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월은 아시안문화유산의 달(Asian American Heritage Month)입니다. 연전에 뉴스로 칼럼니스트 서영민 교수가 아시안문화유산의 달이 된 연유를 짚어준 적이 있다시피 5월은 중국과 일본 이민자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1869년 5월 10일은 미국의 동서부를 관통하는 대륙횡단철도가 개통된 날입니다. 이 철도건설에 대거 투입된 것이 바로 중국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말이 쉽지 수천마일에 걸친 대륙횡단철도를 완공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유럽인 노동자들이 꺼리는 대역사에 참여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노고를 기리기 위하여 미국 정부가 이날을 중국인 기념일로 제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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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하나의 역사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이 있습니다. 우리 한인들의 이민역사도 1907년 사탕수수농장으로 시작됐지만 이보다 앞선 것은 1890년 5월 7일 하와이에 도착한 일본인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은 신천지에 먼저 정착한 백인 이민자들로부터 온갖 侮辱(모욕)과 迫害(박해)를 받으며 반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유독 하와이에 일본인 3세, 4세들이 많이 사는 것도 이같은 배경때문입니다. 그래서 5월 7일은 일본인기념일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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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는 중산층 이상의 미국인들이 주로 거주합니다. 이곳에서 아시안의 비중은 예나 지금이나 미미합니다. 8년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놀란 것은 주민 대부분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무지했다는 사실입니다. 한인타운이 있는 뉴욕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이곳의 주류 백인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우호적이었습니다. 그 이유중 상당부분은 이곳에 많이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좋은 인상을 심어준 덕분이었습니다. 일본인과 외모상 구별할 수 없는 한국인이었으니까요.
후발이민자인 미주한인이 겉으로나마 동등한 대접속에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 있는 것은 150여년전 온갖 차별과 박해를 당하며 이민의 초석을 다진 중국인과 일본인 이민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5월이 아시안문화유산의 달이 된 것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닌게지요.
최근 스포츠전문케이블 ESPN이 깜짝스타로 떠오른 중국계 NBA선수 제레미 린을 두고 아시안 비하 표현을 하여 파문이 벌어졌습니다. 뉴올리언스 호네츠전에서 제레미 린이 9개의 실책을 범하며 연승행진이 좌절된 것을 빗대 새벽시간 모바일 뉴스로 ‘Chink in the Armor(철갑속의 빈틈-중국인)’을 올린 것입니다.
칭크(Chink)는 중국인을 모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한국인과 일본인 등 외모가 비슷한 동북아시안을 嘲弄(조롱)하는 단어로 쓰여지기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니그로(Negro)는 결코 써서는 안되는 금기어입니다. 사석에서 백인 혹은 아시안끼리 무심코 썼다가 아차하고 주위를 둘러봐야할만큼 터부시되는 단어입니다. 형편없는 욕설을 ‘F자 단어(F-Word)’로 이르듯 ‘N자 단어(N-Word)’로 지칭하며 직접적인 언급을 삼갈 정도입니다.
그것은 이 단어가 과거 흑인노예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담고 있기때문입니다. ‘칭크’ 역시 150년전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참여할 당시 인권을 탄압하고 박해하던 역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중국계연방하원의원인 민주당의 쥬디 추 의원이 “C자(Chink) 단어는 N자(Negro) 단어만큼 끔찍하고 공격적이며 인종을 비방(誹謗)하는 의미”라고 규정한 것도 그때문입니다.
이 표현이 문제가 되자 ESPN은 사과 성명을 내고 제목을 올린 편집자를 해고 조치했습니다. 이에 앞서 TV중계에서 같은 표현을 한 앵커에게는 한달간 정직 처분을 내렸습니다.
해고된 모바일 뉴스 편집자 앤소니 페데리코는 20일 데일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린을 모독할 의사가 없었다. 그냥 재미있는 표현을 하려 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더군요.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다음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제레미 린에게 실례가 되었다면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동안 ‘칭크 인더 아모’라는 표현을 최소한 100번은 사용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습니다. ESPN같은 유수의 방송이 그처럼 형편없는 단어를 쓸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요. 알고보니 ESPN은 평소 이런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지만 크게 문제삼는 이들이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을 모독하는 표현이 버젓이 공중파방송으로 나오는데도 강건너 불마냥 무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아시안커뮤니티였습니다. 당사자가 조용한데 거리낄게 뭐가 있겠습니까. 찧고 까불고 맘대로 갖고 노는 것이죠.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만약 ESPN이 ‘니그로’ 어쩌구하는 표현을 썼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흑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정도를 넘어 아마 방송국이 쑥대밭이 되고 아예 망했을지도 모릅니다.
