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에서 경남 창원으로 향하던 길, 특별한 곳을 방문했습니다. 昌寧成氏(창녕 성씨) 집안의 古宅(고택)이었습니다. 모두 4개동으로 30여 채의 한옥에 200여칸의 방이 있습니다. 지은지는 150여년정도 된 것들입니다.
갑자기 만들어진 일정이어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멋스러운 정원과 대나무숲의 後園(후원)을 지닌 근사한 고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이 일대에선 꽤 유명한 민속가옥으로 영남에서 가장 호쾌한 전망을 가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가을이면 억새밭으로 유명한 화왕산이 맞은편에 우뚝 솟아있습니다.
약간 說往說來(설왕설래)가 있습니다만 이곳에서 김정일의 본처 성혜림이 태어나서 자랐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독특한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전국 유일의 양파 조각상이었습니다.
이 마을은 양파를 특산물로 재배하고 있는데 전국 최초의 양파 시배지가 된데는 성혜림의 조부가 큰 역할을 맡았다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고택들은 한국전쟁 한때 주둔지로 활용한 미군이 나가면서 불을 지르는 바람에 절반이나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주둔지의 흔적을 없애려 그랬다는데 민속문화재의 가치를 지닌 민간시설을 미군이 활용한 것도 모자라 불을 질렀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입니다.
이곳이 복원된 것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로 잘 알려진 영원무역의 성기학 회장의 공입니다. 성씨 집성촌 古家(고가)를 복원하기 위해 틈만 나면 내려와 진두지휘를 했다고 합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경남 지방에서 유명한 부촌이었던 못을 갖춘 정원의 양반집을 비롯하여 올망졸망한 한옥들이 이웃한 고택들로 원상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성회장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으로 네 살때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피난와 6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집이 모두 30채 있었지만 한국전쟁 때 10채가 불탔고, 나머지는 50년 가까이 방치돼 사람이 살기 어려웠어요.”
나지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의 대문으로 들어가니 아 하고 감탄사가 나올만큼 아름다운 정원이 보입니다. 정적에 싸인 고적한 분위기의 고택은 갑자기 들어선 재외동포기자들로 인해 부산해집니다.
왼편 후원으로 한바퀴를 돌기로 했습니다. 앙증맞은 대나무숲의 집이 인상적입니다. 1만여 평에 달하는 고택에는 한반도 모양을 닮았다는 반도지, 사랑채, 별당 등이 있습니다.
이후 각종 세미나장소로 대여를 해 주기도 하고 창녕지방 사람들을 위해 배움터로 활용된다고 합니다. 반질반질하게 닳은 텅 빈 툇마루를 보니 문득 앉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기와집이건 초가집이건 한결같이 운치있는 툇마루를 갖추고 있었는데..
아쉬운 것은 고택을 설명해주는 안내원도 없고 이렇다할 안내문도 없었다는겁니다. 그 시대의 생활상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이렇게 쏜살같이 휘휘 둘러보며 가는 것이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