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물경(勿驚) 40조원입니다. 이런 천문학적인 액수를 기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재단에 말입니다.
바로 워렌 버핏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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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이 8일 자선재단을 운영하는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만나기 위해 출국했습니다. 교수 채용과 기부재단 설립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한 목적이라고 합니다.
안철수와 빌 게이츠.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기업가요, 자선재단을 설립하는 사회사업가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을 보노라면 워렌 버핏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투자사업가요,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앞에 꼽히는 억만장자인 버핏은 차원이 다른 부자입니다. 놀라운 투자혜안과 기부활동으로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으로 불리는 버핏은 2006년 6월 25일 자신의 명성에 방점(傍點)을 찍는 선언을 했습니다. 재산 가운데 85%인 총 370억달러 상당의 주식을 5개 자선단체에 매년 기부키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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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재산 대부분을 기부한 곳은 ‘빌 & 멜린다 재단’입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부부가 세운 재단이지요. 제가 놀란 것은 기부액수보다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역시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의 재단규모가 291억 달러였고 버핏의 기부금은 300억달러에 달했습니다. 재단규모를 능가하는 금액을 선뜻 내놓는 마음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요.
버핏도 마음만 먹는다면 빌 게이츠 못지않은 재단을 세웠을 것입니다. 이미 그는 세상을 떠난 부인의 이름으로 세운 재단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재단이든 아내 이름의 재단이든 기부만 하다면 세상사람들은 아낌없는 칭송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제3자의 재단에 거의 전 재산을 헌납(獻納)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비교하기 싫지만 대선 직전에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자 알량한 자기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한나라당 후보가 있었습니다. 331억원을 기부하겠다는 그의 발표가 있자 도하 언론은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아부성 보도로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도 감감 무소식에 논란이 일자 뒤늦게 청계천인지 청곈지 자신의 호(號)를 딴 재단을 설립했지만 이사진에 큰 사위를 넣는 등 이사회를 전부 친인척이나 측근으로 구성해 실소케 했지요. 그닥 많지도 않은 재산을 기존 재단에 기부하지 않고 굳이 자신의 호를 딴 재단을 세워 자기 사람들을 심어놓은 것에 세상은 “왼쪽 주머니에 있는 돈을 오른쪽 주머니에 옮겼다”고 비아냥댔습니다.
워렌 버핏이 재산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것은 20년 우정을 통해 게이츠의 진정성을 확인했기때문입니다. 게이츠 재단은 대부분의 미국 부자들이 문화예술계에 후원하는 것과는 달리 아프리카 빈민을 돕고 에이즈 퇴치노력을 기울이는 등 글로벌 자선활동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게이츠는 재단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 MS 회장직도 내놓았지요.
자선재단의 롤 모델과도 같은 게이츠 재단에 헌납하는 것이 기부의 뜻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그는 조건없이 어마어마한 돈을 내놓기로 한 것입니다. 아, 조건이 있기는 했더군요. ‘빌 또는 부인 멜린다가 재단운영에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 ‘재단이 자선단체로서 자격을 유지할 것’ 등 3가지였습니다. 당연한 조건입니다.
한국의 부자들도 종종 재산을 기부합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6년 2월 사재 8000억원을 사회환원하겠다고 선언했고,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도 2006년 4월과 2011년 8월 두차례에 걸쳐 1조5천억원의 출연(出捐)을 발표했습니다. 칭찬받을 일임에도 찜찜함이 남는 것은 비리사건에 연루돼 검찰수사와 정치권의 압박을 받는 시점이었기때문입니다. 한국의 재벌들이 기부행태는 검찰 수사와 사회적 지탄을 면키 위해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입니다.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준다면 싫다고 할 한국의 부자들이 있을까요? 그런데 버핏과 게이츠는 부자들의 감세(減稅)를 반대하는 대단히 이상한(?) 부자입니다.
2010년에만 693만8744달러의 연방소득세를 납부한 버핏은 지난해 8월 뉴욕타임스에 ‘슈퍼부자 감싸기를 멈춰라’라는 기고문에서 연 수입 100만달러 이상의 부자들에게 증세를 해서 재정위기를 돌파하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버핏은 2010년 6월 빌 게이츠 부부와 함께 ‘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슈퍼부자(Super Rich)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는 서약을 하자는 운동입니다.
캠페인을 벌인지 불과 1년만에 70명에 달하는 슈퍼부자들이 총액 200조원이 넘는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속했습니다. 400명 정도 된다는 미국 억만장자의 15%가 넘는 비율입니다.
이중에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와 테드 터너 CNN 설립자, 래리 엘리슨 오라클 공동설립자, 폴 앨런 전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설립자, 조지 루커스 영화감독, 부동산·건설부호 엘리 브르도, 미디어그룹 경영자 게리 렌페스트, 세계최대의 네트워크 장비기업 시스코 시스템스 회장 존 모그리지 부부, 벤처 투자가인 존 두어 등이 있습니다.
앤드류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버핏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2006년 재산 기부를 발표했을 때”라고 했습니다. 사회를 통해 거둬들인 부를 자신만의 것으로 착각하여 세습을 당연시 하는 한국의 부끄러운 부자들에게 버핏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버지가 올림픽 출전선수라고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가족승계는 옳지 못하다. 자녀들에게는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꺾지 않을 정도의 돈만 지원하면 된다.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반사회적인 일이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너무 많이 남기면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