ESPN이 ‘칭크’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했음에도 찜찜함은 여전합니다. 그들은 아시안커뮤니티가 두려운게 아니라 필경 제레미 린이라는 NBA의 아이콘을 잘못 건드렸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모두가 칭송하는 하버드 출신 아시안 농구스타를 비하하는 것은 ESPN에도 돈이 되는 최고의 스포츠상품에 흠집을 가하는 뻘짓이었거든요.
많은 미국인들은 아시안을 ‘沈黙(침묵)의 커뮤니티’라고 말합니다. 도무지 자신의 의견이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묵묵히 따르기만 하기때문입니다. 그것은 소수계속의 소수계라는 한계와 언어문제, 문화의 차이에서도 비롯됩니다. 그러나 권리가 묵살되고 공공연한 차별행위에도 침묵을 지킨다면 ‘영원한 동네북’이 될뿐입니다.
지난 2월 5일 미프로풋볼 결승전 ‘슈퍼볼’에서 아시안을 비하하는 TV 정치광고가 미시건주 전체에 방영됐을 때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 지역의 흑인목사들이었습니다. 지역언론을 통해 이를 접한 아시안MBA협회(NAAMBA)의 안진오 대표는 문제의 광고를 만든 공화당의 혹스트라 의원을 강력 비난하고 항의 서한을 통해 아시안 커뮤니티에 대한 사과와 광고 방영을 즉각 중단할 것을 공식 요구했습니다.
안진오 대표는 “아시안에 대한 차별행위를 흑인커뮤니티가 먼저 들고 일어난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제는 아시안이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 소식은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를 통하여 많은 곳에 전파됐지만 유감스럽게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아시안언론도 조용했고 무엇보다 아시안커뮤니티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없었기때문입니다.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와 나한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못본척 외면하는 수수방관이 아시안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불이익이 주어지는 근본 원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레미 린이 “(칭크 표현이) 고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SPN에서 사과를 했으니 문제삼고 싶지않다”고 말한 것은 유감입니다. 고의가 아니라면 그 편집자는 자기도 모르게 실언을 100번이상 했다는 뜻인가요. ESPN의 수뇌부의 귀는 단지 장식용이었을까요.
제레미 린은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시안커뮤니티를 위해서 최소한 강력한 聲討(성토)를 했어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아시안커뮤니티의 롤 모델을 자임하지 않았나요. 그런 모멸을 당하고도 문제삼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시안은 관대한 사람들이라고 감동받는 대신 역시 아시안은 밟으면 꿈틀하는 지렁이에 불과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얼마전 뉴욕의 피자체인 파파존스에서 한 종업원이 한인고객의 주문을 받으며 ‘찢어진 눈의 여성(lady chinky eyes)’ 이라고 써서 파문이 있었습니다. 또 최근 애틀랜타에서는 스타벅스 종업원이 한인고객이 주문한 커피잔에 ‘찢어진 눈’을 그려서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인(아시안)을 비하하는게 아니라 고객을 구별하기 위한 慣行(관행)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곱슬머리 흑인여성의 주문서에 ‘니거헤어 레이디’라고 쓰고 머리 벗겨진 백인남성의 커피잔에 ‘분홍피부의 대머리’를 그려야할 것입니다.
이들이 망발과 망언을 하고도 뻔뻔하게 변명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문제가 있어도 뒷짐지거나 일회성으로 부르르 떨고나면 그뿐, 언제 그랬냐는듯 ‘조용한 커뮤니티’로 돌아가기때문입니다.
150년전 중국인과 일본인 이민자들의 인권박탈과 희생이 있었음에도 오늘날 이민자이슈에 대해 너무도 소극적인 중국커뮤니티와 일본커뮤니티를 보면 답답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한인사회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이민자이슈의 리더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뉴욕이민자연행 사무총장은 한국인 홍정화이고 뉴욕의 민권센터(구 청년학교)는 전국의 이민자단체중 가장 활력 넘치는 시민기구로 명성이 높습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류백인들을 위한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Glass Ceiling)’으로 둘러싸인 미국에서 권리는 주장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