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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창현의 뉴욕 편지
가슴따뜻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중견기자의 편지. 1988년 Sports Seoul 공채1기로 언론입문, 뉴시스통신사 뉴욕특파원(2007-2010, 2012-2016), KRB 한국라디오방송 보도국장. 2006년 뉴아메리카미디어(NAM) 주최 ‘소수민족 퓰리처상’ 한국언론인 첫 수상, 2009년 US사법재단 선정 '올해의 기자상' CBS-TV 앵커 신디슈와 공동 수상. 현재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 편집인 겸 대표기자. 팟캐스트방송 ‘로창현의 뉴스로NY’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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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맞은 뉴욕..밉지않은 뉴욕..

글쓴이 : 노창현 날짜 : 2011-01-01 (토) 15:04:02

  

‘세계의 수도’로 불리는 뉴욕,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뉴욕. 그러나 덩치나 비중에 비해 제 대접을 못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미국 연방의 수도가 아닌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전 뉴욕이 잠깐 미국의 수도인 시절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억속에 가물가물한 역사가 되었고 수도는 일찌감치 워싱턴 D.C.의 수중(手中)에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물론 많은 나라들이 행정수도 따로, 대도시 따로 하곤 있습니다만 미국 역사의 출발점이기도 한 뉴욕이 왠지 경원시(敬遠視)되고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최근 뉴욕타임스가 메이저리그 특급투수 클리프 리가 뉴욕 양키스를 외면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합류한 것을 계기로 뉴욕을 외면한 유명인사들과 케이스를 집중 조명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면박(面駁)당한 뉴욕의 역사’입니다.

알고보니 뉴욕은 참 불쌍한 도시입니다. 이번같은 푸대접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그랬고 토크쇼의 제왕 자니 카슨도 뉴욕을 구박(驅迫)했습니다. IBM도 아메리칸 에어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US올림픽위원회와 제럴드 포드 대통령까지.

우선 클리프 리부터 시작할까요. 텍사스 레인저스를 첫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은 클리프 리는 올해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양키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양키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필리스로 갔습니다. 필리스는 1년전 그를 레인저스로 내보낸 팀입니다.

 

이하 사진 www.wikipedia.com

그런데도 갔습니다. 대체 필리스가 얼마나 많은 돈을 제시했길래? 필리스는 5년간 1억2천만 달러를 제안했습니다.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러나 양키스는 7년간 1억4800만달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평균금액은 같지만 올해 서른세살인 그가 서른여덟살이후에도 2년간 2800만 달러를 보장한다는 것은 엄청난 조건입니다.

그렇다고 양키스가 허접한 구단인가요. 월드시리즈를 무려 27회나 제패한 미국최고의 명문팀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구단입니다. 그런데도 면박을 당한겁니다.

클리프 리가 필라델피아를 택한 이유는 단 한가지, 고향처럼 편안한 팀이라나요.

뉴욕은 자존심 강한 ‘예스’의 도시입니다. 항상 ‘노’와는 트러블이 있었지요. 1984년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 유치도시로 뉴욕대신 로스앤젤레스를 개최지로 선택했습니다. 뉴요커들은 쇼크에 빠졌습니다. 전 뉴욕주지사 휴 캐리도 “뉴욕이 뭐가 부족하냐”“며 장탄식(長歎息)을 했습니다.

뉴욕은 정말 많은 수모를 당했습니다. 운동선수와 정치인 작가 기업 음악가 TV쇼 등 심지어 개한테까지 말입니다. 아메리칸 켄넬클럽의 개 박물관은 본래 맨해튼에 있었지만 80년대 중반 미주리로 이전했습니다.

1890년 미국 의회는 뉴욕을 따돌리고 시카고를 1893년 세계박람회 개최도시로 선정했습니다. 리카르도 무티는 뉴욕필하모닉의 지휘자를 거절하고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갔습니다.

그뿐인가요? 1964년 IBM은 맨해튼 매디슨 애버뉴에 있던 본사를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로 이전했습니다. 이후 10여년동안 포춘500에 속하는 대기업 중 상당수가 뉴욕시를 떠났습니다.

1975년 포드 대통령이 뉴욕에 대한 연방재정지원을 거절하자 데일리뉴스는 1면에 “포드가 뉴욕을 돌연사시켰다”라고 달았습니다. 1972년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는 맨해튼에서 캘리포니아 버뱅크로 이전했습니다. 이 쇼는 1954년 뉴욕에서 스티브 알렌과 함께 시작한 뉴욕의 자랑이었습니다.

 

카슨이 떠난지 30여년이 지난 후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투나잇 쇼를 돌아오게 하려고 했지만 무산됐습니다. 억만장자인 블룸버그 시장도 그러고보니 여러번 헛물을 켰네요.

