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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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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빌 게이츠가 아니라 워렌 버핏이 되라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2-01-09 (월) 14:56:11

이제는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린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무를 말합니다. 사회지도층의 높은 도덕관념은 사회계층간의 대립을 해소(解消)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 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습니다.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습니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지도층 인사의 병역면제 비율에서 보듯 한국사회는 '지위에 반비례하는 도덕적 책무'라고 조롱할만큼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거꾸로 가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진정한 오블리스 노블리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유한양행 설립자 고 유일한(柳一韓) 박사입니다.

1971년 유일한 박사가 별세한 후 공개된 유언장으로 한국사회는 크나큰 감동을 받습니다. “아들은 대학까지 공부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가고 딸은 유한중고등학교 주변 땅을 줄테니 그곳은 울타리를 절대 치지말고 잘 가꾸어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쉴 수 있는 동산을 만들어라. 그밖에 모든 재산은 복지사업과 교육사업 등 사회를 위해 쓰기 바란다.”

 

▲ 유일한 박사의 초기 창업지가 있던 경인국도 구간에 명명된 유일한 로(路) www.ko.wikipedia.org 

젊어서는 독립운동가로, 해방후에는 기업인이자 교육자로, 사후에는 전 재산을 사회에 헌납함으로써 기부라는 단어조차 생소(生疎)한 당시 한국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유일한 박사. 당신의 따님 또한 91년 타계하면서 전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였으니 감히 존경이라는 단어조차 올리기 어려울만큼 머리가 수그러집니다.

근자에 들어 저는 또하나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만납니다. 바로 안철수 서울대융합과학기술원장입니다. 아다시피 그이는 지난해 11월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50%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지분의 현재가는 약 1500억원에 상당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한국의 재벌보다야 적은 액수지만 재산의 50%를 내놓았으니 그는 버핏과 게이츠와 동급인 ‘슈퍼 리치’의 반열(班列)에 오를만 합니다.

 

더욱이 그이는 비리에 연루돼 마지못해 재산을 일부 기부하는 여느 재벌들과 달리 평소 꾸준히 사회공헌을 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의사출신인 그는 앞날이 보장된 의사의 길 대신 컴퓨터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무료로 공급한 주인공입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안철수의 바이러스 백신의 혜택을 입지 않은 이가 없을 것입니다.

안철수 원장은 사회의 부조리에 좌절하고 가치관의 혼돈(混沌)을 겪는 젊은이들에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를 주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청춘콘서트’라는 무료강연회를 열었고 그것은 20대와 30대의 열광을 넘어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혹자는 그것을 치밀한 정치행보라고 해석하지만 안 원장의 살아온 궤적(軌跡)을 살펴보면 뭐 눈에 뭐만 보이는 식의 유치한 트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안철수 원장에 대한 많은 이들의 찬사는 지금까지 그이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삶의 진정성에서 비롯되기때문입니다.

비정치인이면서 어떤 정치인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안철수 원장은 어느날 갑자기 백마타고 나타난 초인이 아닙니다. 단지 정치를 안했기에 물망(物望)에 오르지 않았을뿐 우리 사회 저변에 신뢰의 씨앗을 심은 그이를 보고 사람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난해 8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설이 돌자마자 그는 대번에 지지율 1위의 후보아닌 후보가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가 시장에 나오기를 바랬음에도 그는 충격적인 결단을 내렸지요. 사회사업운동을 하는 박원순 변호사 지지를 선언하며 양보한 것 말입니다.

지지율 50%가 넘는 사람이 지지율 5%도 안되는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보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돈이나 재산이 아닌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특기를 무료로 제공하는 재능기부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저는 안철수 원장의 양보를 ‘지지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지지선언만으로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야권통합후보가 되었고 집권여당의 후보마저 거꾸러뜨렸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대한민국 소통령’이라는 서울시장에 당선될 수 있는데 그런 양보가 과연 쉬울까요? 단지 이것을 정치적 노림수라고 치부할 수 있나요? 정말 대권을 꿈꿨다면 서울시장부터 맡아 경륜을 쌓고 지명도를 더욱 높이는 것이 유리한 선택이었겠지요.

그러나 안철수 원장은 굴러들어온 서울시장 자리를 깨끗이 단념했습니다. 사람들은 통큰 결단과 마음비움에 또한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역설적으로 그는 서울시장을 포기하면서 일약 유력 대권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정치적 계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안철수 뒤에 엄청난 멘토가 있지 않냐고 실눈을 뜹니다.

단언컨대 비결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니 홀연히 진리를 깨우치듯 마음을 비우니 신뢰가 쌓이는 것입니다. 대권을 꿈꾸는 다른 주자들이 죽었다 깨나도 안철수 원장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가 재산의 절반을 헌납한다고 밝히자 또다시 계산가들은 대권도전의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고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뱁새가 황새의 뜻을 어찌 알리요. 대권도전의 방편(方便)이라면 누구처럼 약점 잡힌후 국면전환용으로 대선직전에 터뜨리면 되는게 아닐까요? 지금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안 원장이 뭐가 답답해 수천억원의 재산을 헌납한다고 발표하냐 말입니다. 헐뜯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어거지도 정도껏 해야지요.

재산 헌납의 진정성은 안철수 원장이 한달여만에 빌 게이츠 회장을 만나 자선재단에 관한 조언을 들으러 가는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한국의 대인(大人)과 미국의 거인(巨人)은 필경 가슴으로 통하는 사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안 원장에게 한가지 제언(提言)을 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재단을 설립하기 보다는 투명한 운영으로 믿음을 주는 기존의 자선재단에 기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워렌 버핏이 빌 게이츠 재단의 규모보다 더 큰 액수를 과감하게 헌납했듯이 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게이츠 재단과 같은 이상과 노하우를 지닌 자선재단을 출범시키기 위함이라면 안철수 원장이 모든 공직활동을 접고 재단 대표로 헌신하든가, 아니면 존경받는 인사들을 영입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따지 않는 재단이 되도록 할 것을 권합니다. 게이츠는 훗날 재단운영에 전념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을 사임, 버핏의 믿음에 부응(副應)했습니다.

안 원장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 지금까지의 삶처럼 올곧게 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왕이면 안철수 원장이 빌 게이츠보다는 워렌 버핏이 되면 좋겠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한국의 정치판을 뒤흔드는 쇄신의 범종(梵鐘)이 되면 좋겠습니다. 배신과 야합, 부조리의 썩은 내가 진동하는 한국 사회를 향기롭게 정화하는 맑은 다향(茶香)으로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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