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만난 것은 모두 세 번이었습니다. 2008년 6월 뉴욕특파원 간담회 때 맨해튼의 한식당이 처음이었고 2009년 3월엔 맨해튼 힐튼호텔에서, 같은 해 9월 뉴욕주 우드버리 아울렛에서 세번째로 만났습니다. 처음 만날 때 전통한지로 만든 독특한 명함을 건넨 것이 인상적이었지요.
알려진대로 김문수 지사는 서울대 재학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룬 운동권 출신입니다. 이후 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80년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과 86년 개헌투쟁으로 고문 투옥을 반복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헌신(獻身)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를 노동운동에 끌어들인 주역이었고 영장없이 체포돼 전기고문과 고춧가루 물먹이기 등 악랄한 고문에도 끝까지 심상정 전 대표가 어디있는지 불지 않은 유명한 일화(逸話)도 있습니다. 또한 서울대 선후배 사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는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아주 각별한 동지 사이이기도 했구요.
김 지사는 90년엔 민중 중심의 좌파정당을 지향한 민중당을 이재오 의원과 함께 만들어 노동위원장을 맡고 제14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落選)했습니다. 그리고 94년 ‘3당 야합’으로 일컬어진 민주자유당에 입당, 좌파 사회주의 노동운동 노선을 완전히 바꿔 재야운동권에 커다란 충격(衝擊)을 주었습니다.
그의 행태가 변절(變節)인지, 전향(轉向)인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이 땅에 민주화의 꽃이 피게된 90년대 초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몸 바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진보진영 입장에서 보면 그는 여전히 추악한 변절자이지만 구 소련이 해체되고 좌파진영의 갈짓자 행보에 실망한데 따른 전향이라는 옹호론도 있습니다. 어쨌든 96년부터 2004년까지 의정활동과 경기도지사에 당선될 때 공약이행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는 말을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좋게 보면 솔직담백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입이 가볍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그래서 자기모순에 빠지는가하면 자주 설화(舌禍)를 일으킵니다. 2010년 5월 지방선거 때 대학생 간담회에서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사과해야 한다”,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했는가하면 6월엔 4대강사업을 놓고 “다른 지역에서 안 하면 경기도에서 다 하겠다. 다른 지역에서 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2010년 9월 “청와대라는 데가 구중궁궐(九重宮闕)은 아니지 않느냐. 리더십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될 때 대통령 본인이 불행해진다”고 쓴소리를 하다가 두달 뒤에는 “세종대왕, 박정희를 다 합쳐도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최고의 역량을 가졌다”고 극찬하는 순발력(?)도 발휘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처음 만났을 때에도 김 지사는 이 대통령의 소통부재를 놓고 “대통령은 그 뜻만 봐도 거느릴 ‘통(統)’과 거느릴 ‘령(領)’ 앞에 큰 ‘대(大)’가 붙지 않느냐. 고작 알 ‘지(知)’에 일 ’사(事)’를 쓰는 ‘지사(知事)’에 비할 바가 아니다. 폭을 넓혀야지 좁게 할 이유가 없다. 과감히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고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선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박 대표는 비극적인 가정사 등으로) 보통 한 빨이 아니다”라고 아슬아슬한 수위의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초대형 실언을 했습니다. 기업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찬회에 참석해 춘향전을 변학도가 따먹는 이야기라고 아주 간단한게 정의내린 것입니다. 거두절미(去頭截尾)했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당시 발언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기업인이라면 장보고가 훌륭합니까. 이병철이 정주영이가 훌륭합니까. 전 세계인한테 누구한테 물어보더라도. 장보고 그 사람 누구지? 삼성 현대 LG 모르는 세계인이 있습니까, 지금? 자기하고 동시대를 살고, 자기 몸에 붙어서 같이 살고 있는 이 기업은 전부 재벌 놈들, 꼴통 이렇게 말하고 있고, 옛날 이야기, 콩 까먹는 소리하고 있고. 내가 우리 공무원들 보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청백리(淸白吏) 따지지 말라. 대한민국 지금 공무원이 얼마나 청백리냐. 역사를 이리보세요. 그 춘향전이 뭡니까.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으려는 것 아닙니까. 재산만 빼앗아가는 게 아니라 부패만 하는 게 아니라 처녀고 생사여탈(生死與奪)을 지 마음대로 하는 이 썩어 빠지고 형편없는 관리들에 의해서 이 나라 백성들이 수천년 간 피해를 보고 살아왔는데, 이 시대 공무원들은 얼마나 잘합니까...”
김 지사가 말하려 한 요지는 삼성 현대 등 재벌 기업 총수들이 정말 훌륭하고 이땅의 공무원들도 부패하지 않고 국민을 위해 잘 봉사한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듯합니다. 사실 이 대목도 실소(失笑)가 나옵니다. 글로벌 무역의 개념조차 탑재(搭載)할 수 없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것도 우습지만 탐관오리(貪官汚吏)와 비교하면 당연히 청백리로 보이는것 아닌가요. 어지간한 바람둥이라도 전설의 플레이보이 돈후안에 견주면 정조있는 사람으로 보이듯 말입니다.
만일 우리 재벌총수들을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부의 사회환원에 전력투구하는 존경받는 기업가들과 비교하고, 공무원들도 뉴질랜드 싱가포르 덴마크처럼 투명지수가 세계 최고인 나라의 공복(公僕)들에 비교한다면 평가는 어떻게 될까요. 어쨌든 그 부분은 논외로 하고 김 지사의 ‘따먹기’ 론을 계속 파헤쳐 보겠습니다.
변학도가 춘향을 수청(守廳) 들게 하는 부분만 놓고 본다면 김 지사의 말이 틀리다고 볼 수 없겠지만 우리 모두 국어시간에 배우고 인정했다시피 춘향전은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의식과 신분을 초월한 고결한 사랑이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을 안겨주는 이야기입니다.
김 지사의 시각이 맞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따먹는(?) 이야기는 춘향전 급의 문학작품 대접을 해줘야 할지, 춘향전을 한낱 3류 색정소설로 분류해야 할지 우리 국문학계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김 지사가 비난을 받는 또한가지 이유는 춘향전의 엉뚱한 해석외에도 ‘따먹다’ 라는 여성차별적인 비속어(卑俗語)를 거침없이 사용한 것입니다. 글쎄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철없을 때 좀 놀던 이들이 흉허물없는 자리에서 하거나 세상사 가릴 것 없는 시정잡배(市井雜輩)들이라면 모를까, 현역 경기도지사요. 여당의 차기대선 후보가 할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물며 내로라하는 기업가들을 모아놓고 한 점잖은 강연의 자리가 아닌가요.
김 지사는 과거에 ‘노는 엄마’ ‘쭉쭉빵빵’이라는 말로 구설을 빚었고 이번에 콩까먹는다는 말까지 포함해 ‘까먹구 따먹구’를 평소 입버릇처럼 하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따먹는게 좋아도 나라까지 따먹지는 말라”는 비아냥도 그래서 나오는게지요.
하긴 MB도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 언론인들과의 대화에서 “마사지걸을 고를 때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한다. 예쁜 여자는 이미 많은 손님들을 받았겠지만 예쁘지 않은 여자들은 자신을 선택해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 이것이 인생의 지혜”라는 말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그러고도 당당히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 이 정도 발언은 해야 대선후보의 자격이 있는게 아닌지 헷갈릴 법도 합니다.
우리 정치인들, 소탈(疎脫)한 것 까지는 좋습니다. 품격있는 인문학적 소양(素養)까지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추접하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7천만 한민족을 '쪽팔리게' 하지 마세요.