 

그는 뉴욕에 2012년 올림픽을 유치하려 했지만 런던에 물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NBA의 제2의 마이클 조던으로 불린 르브론 제임스를 뉴욕 닉스에 몸담게 하려고 지원사격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전 뉴욕시장 에드워드 카치는 뉴욕에 대한 평판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뉴요커들이 아주 거칠고 뻔뻔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우리는 전혀 뻔뻔스럽지 않다. 우리는 모욕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카치 시장은 “뉴욕에 사는 대부분은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왔다 그래서 그들 고유의 존통을 따른다. 그 전통의 하나가 상처를 잘 받는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뉴욕의 미국의 도시라기보다는 세계의 도시입니다. 이민자의 비중이 50%가 넘는 이민자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그런 뉴욕이 세계의 수도로 추앙(推仰)되는게 배아픈 사람들이 있을 법 합니다.

클리프 리가 뉴욕 양키스를 걷어차자 뉴욕 밖의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습니다. 양키스의 앙숙인 보스턴 레드삭스 블로그엔 “지금 내 기쁨을 표현할 말이 없네”하며 ‘삭스의 기쁨’을 소리높여 노래했습니다.

뉴욕은 라이벌 도시들에 비해 시민들의 충성도(忠誠度)가 부족하고 외부인들의 견제심리(牽制心理)가 큰게 사실입니다. 최근 상원은 9.11관련 건강문제 패키지 법안을 지원키로 한 70억 달러를 부결시켰습니다. 일각에선 반(反)뉴욕감정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분석합니다.

그러나 꼭 뉴욕이 싫어서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ABC는 맨해튼에서 40년간 제작한 드라마 ‘올 마이 칠드런’을 로스앤젤레스로 옮긴다고 발표했습니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였습니다.

1967년 ‘슬픔을 아는 작가’ 조앤 디디온은 뉴욕을 떠나 서부로 가면서 ‘안녕 모든 것’이라는 애틋한 작별의 인사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내가 의미하는 모든 것은 뉴욕에서 어린 시절 존재했다. 이젠 황금기가 지났고 난 더 이상 젊지 않다”고 이별의 변(辯)을 밝혔습니다.

아마 뉴욕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無視)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존 로커 이상의 경우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는 2000년 1월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뉴욕팀에서 플레이 한 경험을 묻자 “뉴욕에 있느니 난 차라리 은퇴하겠다. 정신없고 시끄러운 도시”라며 7번 전철을 타고 셰이 스타디움에 오는 것을 레바논 베이루트와 비교했습니다.

 

“옆에서 아이들이 자주빛 머리를 하고 교도소에 네 번은 갖다온듯한 사람과 아이가 4명이나 있는 스무살 엄마 등 다 짜증난다. 가장 뉴욕에서 보기 싫은 것은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이다. 타임스퀘어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영어가 없다. 아시안, 특히 한국인과 베트남인, 인도인, 러시아인, 스페니시 사람들이 도처에서 들끓는다. 대체 이들이 이 나라에 왜 있는거냐?”

악담(惡談)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대팀 뉴욕 메츠와 팬들에 대한 얘기를 묻자 “침을 뱉고 물병과 배터리를 던지며 이렇게 말한다. ‘이봐 어제 니 엄마랑 잤어..매춘부더군’한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수준이하”라고 세치 혀를 마음대로 놀렸습니다.

비록 그가 훗날 사과를 하고 시즌 개막 14게임 출장정지의 징계를 당했지만 뉴요커와 팬들의 상처는 이미 갈기갈기 찢어진 뒤였지요. 7번 전철은 맨해튼에서 한인타운 플러싱이 종점인 전철입니다. 비로 전 정류장이 뉴욕 메츠의 홈구장 역이지요.

맨해튼에서 7번 전철을 타고 플러싱을 향하면 승객들의 얼굴 색깔이 서서히 바뀝니다. 인도, 에콰도르, 도미니카 등 히스패닉에서 점점 한국인과 중국인들의 얼굴이 많아지지요. 주류 백인들을 찾기 어려운 전철, 이민자의 애환(哀歡)이 담겨 있는 전철을 그는 대놓고 “유색인종인 너희들이 여기 왜 있냐?”고 노골적인 인종차별(人種差別)을 한 것입니다.

때로는 칭찬조차 망신이 되기도 합니다. 2006년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뉴욕의 오랜 악명(惡名) 하나를 인도 뭄바이에 넘긴다고 발표했습니다. 뭄바이가 세계에서 가장 무례한 도시라는 것입니다. 뉴욕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예의바른 도시가 된걸까요.

그러나 무시와 면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디디온도 결국 뉴욕에 돌아왔습니다. 댄서이자 가수, 배우인 죠세핀 베이커는 잘나가는 코러스 걸일 때 뉴욕에 퇴짜를 놓고 파리로 건너가 1920년대 최초의 국제적인 흑인스타가 되었습니다.

 

20대 때 토플리스 차림의 매혹적인 사진은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그녀였지요.

 

베이커는 67세가 된 1973년 돌아와 뉴욕 카네기홀에 섰습니다. 그녀에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오래도록 쏟아졌습니다. 2년후 타계한 베이커에게 뉴욕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였을것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아이 러브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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