의 바람을 타고 1919년 2.8독립선언과 3.1운동의 결정적 단초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1921년 3월 2일엔 뉴욕 맨하탄 43가 타운홀에서 역사적인 기념 집회가 거행됐다. 2년전 코리아 땅 전역에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친 3.1독립운동 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당시 뉴욕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30여명으로 추산됐고 필라델피아 등 인근에 있는 한인들이 모두 합쳐도 100명 남짓이었다. 그런데 이날 행사엔 무려 1300여명이 참석한 것이다. 대회장을 맡은 서재필 박사가 발간한 영문 월간지 ‘코리아리뷰’ 1921년 3월호에 따르면 기념식엔 뉴욕의 정치인을 비롯, 교육과 종교, 사업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이들이 참석하는 등 코리아의 독립에 비상한 관심과 지원을 기울였다.
이날 행사에서 윌리엄 메이슨 일리노이주 연방하원의원은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즉각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인디애나주지사와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한 뉴튼 길버트 등 유력 인사들도 지지 연설을 이어나갔다. 또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파커 러셀이 한국인을 위로하는 연주로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군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 출신의 소수 인사들과 유학생들이 많은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고 주류사회에 대한 접근방식은 치열했다. 뉴욕 맨하탄과 롱아일랜드 일대에 미주한인들이 독립운동과 외교활동을 전개한 사적지(史蹟地)가 10여개나 존재하는 것도 이를 잘 말해준다.
재외동포 조국 통일에 더욱 긴요
98년 IMF 위기때 모국 국민들도 금모으기 운동을 했지만 해외동포들의 정성은 눈물겨웠다. 재미동포들은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했다는 소식에 한푼의 달러라도 모국에 보내기위해 은행에 줄지어서 송금을 했다. 세계 각지의 동포들도 한 마음이었다. 재일동포들은 무려 15억 달러를 한국에 보냈고, 한국 국채 300억엔어치를 사들이며 모국 송금 운동을 전개했다.
2012년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그 해 미국내 한인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56억6800만 달러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송금한 돈 6400만 달러의 무려 88.6배를 기록했다. 비공식적인 송금 루트까지 따지면 80억달러를 상회한 것으로 분석됐다.
2000년대 들어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강화가 낳은 대표적 결실은 2007년 미연방하원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다. 이를 깃점으로 대미로비에서 일방적 우위를 보이던 일본의 힘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일본의 역사왜곡(歷史歪曲)에 중대한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미의회 결의안이 통과된 후, EU와 유럽 여러 나라들, 호주 등지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되는 등 위안부문제는 전쟁중 대표적인 여성인권 침해로서 세계 역사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재미한인들은 버지니아의회에서 공립학교교과서에 독도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현재는 미연방의회에 한국전쟁종전결의안이 통과되도록 맹렬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60년대 이후 이민자들 대부분이 이남 출신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재외동포 정책의 문제는 온전히 남측 정부의 몫이다. 재외동포 정책은 근시안적이며 남측 국민들 또한 재외동포에 대한 몰이해(沒理解)에 빠져 있다.
재외동포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사기와 횡령, 부도 등을 일으키고 해외로 도피하는 사례들이 작용했지만 일부 중산층과 상류층의 원정출산과 병역기피 등의 사회적 논란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비자문제로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낸 가수 유승준(스티브 유)의 해묵은 케이스도 재외동포들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들은 일부 부도덕한 기득권층에 해당되는 것이지, 바쁜 이민생활속에 성실하게 살아가는 절대 다수의 재외동포들과는 무관하다. 동포가정은 애당초 원정출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다. 또한 유승준은 한국서 가수 생활하면서 군입대를 공언했다가 몰래 시민권을 취득해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을 뿐 일반화의 사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재외동포들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는 되풀이되고 있다. 외국에서 입국하는 동포들이 코로나보균자인양 꺼려 하고 모국을 피신처로 삼으며 공짜 치료나 받으러 오는 것처럼 취급하는 분위기가 횡행하고 있다. 모국이 아무리 청정지대라고 한들 어느 재외동포가 코로나19가 두려워서 생업도 포기하고 온다는 말인가.
재외동포들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경원시(敬遠視) 하는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한국정부와 국회, 언론의 책임이 크다. 동포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모국을 버리고 나간 양 취급했다. 극소수 사례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여론을 왜곡 선동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소위 ‘홍준표 법’은 기회주의적인 원정출산자의 제약 대신 아무런 죄도 없는 동포 2세 3세 젊은이의 장래를 망치는 ‘주홍글씨’가 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빈대 잡자고 멀쩡한 초가 삼간을 무던히도 태웠다는 것을 모국 국민들은 알고 있을까.
