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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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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참으세요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12-26 (월) 08:51:43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했다. 침울한 표정으로 백지위에 자살이란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계속 자살이란 말을 이어쓰던 그는 어느 순간 눈에 생기가 돌고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힘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남긴 종이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

70년대 어느 주간지에 실렸던 독자투고 '낙서'(落書)의 기억이 뇌리를 스칩니다. 자살이라는 암울하고 비극적인 색채의 낱말을 단지 거꾸로 읽는 것만으로 이토록 강력하게 삶을 희구(希求)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요.

생과 사는 하나의 경계선에 놓여 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사건 사고를 접하면 삶과 죽음은 그야말로 한 순간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어차피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생명의 존재이고 둘은 시작과 끝이라는 극단에 서 있을뿐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자살'이 '살자'로 뒤바뀌는 극적인 반전(反轉)은 단지 희망의 유머로만 자리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자살하는 이들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생의 욕구가 강하다고 합니다. 살고자하는 욕구가 강하기에 역설적으로 그것이 꺾이는 순간 좌절의 강도와 포기의 속도도 빠르다는 겁니다.

60~70년대만 해도 한강 투신사고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사고가 계속되자 당국은 한강 다리앞에 이같은 표지판을 부착해서 자살자를 막으려고 애썼습니다. 1963년 3월 6일 서울신문에 실린 사진입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36명꼴로 자살한다고 하니 1시간에 1.5명꼴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이광자 이대 교수에 따르면 자살기도자는 통상 자살자의 10배에 이른다고 합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해 10만명도 넘는 것이지요. 특히 IMF이후에는 생활고, 사업실패, 카드빚 등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고 성적 비관으로 인한 10대의 자살도 적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살을 부르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가족의 해체, 황금만능주의, 생명경시 풍조, 상대적 박탈감, 건강치 못한 사회의 강파름이 사람들로부터 희망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는 이같은 사건을 놓고 추측성 작문과 선정주의적인 보도를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죽음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뿐 아니라 특히 충동성이 강한 10대들에게 자살에 대해 오도된 가치관을 심어주기 쉽습니다.

자살은 분명 잘못된 선택입니다. 많은 언론들이 자살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소홀히 하고 자살의 원인과 처방에 대해 심도있는 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신문들은 자살 방지 캠페인 같은 기사도 꽤 열심히 올렸습니다. 60년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전후의 곤궁함속에 사회는 혼란스럽고 보릿고개가 남아있는 시절,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열심히 살았고 언론도 그런 의지에 힘을 부어주려 애썼습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삶의 의지는 강건해지는건가요. 그당시 자살하는 사람들은 생활고(生活苦)보다는 다른 이유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1960년대 전반기 신문들이 수일간에 걸쳐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비뚤어진 결백을 표현하거나 낡은 정조관, 부정임신에 대한 고민, 부모의 무지로 어린 자식까지 죽음을 강요한다'는 내용들과 함께 가족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모습이라든가 음독자살에 사용된 쥐약을 실어 사람들의 경각심(警覺心)을 촉구했습니다.

자살하는 모두를 막을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습니다. 자살을 기도하는 이들에겐 예외없이 신호가 있다고 합니다. 가령 '죽고싶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달거나, 평소보다 말수가 적어지거나, 혹은 우울하던 사람이 별다른 이유없이 표정이 밝아지는 경우도 위험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사고를 막으려면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힘만으로 안된다구요? 여러분을 도와줄 수 있는 단체나 기관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생명의 전화'라는 것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가정불화 생활고 성문제 등등 어떤 고통과 괴로움이든 24시간 전문가들이 전화상담을 해주는 곳입니다. 전화는 1588-9191(구원구원)이나 서울 지역은 763-9191, 916-9191로 하면 됩니다. 생명의 전화 인터넷사이트(www.lifeline.or.kr)에 들어가면 수많은 이들이 상담을 통해 희망을 찾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유언장닷컴'(www.yoounjang.com)이라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무료회원으로 가입하고 자신의 영정사진을 올린 뒤 작성일시, 열람가능자, 걸어온길, 가족관계, 재산현황, 재산분배계획, 채무채권정리,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 등을 꼼꼼히 기록합니다. 사이트 이름은 유언장이지만 작성하는 항목 하나하나가 포부를 밝히는 입사지원서와 같습니다. 그렇게 유언장을 보관하고 있다가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을 때 한번 열어 보십시오.

언젠가 한 남성은 이 사이트 운영자에게 보낸 메일에서 "자살하기전에 유언을 남기기위해 사이트를 찾았는데 유언장을 정리하다보니 이대로 끝내기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답니다.

삶에 지치고 죽고싶은 생각이 들을 때 유언장을 열어보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서요.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죽을 용기를 살 용기로 바꾼 것입니다.

죽음을 체험(?)하는 사찰들도 있지요. 대구의 영남불교대학 관음사와 전남 보성군에 있는 대원사입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유언장을 작성하고 실제 크기의 관에 들어갑니다. 깜깜한 암흑속에 누으면 관을 박는듯한 망치질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 죽는구나하는 공포감이 엄습하지요.

머리속으로 무수히 많은 얼굴들이 스쳐가고 지나간 기억들이 명멸(明滅)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들어왔건만 어느 새 살고싶다는 생의 욕구가 솟아오릅니다. 가족들의 얼굴이 너무도 그리워집니다.

한 시간은 갇혀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불과 1분여만 관속에 누웠을뿐입니다. 관 뚜껑을 열고 나온 사람들은 죽음을 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느끼며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처럼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많은 기쁜 일들이 생길 것을 믿으며

우리 모두가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아름다운 시를 부칩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정호승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이 칼럼은 2003년 8월 5일 스포츠서울닷컴 <노창현의 흥야항야>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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