평화 통일을 위한 소중한 자산
재외동포들은 역사적으로 강인한 인내와 끈기로 차별을 극복했고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존재들이다. 거주국의 시민인 동시에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남과 북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편견(偏見)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특히나 그들은 한머리땅(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우리 민족의 크나큰 자산이다.
재외동포들은 좋든 싫든 각각의 일터에서 모국을 알리는 민간 홍보대사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재외동포를 아끼는 것은 곧 대한민국을 아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재외동포들을 활용하고 연대 협력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재외동포 기관의 권한과 지위를 높여야 한다. 재외동포를 전담하는 정부 부처를 신설하고 장관급을 수장(首長)으로 임명하자는 것이다. 재외동포기관의 힘이 세져야 한민족 네트워크 구축도 용이해진다. 현지 공관의 영사 업무를 대폭 확충하고 재외동포들을 명예영사로 임명해 동포사회와 좀더 밀착하고 주류사회의 가교 역할을 맡도록 지원해야 한다.
복수국적의 문호를 과감하게 넓혀야 한다. 병역과 무관한 여성과 병역면제자, 병역을 필한 남성은 복수국적을 허용해 ‘코리안’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거주국의 시민권자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내 유태계는 600여만명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정치적 파워로 조국 이스라엘을 미국의 가장 중요한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한국처럼 복수국적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포연 가득한 중동 지역에서 존립을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우편투표와 인터넷투표 등 재외국민들의 참정권 확대방안도 적극 시행해야 한다. 총선과 대선에서 재외국민들의 투표율이 크게 낮은 것은 모국에 대한 관심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투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컴퓨터 지문인식 시스템을 통해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인터넷 투표를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복수 국적자의 증가는 한인사회의 파워는 물론, 대한민국의 정치외교력이 엄청나게 배가됨을 의미한다. 구태여 미 정가에 로비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알아서 친한파 정치인들이 불어날 것이다. 70년 넘도록 전시작전권조차 없는 부끄러운 나라에서 초강대국 미국을 움직이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길을 왜 스스로 마다하는가.
동시에 재외동포들을 연결하는 ‘한민족 통일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한민족네트워크의 목적이 재외 동포들이 민족적 유대감속에 모국과의 연결망을 통해 상호발전하는 것이었다면 한민족통일네트워크는 남북의 화해와 통일에 지향점을 두고 지구촌 한민족을 촘촘히 연결하여 국제교류 협력, 지원 등 실질적인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뉴욕은 남북유엔대표부가 상주하는 곳으로 이같은 네트워크 활동을 하기엔 대단히 적합한 도시다. 2018년 2월 6.15미국위는 상징적으로 남과 북을 잇는 행사를 하자는 취지로 유엔 남, 북 대표부에 ‘평화와 통일의 꽃바구니’를 증정(贈呈)하고 양 대표부를 잇는 평화행진을 가졌다. 당시 북측에선 자성남대사가 직접 나와 꽃바구니를 받았고 참가자들은 통일기(한반도기)를 들고 아리랑을 부르며 맨하탄 한복판을 행진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이후, 남·북대표부를 응원하며 연속 방문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참가동포들은 남과 북의 경계선(비무장지대)이 불과 4km 밖에 안되는데도 70년 넘게 오가지 못한 것처럼 걸어서 3분 거리에 불과한 남·북 대표부 사이에서도 그런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며 화합과 협력을 다짐했다.
남북은 공히 전쟁의 잿더미에서 오늘날 경제강국, 군사강국의 면모를 갖추었다. ‘한강의 기적’, ‘대동강의 기적’이다. ‘통일 COREA’를 이루거나, 최소한 한민족경제공동체를 이룰 경우 G3의 위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다.
뉴욕은 유엔본부가 있는 ‘세계의 수도’일뿐더러 전 세계 220여 민족이 모여 사는 작은 지구촌이다. 뉴욕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남북이 흉허물 없이 가슴을 열고 교류 협력하는 한민족통일네트워크를 운영함으로써 평화통일의 기반을 적극 조성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지난 8일 풀뿌리통일단체 AOK(Action One Korea)가 서울문화공간온에서 주최한 통일공감세미나2에서 제가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창현의 뉴욕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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